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연들

잠시 머물러도 예쁘다

by 프리여니v





인생의 즐거움은 변화이다.
다할 수 없이 다정한 사람과의 관계도
간혹 이별에 의해 다시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S. 존슨 <아이들러>지(誌)







내가 처음 본가를 떠나 생활했던 건 1년 간의 재수생활 때였다. 주변의 기대를 꽤나 받던 나란 학생은 졸업과 동시에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를 냈는데, 괜찮은 내신 성적을 갖고도 너무나 저조한 수능 성적 탓에 원하는 대학에 털 끝조차 닿지 못했었다. 하지만 나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 대학을 가지 않고 과감히 재수를 택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재수 후 별다른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딱히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그럴만한 의지도 없었다.


재수 시절 나는 집 근처 문구점에서 약 8개월 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런데 졸업 후 대학을 가기 위하여 도시로 떠난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하기만 했다. 시골에서 마냥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가는 영영 도태될 것만 같아 나는 불시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무작정 친구가 있는 곳으로 짐을 싸 떠났다.


나는 날이 변하면 서식지를 옮기는 철새처럼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하고 다녔다. 다음 해 나는 고향과는 먼 곳으로 대학을 갔고, 그다음 해 동생은 나를 따라 대학을 왔다. 어머니는 어린 두 딸을 위하여 대학 근처에 원룸 하나를 얻어주셨는데, 그곳은 자매가 처음으로 둥지를 튼 서식지가 되었다.



나는 부산의 모 대학을 다니며 여러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네 명의 학과 동기들은 주로 붙어 다니는 친구들이었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네다섯 명의 친구들과 선배들을 알게 되었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지만 눈빛만은 맑았던 그때 나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주목받으면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는 성격은 물론이거니와 학교 생활에 성실히 임하고 싶어 하는 자세 같은 것들이 말이다. 우리는 의견을 공유해 같은 수업을 들었고, 종종 다 같이 모여 학교 밖에서 놀았다.


캠퍼스는 봄이 되면 흐드러진 벚꽃나무로 인해 아름다웠다. 벚꽃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서 동아리 선배와 사진을 찍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 선배는 사진이 잘 나오는 자리를 잡아 나를 세운 뒤 사진을 찍어주었고 예쁘다는 말을 아까지 않았다. 참 싱그러운 날이었다.


그 다음다음 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나는 휴학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자격증 공부를 핑계로 삼은 뜻 모를 방황 때문이었다. 2년 간의 휴학기간을 마치고 내가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은 다른 지역이었다. 그리고 내 동생 또한 나를 따라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건 멀리 떠나보낸 딸들을 보내기 괴로워하셨던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로 인한 선택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호소에는 마음이 약한 딸이었다.



확실히 고향과 가까워서였을까. 그곳은 확연히 전에 살던 곳과는 달리 편한 구석이 있었고, 나는 그 지역에서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한동안 교회를 자주 드나들던 나는 교회 청년부 대부분의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몇 개의 모임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는데, 그중 또래 친구들과의 모임은 정말 재밌었다. 남자애들이 대부분이었던 그 모임에 여자인 내가 끼니 분위기가 달라졌고 활동이 더 활발히 이루어졌다. 우리는 모여서 보드게임도 하러 가고, 탁구도 치러 갔으며 당구장이나 볼링장을 다니며 그 나이대에 모여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즐겼다. 24시 카페에서 밤새도록 수다를 떠는 일도 빠질 수 없는 놀이 중 하나였다.



그다음으로 나는 운 좋게도 회사에서도 또래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같은 부서에 또래였던 친구들이 다섯이나 되었던 것이다. 전부 비슷한 시대를 살았고, 같은 부서에 들어왔으며 심지어 같은 대학 교수님의 추천을 받고 들어왔으니, 전까지는 일절 안면이 없었던 사이였지만 친근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놀았으며 함께 고민하고 일 외에도 많은 생각을 공유하며 수다를 떨었다. 게다가 엎치락뒤치락 경조사를 맞았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도, 회사도 가지 않는 나는 이제는 그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다. 더 이상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친했고, 아무리 애정 어린 시간을 공유했을지라도 언제까지 그 관계를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나의 시간이 그것을 허용해주지 않았다. 철새처럼 살아온 나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그 친구들과 보냈던 그 모든 시간 덕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종종 마음에서 그 친구들을 만난다. 잠시 머물다 간 바람이 상쾌하지 않은 건 아닌 것처럼 그 인연은 잠시였기에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연은 그렇게 때가 되면 왔다가 때가 되면 갔다. 그건 매우 자연스럽고도 경이로운 흐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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