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하 Jan 17. 2022

눈사람이라는 사람

어느덧 새해 인사가 민망해진 1월에

굽은 차창 너머 어지러이 흐르는 눈을 보면서

걷고 싶었다


헛기침을 자주 하시는 기사님은

루돌프 사슴코를 흥얼거렸다

반복되는 콧노래, 회색 하늘, 촉촉한 땅의 먼지 내음

단지 하얀 눈으로 어울렸다


걷고 싶었다니 진심으로

지쳐서 걸린 병에 주삿바늘까지 꽂았는데

욱신거리는 손등을 지그시 누르면서

저 눈과 걷지 못할 이유는 그렇게나 많았다


- 손님 춥지는 않으세요

- 네, 저는 괜찮습니다

- 눈이 많이 내리네요

백미러로 눈치를 보던 기사님은

손님이 걷고 싶음을 아셨다

- 그렇죠 손님, 겨울엔 눈도 오고 좀 추워야지요


한강에 비치는 야경을 보면

그 위를 걸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던

한 선생님의 우스갯소리가 농담이 아니었음을

별처럼 빼곡하면서 듬성이 흐르는 저 눈발을 보면서 깨달았다


서울에는 죽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광화문의 눈이며 한강의 야경이며

이미 나는 여러 번 걸어 들어갔다

다만 새해 복을 많이 받고 몇 번이고 살아난 거지


내릴 때 민망함은 없었다

그래서 추운 택시 속 굽은 차장 밖으로

어지러이 흐르는 눈발을 보며 하-얗게 목숨을 태운 손님은

눈사람처럼 목숨을 하나씩 주고받기로 했다

- 손님, 도착했습니다

-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이 가시기 전에 눈사람빼곡하면서 듬성이 다져야겠지

걸을 날을 세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목이 메이는 상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