설연휴가 끝났다. 연휴즈음에는 회사에서도 다들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다. 곧 연휴이니 끝나고 얘기하자, 잘 쉬고 오시라 그런 반복적인 인사들이 오갔고 그 덕에 짧고 암묵적인 휴식이 허락되었다. 이 휴식이 끝나면 다음 추석에나 쉴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치지만 그런 생각 또한 한번 고이 접어 머릿속 깊숙이 넣어둔다.
설이면 오래간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설령 한 번을 안 펼치더라도 몸에 지니고 있어야 마음이 편한 탓에 노트북과 충전기는 꼭 챙긴다. 고향에 있는 동안 노트북을 한 번도 펼치지 않았다. 그 기간만이라도, 명절이든 가족이든 핑계 삼아 그러고 싶었다. 설날이 지나자마자 새벽기차를 예매해서 서울로 돌아왔다. 명절 때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차표 예매해야 하는 나에게 표는 구했냐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럼 나는 초지일관 같은 답을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명절표를 미리 예매해 둔 적이 없다고, 가야 할 때 새로고침을 반복해서(예전엔 무료 매크로앱으로 했지만 요새는 이런 방법들도 막혔다) 그때그때 나온 취소표를 잡아 내려갔다. 표를 못 잡아서 명절에 내려가지 못 간 적은 없었다. 이제 명절보다 연휴라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주위에도 여행을 가거나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 비중이 더 높다.
내가 나가기 직전 마지막 상태 그대로를 온전히 유지한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언제 다른 곳을 다녀왔을까 싶은 마음이지만 손 한편에 쥐어진 과일과 간식 몇 가지의 무게가 '너는 돌아온 것이다' 일깨워준다.
몸이 축 늘어졌다. 평소에는 긴장감 있게 확인하던 슬랙방도 알람이 온 것을 알아도 바로 확인할 힘이 없었다. 메일함에 무언가 쌓이고 있을 터였지만 아직 공휴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급한 건 아니겠지 스스로 합리화해 봤다. 그 와중에 피부에 적신호가 켜져 급하게 설 연휴에도 진료 중인 피부과를 찾아 주사를 한 대 맞았다. 그 많은 주위 피부과들이 설연휴라는 이유로 쉬어서 기어코 지하철을 한 번은 타게 만드니 이 때는 괜스레 너무 잘들 쉬는 거 아닌가 못난 생각이 든다.
아주 못난 생각이다. 어릴 때 가끔 엄마는 그냥 넌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일하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무슨 바람인가 싶었는데 가끔 일이 너무 고되거나 쉴 때도 일 생각을 멈출 수 없을 때에는 그 말이 스쳐간다. 물론 이 또한 고이 접어 날려버린다. 그게 내가 일하는 목표는 아니니까, 내가 지향하는 워라밸은 아니니까라며 다독인다. 이 대명절 연휴에 진료 중인 동네 병원이 있는다는 것에 감사하며 칼바람을 뚫고 길을 걸었다.
몇 달 만에 누른 브런치의 '글쓰기'버튼은 자못 어색하기까지 하다. 그간 노션에는 한두 단락씩 써두다 완성하지 못한 끄적여둔 글들이 있지만 나는 그 하나하나를 완성하는 것조차 일이든 휴식이든 모종의 이유들로 미뤄두었다. 그러다 몇 달 만에 쓰는 글은 지난날에 남겨둔 주제들도 미완성된 글들을 활용한 것 무엇도 아닌 손이 가는 대로 써버리는, 일기도 뭣도 아닌 요 며칠의 소회가 고작이게 되었다.
특히나 요 며칠은 내 근육과 지방조직 하나하나의 세포들에 심어져 있던 기(氣)들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이를 놓치면 안 될 거 같아 최대한 몸을 어딘가에 기대고 묻어난 그것들이 다시 안으로 스며들길 기다리며 멍하니 있었고 그러다 보면 잠이 들었다. 때문인지 덕분인지 계속해서 예상치 못하게 잠이 들었고 깨고 나면 목과 어깨가 뻑적지근하고 추웠다. 눈을 뜨고 있을 때 졸리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계속 잠에 빠졌다. 이럴 때는 내 몸을 나도 모르겠다 싶다.
이제는 공식적인 공휴일이 끝났다. 예기치 못하게 잠들 순 있어도 언제까지고 잠들어 있어선 안되기에 알람을 다시 활성화시켜야 한다. 내 세포들이 이를 받아들이든 말든 나는 움직여야 하고 쌓이고 밀린 일들을 해치워야 한다. '해치웠나?'싶으면 또 하나 들어오는 일을 보며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싶은 용맹한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이제 그만할래' 싶어 귀가 반으로 접히고 꼬랑지 내린 강아지처럼 바들거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한번 루틴 한 일상과 그 루틴함에서 반짝거리는 소중한 순간들을 만들고 그를 힘으로 다시 한번 현재에서 조금 먼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이 순간의 우울함은 나를 너무나 괴롭게 하지만 그를 수백 번 수천번은 잘 디뎌왔다. 이를 견뎌낼 근력은 있으니 설령 더 우울한 날이 오더라도 잘 흘려보내주자, 정말 기쁜 날이 온다면 이 날은 힘껏 안아 세포에 조금 더 담아두자라는 추상적이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