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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Dec 28. 2023

꺼내먹을 봄

새 봄이 프레드릭의 시가 되길 바래요.

어린 딸들을 무릎에 앉히고 읽어주었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에서

프레드릭은 겨울 동안 먹을 곡식을 모으는 다른 쥐들과 다르게

긴 겨울 동안 회상할 햇빛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은다.

예술가가 해내는 일을 동화가 이렇게 표현해 내다니...

놀라웠다.



그것의 섭리가 감사하게도, 은혜롭게도,

해마다 봄이 다시 온다.

너그러운 신의 은혜처럼

봄은 공평하게 우리를 찾아온다.



해마다 봄이 오면, 꺼내먹을 봄을 나도 차곡차곡 저장해 둔다.

봄의 축복을 다시 찾아야 할 때에 꺼내먹을 수 있게 봄들을 모아둔다.



새 봄에 만나는 모든 것은 처음이다.

올해의 매화는 내가 처음 만나는 매화이고,

밭두렁의 개불알풀도 내가 아는 개불알풀이 아닌 처음 만나는 개불알풀이다.

당연히 진달래도 처음, 민들레도 처음 만나고,

작고 고운 꽃마리도 처음 만난다.



새로 만나는 건 꽃만이 아니다.

땅을 뚫고 나오는 연둣빛 새잎을 보는 감탄.

대지가 온몸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봄의 생명력.

온 우주를 새로이 만나는 계절, 새 봄이다.




사계절이 변화하는 것은 지구상 이 위도에서 우리가 특별히 누리는 축복이다.

무엇보다, 사계절을 다시 돌아 봄이 다시 온다는 사실은 더욱 특별한 축복임에 틀림없다.

멸에서 생으로, 없음을 있음으로, 차가움을 따뜻함으로 돌려놓는 봄.

멸과 차가움의 세상에서 꺼내먹을 수 있는 봄을 저장해둔다.

프레드릭의 시를 꺼내듯 봄을 꺼내본다.








모두에게 각자에게 꺼내먹을 봄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이 여러분의 괜찮지 않은 날들에 프레드릭의 시가 되어주길 바란다.


손에 닿던 봄의 바람, 강가의 물 오르던 연둣빛, 바람과 햇살이 만나 일렁일렁이던 윤슬.

무력한 나를 희망으로 인도하는 대지의 기운.

그 모든 기운이 공평하게 여러분에게 다가가는 새봄이 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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