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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Dec 21. 2023

나의 마지막도 벚꽃이 지듯 그러하기를

벚꽃을 기다리는 이유

해마다 봄을 기다리는 일에는

절정의 벚꽃을 기다리는 일도 들어있다.


이파리도 없는 맨 몸의 가지에서 꽃을 먼저 피운다는 사실도 경이롭지만,

기다리던 벚꽃이 한 데 모여 피어있는 장관을 볼 때

우리는 봄이 왔구나!! 라는 확언을 받는다.


한송이 한송이 들여다보면 곱지 않은 꽃이 없지마는,

벚꽃만은 한송이보다는 벚꽃의 무리가, 

벚꽃으로 뒤덮인 동산이,

하얀 벚꽃가지가 양쪽에서 만나 이룬 터널을 볼 때 훨씬 큰 감동을 준다.


봄이 올라치면 우리들 누구나 벚꽃을 기다리고 있기에, 뉴스에서도 벚꽃의 개화 일정을 알려준다.

- 올해 벚꽃 개화 시기는 지역별로 언제입니다.


그렇게 때를 알고 기다려도, 알맞게 그 해의 절정을 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꽃은 나 모르게 피어버리거나,

내가 꽃을 보러 달려가면 이미 후두둑 져버리기 일쑤.


벚꽃과 실개천.  천연의 봄 풍경이다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희망, 새로운 경계, 시작이라는 상징, 생명의 느낌.

그 모든 표상을 벚꽃이 대신해서 빛나고 있다.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

메말랐던 나무에서 벚꽃이 만발할 때마다.

말하자면 해마다 봄이 찬란하게 올 때마다.

이 봄이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봄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을 해본다.

그 생각은 꼭 하얗게 빛나는 벚꽃의 무리와 함께 찾아온다.



이상하게도 벚꽃이 흐드러진 봄이 되면,

나의 마지막이 어떨까 떠올려 보게 된다.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나의 마지막 봄을 그려보게 된다.

봄은 모든 생명이 시작되는 표상이기 때문이리라.

모든 생명엔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이리라.



만일 내가 삶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다면,

그때에 새 봄을 맞는 일은 눈물 나도록 찬란하겠지.

그럼에도 나는 그 봄을 볼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될거야.

그 생각만으로도 심장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실제 그런 봄을 맞는 이들에게 이듬해의 봄은 얼마나 아프게 찬란할까.

벚꽃 무리를 볼 때면 그것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가슴이 시리다.



지는 벚꽃의 행렬을 보러 멀리까지 찾아 나선다.

멋지지 않은가. 지는 모습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꽃이라니.

꽃잎이 비가 되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벚꽃은 지더라도 지지 않는 것 같다.

꽃비 내리는 모습을 보러 멀리까지 달려가는 일은 봄 나들이의 연례행사가 된다.

마지막 모습이 더 아름답게 남아버리는 벚꽃의 영악함.



그러니.

해마다 봄을, 벚꽃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언젠가 마주할 나의 마지막이 벚꽃이 지는 모습과 닮아있기를 소망해 본다.






언젠가 결국 맞이할 나의 마지막도.

나의 빛나는 한때와 조금은 닮아있기를 소망한다.

나의 마지막 모습이 내가 살아온 색깔과 너무 다르지는 않기를.

흩날리는 꽃비를 보면서 욕심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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