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절정이라 사진기로 어디를 찍어도 아름답다.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고궁이 아닐까.
분명히 옛것이지만 오랜 세월을 이기고 지켜온 멋스러움이 있다.
신풍루를 통과하여 수원화성 안에 자리한 마을을 지나왔다.
수원화성은 1796년에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가 적의 침입에 맞서 세운 성이다.
화산에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이름을 화성이라 하였다.
행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신풍루 앞에 느티나무가 가을빛 단풍이 들어 고궁의 멋을 더하고 있다.
이제 신풍루의 문을 지나 정조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시간이다. 성벽을 따라 성의 밖의 모습을 보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신풍루에서 화서문으로 향하였다. 화성의 서쪽 문은 화서문이다. 북쪽은 장안문이 있고 동쪽은 창룡문, 남쪽은 팔달문이다.
화서문에서 화강암 계단을 밟고 올라가 성 밖을 바라보았다. 화서문 위에 누각이 있다. 남산타워보다 훨씬 낮은데도 아주 높은 곳에 올라서 있는 느낌이 든다. 돌계단의 높이가 높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차도를 건너 서북각루로 향했다. 아주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서북각루의 성벽 옆으로 피어있는 억새풀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200년 전 오늘도 억새가 온통 성주변을 뒤덮었을 것이다.
다시 차도를 지나 장안문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성벽을 따라 걸었다. 대략 가로 60cm, 세로 50cm의 높이의 화강암들이 성벽에 차곡차곡 올려져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거중기가 탄생했다는 성벽을 보며 선조들의 창의성에 감탄했다. 초등학교 문제집에서 도르래 문제를 열심히 풀던 일들이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맨 위에는 검은색 전돌이 담벼락처럼 예쁘게 놓여 있었다.
바람이 불자 길가에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 잎들이 떨어지며 담벼락을 향한다. 낙엽이 벽으로 향해 색을 뿌리는 것 같다.
높다란 장안문을 통과하여 용연으로 향했다. 넓고 잔잔한 연못에는 연꽃잎들이 피었다 지고 있었다. 연못 안에 소나무 동산이 둥글게 만들어져 있었다. 연못 바깥으로는 한가로이 늘어져있는 능수버들은 어여쁜 여인이 춤을 추고 있는 치마폭처럼 풍성하였다. 연못 주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다. 봄에 다시 와야겠다. 벚꽃이 만개한 용연의 모습도 기대되었다.
연못 끝에서 오르막 길을 오르자 북암문이 나왔다. 화성 북쪽에 낸 비상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이란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전돌로 만들어졌다. 암문은 벽체의 안쪽으로 문이 들어가 있었고 검은색 벽돌로 되어있어 위장술에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암문을 통과하면 북수문인 화홍문에 도착한다. 성 밖을 나오니 바로 수원천이 흐른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광교저수지를 거쳐 이곳 북수문에 이른다. 수원시내를 통과하여 남수문으로 빠져나가 황구지천에서 합류한다.
화홍문 누각
북수문에는 누각이 있고 수문은 7개 있다. 남수문 위에는 적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는 포루가 있고 수문은 9개 있다.
'북수문에는 왜 포루를 설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바로 옆에 동북포루가 따로 있고 대신 이곳엔 멋진 누각을 지은 것이다.
정조 임금도 물소리를 들으며 화나는 일과 억울한 일들을 씻어내려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뭄 시에는 북수문과 남수문을 막아 물을 저장해 두었을 것이다. 평상시에도 수문이 있으니 하천의 물의 양을 조절하여 성안에서 생활 용수로 이용하였을 것이다. 홍수시에는 수문을 완전히 열어 피해가 없도록 조절하였을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지금은 광교저수지가 북수문 상류에 있어서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다. 북수문의 이름은 화홍문이다. 신발을 벗고 이곳에 들어갔다. 근처 카페가 많아 커피를 사서 들어가니 한옥카페가 되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하여 등을 쪼이고 앉았다. 나무마루에선 온기가 느껴진다.
정조 임금은 사도세자의 능을 옮겨 화성을 지으면서 해마다 능행차를 하였다. 사도세자가 당쟁으로 희생되었고 견제세력들의 입방아가 거대한 압력이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낸 아버지를 생각하면 많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낙엽들이 춤을 춘다. 시원한 물소리가 정조 임금의 웃음소리 같이 느껴졌다. 나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북수문을 통과하여 시원하게 흘러가는 수원천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