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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Apr 24. 2023

파란 밤

내일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띠링'

휴대폰 알람을 보니 회사 사람이 작성한 문서에 내가 공유되었다. 다음 주에 할 일이 많으니 이번 주말은 최대한 충전을 해놓으라고 하던 사람이다. 그분의 다음 주는 금요일 자정을 넘어서 시작하는 것이었나 보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무리 잠을 자도 얼굴이 붓고 몸이 쳐질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주뒤면 회사에서 주관하는 큰 행사가 있어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 그 와중에 걸려오는 문서 업무와 신규 미팅과 사사로운 사람들 간 뒷 이야기까지 방심했다간 정신을 앗아갈 건덕지만 산더미다. 몸과 정신을 기민하게 움직이여할 이유는 많지만, 나의 엔진은 어린 날 아버지의 자동차 같았다. 짐을 한껏 실고 다니던 터에 급속히 수명이 줄어 어느샌가 시동을 걸려면 몇 번은 자동차키를 힘껏 돌려야 했던 자동차. 아직은 몸이 작았던 덕에 나는 주로 자동차 콘솔위치에 앉아 있었는데 승차감이 좋을 리 만무했다. 


근래 들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많았다. 어떻게든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는 있지만 몸의 여기저기서 이상신호를 보냈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자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새 회사생활에 요령이 생겨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미팅 인비테이션에 'Decline with comments'라는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심지가 생겼다. 그래도 대부분은 참석을 해야 하는 미팅인데 먼 곳에서 진행하는 미팅이 되려 반가웠다. 그러면 미팅참석이라는 명분으로 택시를 탈 수 있었고 택시 안에서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틀어놓으며 창 밖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가끔 말하기 좋아하는 기사아저씨를 만나면 그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리액션을 하느라 잠깐의 고요마저 흐트러지지만 말이다.


몸을 쉬면 이 미세먼지 쌓인 듯한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될까 날 잡고 잠을 자기도 했다. 잠이 많은 편이 아닌데, 어째선지 잘라치면 계속 잤다. 자다 일어나 급한 연락이 없었나 확인하고 다시 눕고 책상에 앉았다 몸이 더 무거워져 다시 침대로 몸을 옮겼다. 한 번에 길게 잠들진 못하고 몇 시간씩 자다 일어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계획했던 일을 조금 진전시켜 놓으면 안도감과 함께 이상한 절망감에 다시금 침대를 찾았다. 꿈조차도 유쾌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울창하고 깊은 산이 배경이었는데 뭐에 쫓기는지 큰 바위와 계곡이 있는 이름 모를 산속을 숨 가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또 한날은 별안간 동물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고 어쩌다 반가운 이가 나타나는 날은 꿈에서 깨는 순간 미묘한 감정에 얼굴을 감싸게 되었다.


해가 떨어지고 거리가 조용할 때쯤 집 앞을 나와 밤공기를 쐬고 있자니 맞은편 편의점에는 친구사이인지 모를 몇 사람이 자리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미 꽤나 취한 모양인지 한 사람이 반갑다는 양 내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설마 싶어 주변을 살폈는데 내 쪽에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정신 차리라고 머리를 쥐어박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뉴스를 보면 온갖 흉흉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최근에 멀지 않은 곳에서 섬뜩한 일들이 있어 어쩌면 내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밤에 침대에 누워있으면 창 밖으로 높은 건물들이 보인다. 일주일 중 어느 날 내다봐도 그 자리를 지키는 건물과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침잠하는 마음이 끝없이 지구를 낙하하는 인공위성 같다. 인공위성은 탈출속도를 넘어 그중에서도 절묘한 속도로 쏘아 올려지면 지구의 곡률에 맞게 지구를 돌게 된다. 어느 순간 나도 쏘아져 버린 걸까. 그 속도가 원래의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힘들 정도가 되어 그저 뱅글뱅글 돌아버리는 걸까. 그래서 이렇게 표류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는 걸까. 하루가 짧고도 길다. 이 모순된 마음이 언젠가 쉴 수 있기를 염원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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