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달이 떴습니다
어제는 짧은 팔, 오늘은 긴 팔, 일교차가 심한 날씨로 인해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아침마다 고민되는 초여름이었다.
A는 온갖 잡념에 잡히는 날이면 어두운 밤 집 앞 아주 작은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네 두 개, 벤치 하나, 자동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펜스들, 전혀 관리되지 않은 나무들이 빙글 둘러싼 쉼터.
가끔 한 두 쌍 커플들이 구석에 앉아 있거나 교복 입은 학생들이 구석에 모여 대결하듯 앙칼진 욕을 주고받는 장소였다.
A는 차가운 철제 펜스에 살짝 앉아 있다 다리 사이로 머리를 푹 숙였다.
숨을 고르기 쉽지 않았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와중에 찬 바람이 살랑 불면,
손끝으로 사르르 찬기운이 스며들었고 순간적으로 닭살이 돋았다.
그러다 혈압이 떨어지는 듯 정수리부터 머리와 이마가 무거워지면 심장의 피가 더욱 빠르게 머리로 흐르길 바라며
머리를 푹 숙였다.
‘뭐 해’
깜짝 놀라 A는 상체를 빠르게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S였다.
흰색의 품 넓은 티셔츠에 검은 트레이닝복 바지. S가 가장 즐겨 입는 조합의 옷이었다.
아주 평범한 조합이었지만 A는 S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쇼핑이 별로 필요 없는 사람 같았다.
‘보다시피, 그냥 있지’
A는 S를 보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체온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귀신같이 S가 나타나자 A는 반가운 마음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넌 뭐 해, 이 근처에 살았나? 아니었던 거 같은데 ‘
보자마자 반색하는 기색을 내비치기 쑥스러워 더욱 퉁명스럽게 대답이 나와버렸다.
‘근처 약속 있어서 왔다가 혹시나 해서 근처 돌아보는 중이었는데, 있었네’
있었네? 내가 있을까 봐 이 동네를 돌아다니던 중이었단 건가? A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정확히 어디 있을 줄 알고 그냥 돌아봐 ‘
A와 S는 서로 어디 사는지 아주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마주친 건 상당한 운이랄지가 작용한 결과였다.
어느새 A의 앞에 S가 서있었다. A는 고개를 하늘로 쳐올리다시피 해야 S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S과 훅 쭈그려 앉아 A와 눈높이를 맞췄다.
‘보고 싶었어’
S의 갑작스러운 말에 A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 순간 A의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S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고 S는 A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둘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되었다. S는 A가 좋아하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 같았다.
강렬하고 섬세한 어루만짐, 물러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는 어쩐지 A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방 안의 공기들이 뜨겁지만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몸이 가까워지자 A는 자신이 녹아내리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까지 들었다.
S는 A가 계속해서 자신을 쳐다보도록 요구했다.
낯 뜨거운 표정을 짓는 얼굴을 가리려 할 때마다 S는 A의 손을 걷어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의 순간들이 지나고 둘은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고 열린 창문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와 자동차,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A의 어깨와 허벅다리로 여전히 체온이 느껴졌다.
둘은 오늘은 출근하지 말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