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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Dec 14. 2023

실존

이름을 불러주는 일


꽃일 때 말고

열매일 때 말고     

이파리 하나 없는 빈 손의 나무일 때

그것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그 나무를 아는 사람이다  


나의 빛나던 시간 말고

환하게 웃던 시간 말고

텅 빈 눈과 마음으로 휘적휘적 걷고 있을 때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이다


나의 여린 봄과 여름을 알고

사위는 가을과 겨울을 모두 아는 이가

나를 아는 사람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존재에 힘을 주는 일이나니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것을 아는 것은,

  그것이 꽃일 때 말고, 열매일 때 말고.

  빈 손으로 마른 나뭇가지일 때도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나에게 실존이란 그런 것이다.




겨울이다.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는 계절.

나에게도 겨울의 계절이 있었다.

나의 겨울에 내 이름을 가만 불러주던 그대들이 있어 겨울을 살아냈다.

  

봄은 또 오고,

가을과 겨울도 다시 오리라.

그대들의 겨울에도 내가 이름을 가만가만 불러

함께 봄을 기다려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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