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에 진정한 봄날

1.바람은 불어도

by 하리

'인생은 육십부터'란 말을 드디어 나도 당당히 해도 될 때를 맞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게 싫다고 하는데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거는 기대가 훨씬 더 높다. 쩌면 지금까지 맞은 수십 번의 봄이 마음까지 어나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보면 나이 앞자리가 바뀔 무렵에는 이런저런 변화를 겪느라 혼쭐이 났었다.

아홉 살 때 달구지에 다친 다리로 인해 거의 한 학기 가량 쉰 것을 시작으로 이후 대부분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이전의 어떤 해보다 좀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는 했다. 그러다가 쉰아홉이던 작년에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여전히 몸 상태는 이전과 별반 차이 없이 휘청대었으나 마음자세만은 오기 같은 도전도 해보면서 변화를 시도했었다.

이제야 음 깊숙이 진짜 봄은 지금부터라고 하는지 말해야 할 때다.

이순에 와서 봄이라고 하면 지금껏

삶이 그리 고달프기만 했느냐? 아니다. 가슴이 찌릿할 정도로 가끔 설렐 때도 있었음을 시인한다. 또한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준 아이들이 있어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외형적인 것보다 마음 깊은 곳은 여전히 겨울같이 춥고 삭막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 비교 분석하기 좋아했으며

적당히 우울하고 슬펐다. 그러다 보니 삶 또한 힘들고 복잡했다.

내 능력이나 여건에 맞지 않게 하고픈 것은 왜 그리 많았는지, 순전히 모두 욕심이었을 뿐 끈기 있게 노력해서 즐거움과 뿌듯함으로 매듭 지은 것이 별로 없다.

이십 대 때는 짧은 가방끈만 이어 놓으면 날개라도 달 것 같았다. 그리하여 기어이 결혼 이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방송대를 다녔다. 그러고도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목표 하에 주 1~2회 집과 들에서 벗어나 배움 에로 투자할 때는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기도 했었다. 하지만 번번 현실과의 타협에다 나 자신의 의지 부족으로 학교 졸업을 끝으로 지금껏 그 젊은 날의 도전의 결실을 제대로 활용해 보지 못한 채 장롱자격증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몇십 년 간이나 미련스레 가지고 있던 글쓰기마저 가슴에 작은 촛불 하나 켜지 못한 채 하다 말다 반복하면서 욕심만 앞섰었다. 그런 내게 지난해는 얼결에 브런치 작가로 이름을 올리면서 글쓰기 습관화를 위해 나름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에 덧붙여서 하나 더 씨를 뿌린 것이 있으니 바로 라디오 디제이 봉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만은 처음부터 가슴 설레며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브런치 글쓰기 도전은 딸아이의 핀잔으로 얼결에 린 것이었다. 게다가 라디오 디제이는 지인의 적극적인 부추김으로 라디오 녹음실을 들어설 때만 해도 마음은 그저 그랬다. 스무 살 때 지역 방송국에 가서 성우 원서를 들고 왔으나 접수도 못하고 말았던 때를 떠올리며 지금이라도 해보자 싶은 정도였다.

막상 개국 준비 중인 라디오 방송국을 가보니 컴퓨터와 마이크만 있어 첫인상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란 게 간단한 금기사항 안내에 이어 컴퓨터와 녹음실 기계 만지는 방법을 익히는 정도였다. 더구나 미리 준비된 대본이 있을 줄 알았는데 자기가 할 방송분을 직접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번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많았으니 기회를 놓치고 지는 않았다.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싫어하지 않았고 게다가 라디오에 대한 추억도 많았다.

저 방송의 주제와 이름을 정해야 했다. 혼자 노래를 찾고 사연까지 적어서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누구든 노래에 관한 이야기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고 '추억의 노래'라고 붙였다.

그렇게 해서 첫 방송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노래들로 선정해서 약간의 설명과 살을 붙여가며 했다.

하지만 그 하나로 내 마음의 심지에 불을 붙이기에는 미흡했다. 다행히 그 녹음본을 라디오 개국을 홍보한답시고 지인분들께 보내드렸더니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게다가 '노래 신청 바랍니다' 하고 안내하고 보니 심심찮게 노래 신청이 들어왔다. 이왕에 받은 노래는 들려드려야지 하다 보니 어느새 몇 번이 되었다. 그 사이에 시험방송이던 공동체 라디오는 정식으로 개국을 한 것이다.


어쩌면 브런치 작가와 라디오 디제이가 지난 세월 그 어느 때보다 기대 이상의 보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군지역 안에만 송출 가능한 방송 이지안 다른 곳에서는 유튜브로 들을 수도 있다.

무려 같은 방송을 며칠씩이나 송출한다 해도 노래나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지만 그 방송을 듣는 누군가의 가슴에는 작은 위로나 희망의 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길고 긴 겨울이 지나가고 들판 어드메쯤 냉이와 쑥이 움트고 있듯 내 가슴에도 진정한 새봄에의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다. 그러다 또다시 게으름병이 도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지도 모른다. 혹은 건강이나 다른 이유로 하고 싶어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막 앞자리 숫자가 바뀐 새로운 때다.

이다음에 '그때 계속할 걸' 하며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또 라디오 방송도 할 일이다.

어쩌면 가장 화사하고 따뜻한 봄날 같은 마음이 앞으로 한동안 쭉 이어질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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