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미니멀라이프의 선물
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우리를 얽매는 ‘채움’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움 <미하엘 코르트>
명절 한복판에 뭐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어머니와 극구 사양하는 딸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집에서 직접 기른 각종 채소며 그 채소들로 만든 반찬류, 명절이면 쟁여놓은 생필품, 어디서 얻어왔는지 모를 식기류... 딸내미의 살림에 보탬이 될까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집어넣은 음식과 물건들이 어머니의 마음과 비례하듯 커다란 플라스틱 백에 한 짐 가득 금세 차버렸다.
챙겨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에 가져가는 것도 일이거니와 막상 가져가 정리할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다급한 손길로 짐들을 다시 빼냈다. 나는 어머니의 거침없는 행동을 제지하며 최대한 짐을 줄이기에 바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떻게 그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를 다녔나 모르겠다. 초등학생 저학년이었던 나는 등을 맞댄 부분에는 스케치북이 들어가는 커다란 빨간색 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각종 필기구며 그날 시간표에 따른 교과서가 대여섯 권씩은 항상 들어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집과 학교의 거리가 그나마 가까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후 상황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학교와 동떨어진 시골집으로 이사를 간 뒤부터 나는 무거운 가방이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겨우 집에 도착하고 나면 몸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저녁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내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에는 웬만해서 나는 집으로 문제집 하나 가져가지 않았다. 교과서 전권을 학교 사물함에 몰아넣고 필통 하나 달랑 들어가는 얇은 가죽끈의 작고 예쁜 보라색 백팩을 메고 다녔다.
내 나이 스물여섯쯤 되었던 초여름이었다. 친구들과 부산여행을 가게 되었다. 1박 2일 일정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에코백을 메고 갈 것으로 정해 두었는데, 막상 짐을 싸다 보니 가방이 가득 차 사방이 볼록해졌다. 혹시나 필요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챙긴 여벌옷이며 세면도구와 화장품이 그 원인이었다. 뚱뚱해진 가방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숙소에 짐을 맡겨놓으면 그만인 걸 생각하며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하지만 여행에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니까. 일정이 있어 먼저 떠나야 하는 친구들을 두고 아쉬운 친구들끼리 모여 몇 군데의 관광지를 더 돌고 가자는 의견이 숙소를 떠나기 바로 전에 불쑥 튀어나왔다. 나도 또한 이 짧은 여행이 아쉬웠던 터라 그 제안이 퍽 반가웠다. 그러나 곧바로 내 뚱뚱한 짐 한 덩이가 거슬렸다.
“아니여, 괜찮어 괜찮어~” 무거운 짐을 멘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친구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나는 속으로 굳게 맹세했다. ‘앞으로 다시는 가방을 무겁게 싸고 오지 않겠어’
몇 년간 미니멀라이프 열품이 불었다. 이는 단순한 생활 방식을 일컫는 말로 불필요한 물건과 일을 줄여 본인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겠다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그즈음 뜻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나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사서 모아두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맥시멀리스트에 매우 가까운 유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생활 변화로 자연스레 많은 것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소비를 줄이고, 물건을 줄이고 집을 줄였다. 그러나 줄이는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는 반감이 일었다. 나는 비싸고 화려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의 표본이라 여기는 평범한 자본주의적 마인드의 현대인이었는데, 줄이는 과정은 내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 행위인 것 같아 마음이 여간 언짢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조리 줄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그동안 가졌던 것들이 전부 쓸모없이 느껴졌다. 생활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단출했고, 그 이상을 탐하는 건 욕심에 의해서임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몸이 가벼우면 쉽고 빠르게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무거운 짐이 있으면 확연히 기동력이 떨어진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그렇게도 겪지 않았나. 또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삶은 불확실한 항해이다”라고 말했다. 삶이라는 불확실한 항해를 위해서는 먼저 가진 짐이 가벼워야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상에서의 나는 맨날 그것을 까먹어 댔다. 참으로 금붕어스럽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