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사랑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심오하며,
가장 의미 깊은 사랑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람타 화이트 북
이상하게도 나는 유독 이 부분에서는 약했다. 나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 자신의 삶은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나는 나의 어머니와 너무도 닮아 있단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아저씨를 만난 뒤로 어머니는 항상 아저씨를 염두에 두었다. 매일 술을 마시며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저씨 곁을 누구보다 성심껏 지켜 낸 어머니였다. 오랜만에 두 딸네 집에 들른 어머니와 오붓한 시간이라도 보낼 수 있을까 하여 기대에 차 있으면, 어머니는 초조한 얼굴이 되어 말씀하셨다. “아저씨는 잘 계신가 모르겠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건 전화 통화의 아저씨는 여느 날과 같이 역시나 술에 취해계셨고 어머니는 급격히 다급해진 동작으로 집으로 내려갈 채비를 하셨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그렇고 그런 날이 십 년은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아저씨의 본가에 들러 두 아이의 야윈 얼굴을 보고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했다. 제 자식이 아니면 일절 관심도 두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저씨의 두 아들이 신경 쓰인다 했다. 또 아저씨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 어머니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 같다는 어머니의 말을 나는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어머니가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면 그것이 우리이기를 바라는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선택이 완전히 이해된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아저씨와 아이 둘을 돌보는 어머니를 단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십 년 이상 아저씨의 옆자리를 지켜낸 어머니는 결국 아저씨를 변하게 하였지만 자식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어머니 자신의 세월이 비통해 어머니는 괜히 아저씨에게 분노를 터트리곤 하셨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어머니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누구나 다 알 법한 그 사실을 어머니는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연애를 하는 동안 내 행동의 초점은 대부분 상대를 향했다. 연애가 시작된 순간부터 나는 나보다 상대를 더 믿었다. 그리고 그가 나의 삶을 책임져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상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 나의 시간과 생각과 현재와 미래를….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알게 된 건 그건 아주 위험하고, 어리석은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내 온통의 삶을 짓누르도록 내버려 두는 꼴이었다.
“앞으로 너네 가족 만나지 마” 3년 간 이어진 연애가 있었다. 당시의 남자친구는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몇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복잡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제안 자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걸 지금의 나는 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런 순간조차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지금이라야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당시의 나의 선택이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다.
자신을 팽개치고 하는 사랑은 결국은 멍청한 결론을 초래할 뿐이었다. 곧 비극적 결말이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다시 돌아온다. 만약 사랑에 대한 책임을 논할 것이라면, 그건 자신을 위한 사랑을 먼저 논한 후에라야 뒤따르는 것이었다. 건강하고 단단한 사랑은 자신을 먼저 돌보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책임진 후에 비로소 그곳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유독 이 부분이
... 참으로 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