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오래 살고 볼일

3. 남편이 웃었다.

by 하리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속담도 있건만 우리 부부는 각자 자기 역할하기도 버거웠는지 얼굴에 웃음기가 별로 없이 살아왔다. 많은 일과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사는 분들이 아니라 남편 혼자서 낙농업과 농사일을 하는 처지라 계면쩍은 웃음 짓기도 사치인양 아끼고 또 아끼다 잊어버린 줄 알고 지냈다.

그나마 병원 갈 때마다 심각하다는 의사 말을 자주 듣는 내가 먼저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애썼다. 면역력 증진에도 좋고 소화도 잘되고 웃다 보면 울적함도 사라지니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체통과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로 웃으면 안 된다는 철칙을 정해 놓았는지 매사가 진지해서 좀처럼 웃지를 않았다.


그날은 마침 5일에 한번 돌아오는 장날었다. 열흘쯤 뒤에 있는 제사장을 봐야 하는데 얼마 전 넘어지셨다가 회복이 된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장을 봐야 하는데 네가 갈라 카나?

아바이 하고 가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괜찮겠어예?아바이랑 제가 가는 게 안 나을까 예?"

그랬다. 어머님께선 지금껏 수술이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있지 않는 한 당신이 직접 제수용품을 골라서 사야만 만족하시는 성격임을 알기에 내심 마지막 장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해서 먼저 연락드리지 않고 기다렸었다.

'야야, 이번엔 아무래도 안 되겠으니 아바이랑 네가 장 볼래?'

이런 내용일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하고 난 뒤인데도 아들과 며느리 중 누구랑 갈까? 고민하신 거였다. 그렇게 이번에도 어머님께서는 아들과 나란히 시장엘 가셨다. 짐을 들기도 나을 테니 말이다.

난 잠시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인지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 데다 간식까지 찾아 먹었건만 갑자기 속이 허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밑져야 본전인데 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소 , 장에서 강냉이 튀밥이나 뭐 그런 주전부리 하나 좀 사 오소"

""어디 눈에 그게 띌라나? 살 시간이 될라나 몰라"하는 단답형으로 통화는 끝났다.


나 역시 코로나 간접 격리로 집 밖을 나서 보지 않았기에 심심하긴 했다. 평소 간식을 즐기는 형도 아닌데 뭐든 자꾸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오랫동안 내 말에 잘 반응하지 않는 남편인지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걷다가 마당의 풀도 좀 뽑아가며 쉬고 있는데 시장을 갔던 남편이 트럭에서 내렸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남편은 양손에 가득 검은 봉지를 들고 오는 게 아닌가!

나도 몰래 벌떡 일어나 봉지를 받았다.

부피가 애법 되는 봉지 속에는 김 뭉치가 셋이나 되고 다른 봉지에는 보리강정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도 남편 손에는 봉지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속에는 고등어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순간 놀라고 당황했다.

주전부리도 견과류가 좀 들어간 강정인 데다 고등어가 몇 손이고 보니 평소 하지 않던 기대 이상이라 한참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대응에 남편은 스스로도 멋쩍었는지 평소 그렇게도 긴장한 듯 무표정을 풀고서 웃는 것이었다.


그 상황을 아이들에게 문자로 보내니 그런 작은 일에 감동받느냐고 의외라며 난리가 났다. 하여간 즉시 강정을 먹으며 맛나다고 한참 너스레 떨고는 저녁 밥상에는 고등어구이도 올렸다.


그동안 내 말이라면 무시하거나 토를 달가도 어머님과는 친밀도가 깊어 내심 서운할 때가 많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한 요구를 잊지 않고 들어준 데다 추가로 찬거리까지 사 오다니,

참말로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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