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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Apr 20. 2024

하루하루 살다 보면 10

닭장 해도 되겠던데?

   몇 년 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유병자로 백신 미접종자이고 보니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 무렵 혹시 시장조차 못 갈 때를 대비해 감자를 심어보자 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풀을 심던 밭에다 다.  

 이후 감자를 캔 자리에는 들깨와 참깨에다 가을배추도 키우면서 점점 밭은 넓어져갔다.

 그 밭 모퉁이에 야채를 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은 어머님께서 연세도 높고 허리와 다리가 불편해서 들일은 물론 집일조차 거의 손을 떼고 있다. 하지만 팔십 세 때만 해도 자투리땅하나 빈 곳 없이 손수 심고  거두어들였다.

  얼치기 며느리는 그저 어머님 영에 따라 풀 뽑기에 가끔 불려 다닐 뿐이었다. 그러니 작은 거라도 마음대로 못하는 건 당연지사요, 혹시 뭘 했다 하더라도 성에 차지 않아 타박받기 일쑤였다.

  게다가 동작 느린 나로선 번번이 어머님의 요구에 응하는 것도 버거워서 시쳇말로 틈만 나면 도망 다녔다.

  기껏해야 용돈벌이 같은  일을 잡든지 뭘 배운다면서 집을 나섰었다. 그러다가 유병이 외려 덕을 가져다준 건지 아님 어머님 상태로 인해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마음이 컸을까? 어쩌다  밭작물 키우는데 재미를 붙이는 중이다.

  올해도 겨우내 방안에 두고 먹던 파를 밭  바깥쪽에다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텃밭장만을 해나갔다.

  남편에게  땅 뒤집기부터  부탁했더니 트렉트로 갈고 골을 타주었다. 비가 연신 오니 며칠 기다렸다가 검정비닐을 깔고 씨앗부터 파종했다.

  다음 날 아침  짧은 기도 후 곧장 밭으로 나갔다. 산이 가까워서 고라니가 종종 출몰하니 그냥 두었다간 뿌리내릴 짬도 주지 않고 밭이 엉망이 될 터였다. 그렇게 해서  말뚝을 박고 울타리를 쳤다. 그다음 고추와 가지등 모종을 심고 보니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했다.

  작업을  한 뒤에 늦은 아침밥상을 차리고 있자니 남편이 집안으로 들어서며 등뒤에서 한마디 했다.

  "막대기 몇 개 박고 대충 해도 될 텐데 튼튼해서 닭장 해도  되겠던데?.  흐흐"

    손이 느린 데다 건강마저 정점 나빠져가니  자투리 땅에 뭐 하나 심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채 살았었다.  그러던 내가 자그마한 텃밭 만든 것 하나로 남편의 귀한 칭찬도 들을 때가 생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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