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남편의 자식
“스스로를 밝히오니, 그 빛을 보고 어둠 속에서 나오소서.”
어머니는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 병원 침대에 누워 목구멍에서 밀려오는 역류를 삼키려 애썼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힘없이 반쯤 감겨 있었다. 어머니는 먹고 싶으나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나에게 과거의 일을 말씀하시곤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술 한 잔을 마시고 집에 치킨 한 마리를 들고 들어왔다. 형편도 어려운데, 술에 취한 남편이 치킨을 사 온 것에 대해 그녀는 마음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아이들 셋은 그녀의 복잡한 감정 따위는 알지 못한 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우와, 치킨!” 남편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치킨을 밥상 위에 놓았다.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치킨을 집어 먹을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왜 치킨 안 먹어?”
한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치킨 안 좋아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묻어 있었다. 치킨 한 조각 먹고 싶었지만, 자식들이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며 그 마음을 억눌렀다.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어 치웠고, 그녀는 빈 접시를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먹고 싶은 걸 언제 마음껏 먹을 수 있을까?’
그녀의 눈빛에는 고단함과 무언의 인내가 담겨 있었다.
‘아이들만 다 키우면 그때는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이제 어머니는 항암치료로 인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과거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제는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됐는데…”
어느 날, 어머니는 병상에서 입술을 떨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네 외할머니가 끓여주던 콩나물국이 너무 먹고 싶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가슴이 저릿해졌다.
“엄마, 내가 꼭 구해다 줄게. 기다려봐.”
구수한 국물에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 고소한 참기름 향, 거기에 외할머니의 손길까지 담긴 그리운 콩나물국을 찾기 위해 병원 주변을 뒤져봤지만, 콩나물국 자체를 파는 곳이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병실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눈빛은 잠깐 어두워졌지만, 금세 그것을 감추려 애쓰며 입술 끝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부드럽고 평온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정말 괜찮아.”
어머니의 미소 속에 숨어 있는 서운함과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그 일은 잊으려 했다.
그러던 중, 큰 이모가 따뜻한 콩나물국을 한 보따리 들고 병문안을 왔다. 어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큰 이모는 정성껏 끓인 콩나물국을 어머니 앞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첫 술을 한 모금 삼키고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아, 이 맛이야… 정말,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맛이야.”
어머니는 눈물을 살짝 머금으며 국을 한 모금 다시 삼키고 나서, 말없이 큰 이모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복잡한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속을 휘몰아쳤다. 젊음을 바쳐 그토록 사랑으로 돌봤던 딸이, 왜 자신을 위해 콩나물국 한 그릇 끓이지 못하는지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이 어머니의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한편 콩나물국을 가져온 큰 이모는 그리운 어머니가 낳은 형제라는 것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그리움과 애틋함이 자식이 아닌 형제에게 가는 순간이었다.
그 후, 어머니는 항암치료의 고통이 커질수록 자식보다 형제,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옆에서 간병하던 나는 어느새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원수 같은 남편의 자식’이 되었다.
“네 아빠가 속만 썩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암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너만 생기지 않았으면 네 아빠와 진작에 갈라섰을 텐데. 낙태하려고 약 먹었는데도 죽지 않고 기어이 태어나, 내 발목을 잡은 게 너야.”
당시 큰 이모는 스님이셨고, 둘째 이모와 셋째 이모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들은 어머니가 낫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돈을 보내셨다. 아니 나에게 돈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당시 어머니는 큰 이모에게 돈을 보내지 않고 병원에 가면 고생이 심하다며, 항암치료 전 꼭 큰 이모에게 돈을 보내라고 했다. 하루는 내가 너무 부담된다며 돈 보내는 것을 거부했다. 어머니는 차갑고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
“낙태한 아이 중에 진짜 효자가 있었다던데, 너를 낳지 않고 그 애를 낳았어야 해.”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모들의 말은 일관성이 없었다. 그분들의 말에 휘둘리는 어머니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나는 폭풍우 속에 노를 잃은 작은 쪽배처럼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우울과 불안의 바다를 오랫동안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