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상태도 아닌 나
말하건대, 신은 당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당신의 모든 생에서 신은 그곳에 존재해 왔다. 당신은 이미 신이다. 그것은 신성하며, 창조적인 지성으로 늘 당신 존재 안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며, 당신이 한계를 경험할 때도 당신을 사랑했고, 다시 무한함으로 돌아갈 때에도 당신을 사랑할 본질이다.
람타 화이트 북
과거를 회상하며 어머니가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넌 참 영특한 아이였지
그날은 학부모 총회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총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학교에 들어선 어머니는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아니 00이 어머니 아니에요~?” 친구 어머니들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어머니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고. 그러고선 딸의 칭찬을 다른 어머니들의 입으로 듣는데, 그게 그렇게도 뿌듯하고 가슴 벅찼다고. 어머니는 상기된 얼굴로 말씀하시곤 하셨다. 내 딸이 자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때가 참 좋았다면서 말이다.
그때는 참 이상한 시절이었다.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을 들어주기 위하여 작전이라도 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나로서 행동할 뿐인데도 이상하게 친구들의 신뢰를 얻고, 어머니들의 인정과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았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고, 그 덕분이었을까. 초등학생 때는 반에서 중간 정도나 하던 나의 석차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상위권으로 우뚝 올라섰다. 그 외 예체능 계열에서도 두루두루 평탄한 실력을 뽐내던 나는 어느덧 다재다능한 우등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잘’이라는 말이 제 옷처럼 잘 어울리는 그런 학생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산등성이와 같은 것일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나오는 법이니까. 그 뒤의 내 삶은 그것을 대변이라도 하듯 정신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내가 느끼기로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내리막 길의 절정에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멍청한 직장인, 그것이 딱 맞을 것 같다. 일단 내가 맡은 직무는 꼼꼼하고 해답이 딱 떨어지는 능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꼼꼼한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라야 일의 능률적인 두각을 드러내는 편인 나로서는 관심이 덜한 부분에서 세심하게 일처리를 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주로 장부를 기입한다던가, 영수증이나 지출 건 정리, 또는 계약서 작성하는 일을 했는데, 중간중간 꼭 한 번씩 실수를 했다. 업무가 손에 익을 법한 연차가 되었을 때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무엇보다 크게 느꼈던 건, 사회생활은 눈치발이라는 것이었다. 적당한 처신을 유연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회사 분위기를 살필 줄 아는 눈치가 있어야 했다. 그건 상사에게도, 동료에게도, 일에서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눈치껏, 요령껏 행동하는 사람을 미워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는 공교롭게도 눈치랄 것이 없는 편에 속했다. 게다가 말귀가 어두웠고, 자신감도 부족한 채였다. 그건 악순환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듯한 답답한 생활을 오랫동안 잘 해내려고 노력했으니 칭찬이라도 해줘야 마땅한 걸까. 하지만 당시의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뿐더러 깜냥도 안되었다. 단지 집단 속에서 끊임없이 '못 하는' 내가 싫었다. ‘잘’이라는 단어와 더 이상 걸맞지 않은 내가 그렇게도 하찮을 수 없었다.
드라마 김 과장(2017) 중 이런 대사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게 뭔지 아십니까? 줬다가 뺐는 겁니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없는 것을 가지게 되는 것과 달리 가졌다고 생각한 것을 빼앗기게 되면 분개하기 마련이다. 깊은 좌절이 내 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말했다. ‘너의 쓸모를 언제나 증명해 내란 말이야’ 하지만 거기에 언제나 불합격 딱지가 붙었다. 그건 타인에게서, 그러나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서 내려진 불합격 통지서였다.
“사실은 말이야,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 그건 단지 ‘이 또한 지나가는’ 경험일 뿐이라는 걸. 사람이, 존재가, 언제나, 어느 면에서나 반드시 쓸모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뭔가를 하다 보면 어느 면에서 잘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지. 오직 진실한 마음 그거 하나면 돼. “ 유난히 푸르름을 뽐내던 나무들 사이로 우아한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는 나비 한 마리를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가슴으로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자주 내 마음에서 빛을 잃었다. 돌보지 않은 빛은 자꾸 희미해지기 마련이었다. 비로소 나는 나의 할 일을 알았다. 그건 내 안의 촛대를 찾아내 다시금 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어떤 상태의 나뿐 아니라 아무 상태도 아닌 나도 진심으로 마주하여 안아주는 것. 내가 찾아서 피워야 할 빛은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