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다

(총 맞은 그날 이후, 승-4)

by 뷰리플기러기

암 진단을 받는 날은 벚꽃이 흩날리더니, 치료를 시작할 때는 주변에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들이 힘내라며 써 준 쪽지에 '신은 선물을 줄 때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한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장미꽃과 함께 이런 선물이 내 삶에 예고 없이 날아들었구나.


첫 항암.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드리는 것이 알 수 없는 깊이의 호수에 첫 발가락을 담그는 일 같다. 물의 온도를 느끼며 깊이를 탐색하고자 발을 조금씩 수면 아래도 내려 보내는 것처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건 피할 수도 없다.

유방암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호르몬 수용체나 HER2라는 단백질 유전자 영향 여부에 따라서 몇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되고 그에 맞는 치료법이 정해진다. 항암 약의 종류와 투여 횟수도 달라진다. 나는 HER2 양성 유형으로 판단 받아 네 종류의 항암제를 여섯 번씩 맞아 암 크기를 줄여보고, 그 후 암 절제 수술, 20회의 방사선 치료. 그러고 나서 14번의 표적치료를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을 의사선생님께 들었다.


첫 항암을 위한 입원.

나는 네 가지 항암제를 순차적으로 한 날에 맞는다. 한 개 당 두 시간 정도씩 하루 8시간 . 그 중 두 개는 네오플라틴, 탁셀이라고 하는 일반세포 독성 항암제이며, 나머지 두 개는 허주마, 퍼제타라고 하는 표적항암제다. 표적항암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타입의 유방암 세포들만 타깃으로 죽인다. 일반 세포 독성 항암제가 무차별적 공격으로 동시다발로 모든 걸 초토화시키는 폭격기라면 표적항암제는 스나이퍼 같은 것이다. 원샷원킬, 제발 성공하면 좋겠다.

항암제 투여 전에는 알러지 반응을 막을 항히스타민제, 해열제, 진통제 등도 함께 주어졌다. 표적치료제는 무사히 몸을 파고드는 것 같았는데, 역시 폭격기가 문제였다. 일반 독성 항암제가 몸에 들어와 퍼졌을 때 순식간에 몸의 이상반응이 나타났다. 갑자기 심장박동 수치가 올라가고 숨이 안 쉬어지는 쇼크 증상이 왔다. 잠시 투약을 멈추고, 삼십 분 정도 경과를 본 후, 투약속도를 낮춰 다시 시작했다.

질병을 정복하여 기대 수명을 연장하려고하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암도 서서히 정복되어 가고 있다는데, 치료 과정을 직접 경험하니 마치 내 몸이 약에 정복될 것처럼 느껴진다. 진단을 받고. 여러 검진들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내가 암환자라는 증상은 어디에도 없었고 믿기지도 않았는데 이제야 실감된다. 더 실감되는 건 병 주고 약 주는 것이 아니라 약 받고 병 받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3일 간 첫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두 손에도 약 봉지가 가득이다. 항구토제, 진통제, 지사제 등등. 두려움과 공포의 첫 항암이었지만, 끝내고 사지 멀쩡하게 집으로 내려오는 길 만큼은 내가 약을 정복한 착각이 스친다.



내려와서 일주일은 몸의 변화를 세심하게 지켜본다. 사실 그것 말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없다. 그저 몸을 끌고 기어 다니는 것. 그것이 일주일 동안 할 수 있는 최대의 행동치. 처음 치료 전 들었던 항암제 부작용의 모든 예시들이 고스란히 내 몸을 스쳐간다.

특히 일반 독성 항암제의 가장 표면적인 부작용은 2주안에 암세포와 함께 머리카락도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항암 시작 전 머리를 미는 결정을 한다. 자신의 모습이 골룸처럼 변해가는 것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나는 과정을 궁금해 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이번에도 그 호기심의 싹을 잘라버릴 수가 없었다. 또 간혹 강력한 폭격기 안에서도 머리카락을 비롯한 내 몸을 온전히 지켜내는 운 좋은 사람도 있다 하니 그 희박한 확률에 나의 운을 맡겨보고 싶기도 하고.

정말 운일까. 아무 변화없던 14일째, 쫀쫀했던 두피의 빗장이 그날 풀렸나보다. 머리를 빗는 순간 머리의 1/4이 빗에 쓸려 내 몸을 벗어났다. 머리를 감을 때, 남아있는 것의 절반이 물에 씻겨 나왔다. 아. 예외는 없었고, 약의 부작용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은 완벽히 과학이었다. 나에게 예외가 통하지 않았다.



그 확률을 신뢰하게 되니, 내 상태였던 사람들의 암 재발률, 5년 생존확률, 10년 생존확률 같은 것들을 따져보게 된다. 물론 확률은 집단의 해석이고, 나의 삶은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이라는 원리를 안다면 이런 계산 따윈 의미 없다. 내가 해당되면 100이고, 내가 예외면 0이니 말이다. 하지만 생존확률이 높으면 높은 대로 그 수치에 기대어 불확실성을 견디고 싶고, 확률이 낮으면 또 그런대로 행운이라는 동아줄을 상상한다. 나를 낮은 확률 안에 끼워 넣으며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싶다. 확률을 확률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일 지라도, 이것이 확률이 불확실성을 견디어야 하는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이런 저런 계산기를 두드려보다 100%인 답을 만난다. 인간이면 예외 없이 언젠가는 그 삶이 끝난다는 것. 그 답을 마주하며 너무 구태의연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말자는 100%인 확률의 해석을 얻는다.


P.S.

그 실천의 첫번째로 미뤄두기만 했던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한 번에 작가 합격 메일을 받았다. 신은 이런 선물도 주는 구나. 과학을 이야기하는 이번 글의 마무리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월, 금 연재
이전 13화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