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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죽어서도 병원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

암병동에서

by 엄마쌤강민주 Mar 13. 2025

“스스로를 밝히오니, 그 빛을 보고 어둠 속에서 나오소서.”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건강을 되찾지만, 또 다른 이들은 그곳에서 종종 마지막 숨결을 내쉰다.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던 2008년,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고통’과 ‘희망’, 그리고 ‘죽음’과 ‘사후의 존재’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잠겼다.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항암제를 맞으면 면역 수치가 제로로 떨어졌고, 그로 인해 먹는 모든 것을 토해내며 고열에 시달렸다. 오한과 인후통, 온몸을 찢어놓을 듯한 통증은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고통 속에서 어머니는 절규했다.

“그냥 죽게 놔두세요,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어요. 그냥 죽게 내버려 달라고요.”

치료를 중단하면 암이 재발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녀는 끝내 이성을 잃고 “차라리 죽여주세요”라며 눈물로 애원했다.     


어머니는 평소 “아픈 놈이 죄인이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만큼, 자신의 아픈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남동생 부부가 병문안을 왔다. 그들과 웃고 떠들며 안심시키던 어머니는, 그들이 떠나자마자 병실 바닥에 쓰러져 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울분을 느꼈다.

“왜, 나 힘든 거 알아달라고도 하지도 못하게, 애들 있을 땐 멀쩡하고, 애들 가자마자 토하는 건데?”


그 순간, 병원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환자의 육체적 아픔을 치유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 간의 감춰진 고통과 상처들이 얽혀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치료받는 동안, 종종 내가 볼 수 없는 존재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저 애들 보이니?”

 나는 어머니가 가리키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병실 문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안 보이는데요.”

 어머니는 계속해서 병실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큰아이가 대장인 것 같아. 그 아이를 따라서 아이들이 이 병실 저 병실 돌아다니며, 장난을 치네. 다들 환자복을 입고 있어, 머리가 까까머리인 아이들이 많고, 모자를 쓴 아이도 있어.”     


 소아암 환자들은 항암치료로 면역력이 떨어져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은 병실을 돌아다니며 서로 교류하고,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있던 병실은 소아암 병동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가 말하는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 눈에는 어머니가 보고 있는 그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안쓰러워하며 말했었다.

 “병원에서 죽은 아이들은 병원을 떠나지 못하는구나!”     


  어느 날, 어머니가 누워있던 병상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셨네. 저기 있어. 말없이 그냥 날 안쓰럽게 보신다.”

두 분 다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또 다른 날에는, 어머니가 내가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며, 이야기해 주셨다.

 “외할머니가 너 자고 있을 때, 네 배 안에 있는 기름기와 오물 찌꺼기를 하나하나 흰 수건으로 닦아내셨어. 너 아이 갖게 하려고.”

외할머니도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은 아픔과 고통 가득한 병실에서 희망을 자라게 했다.    

 


 어느새 나는 어머니가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존재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의 소통. 어머니의 말과 행동은 내 마음 깊은 곳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살아있는 자와 그곳에서 삶을 마친 자들의 흔적, 즉 그들의 영혼이 함께 머무는 장소구나!’     


 병원은 죽음이 언제나 우리의 삶의 일부분임을 상기시킨다. 어머니의 고통을 목격하고, 소아암 아동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까?’     


 또한 죽은 이들의 영혼들이, 산자를 염려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는 것을 믿게 되면서, 나 또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자고 다짐한다.  

    

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환시를 볼 수 있다. 항암치료 중 환시가 보인다면, 일단은 의사와 상의해서 환시가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도, 세상엔 여전히 존재한다.

      

 환시란 실제로 존재하지 아니한 것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환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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