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법당

(총 맞은 그날 이후, 승-5)

by 뷰리플기러기


병을 얻기 2년 전쯤, 정토회의 불교대학 공부를 시작했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유튜브 에 많이 올라오던 시기였다. 지나가는 길에 본 불교대학 현수막을 보고 덜컥 신청했다.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로 온라인으로도 종교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나의 종교를 묻는다면, ‘불자’라고 말하기에 아직은 망설여진다. 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부귀영화를 내던지고 인간의 고뇌를 마주했던 그분의 깨달음을 나눠 받고 싶었다.


불교대학은 온라인으로 5개월 동안 진행된다. 과정의 내용은 현 세상에서 불교의 의미, 가치,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법륜 스님의 법문을 각자 듣고, 일주일에 한 번 온라인 줌에 접속해 7~8명의 도반들이 모여 법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각자의 삶으로 이해를 더해가는 시간이었다. 환경 보호나 봉사활동, 절을 방문하는 오프라인 의무 시간이 포함되어 있어 세 번 정도는 도반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된다. 또 수업 기간 중 두 번, 전국의 불교대학 학생들이 모여 법륜 스님을 모시고 즉문즉설 시간을 갖는다. 스님께서 해 주시는 부처님의 가르침 해설이나, 질문자에게 들려주시는 사이다 답변을 현장에서 전해 듣는 것은 이 과정의 묘미였다.


흥미로웠던 건 생각보다 많은 지인들이 이 과정을 거쳐 갔다는 사실이었다. 늘 유쾌한 성격의 지인이 불교대학 동문이라고 했고, 모태 신앙으로 교회를 다니는 한 동생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마음이 무게가 가벼워졌다고 했다. 이 과정이 종교를 넘어 하나의 철학이자 마음 수련의 장으로 그들의 삶에 녹아 있던 모양이다. 동문인 줄 알고 나서는 우리끼리의 인사법도 유쾌한 합장으로 바뀌었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매료된 나는 다음 코스인 경전대학을 자연스레 신청하게 되었다. 5개월 간 금강경, 반야심경, 육조단경, 불교사 등을 배우는 과정이고 도반과 함께하는 실천을 중요했다. 하지만 등록 직후 암 진단을 받고 장기간의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수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진행자분과 상의했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의 합이 맞았다. ‘항암으로 머리가 빠지게 되면 나도 머리만은 스님이다'라는 객기 어린 용기도 보태봤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병실 커튼 속에서 나만의 작은 법당을 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아픈 사람이 커튼 안에서 수업을 듣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 않을지, 주사를 맞으면서 두 시간이나 집중할 수 있을지, 혹시라도 수업 중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지. 하지만 노트북 화면을 열고 이어폰을 꽂고 도반이 모여있는 화면으로 입장하면서부터는 그런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몸은 분명 지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생각만큼은 단단해지고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아프기 전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대학 과정을 시작해 놓았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직장을 다니면서 휴식할 시간을 쪼개어 수업을 들었던 시간들이 미리 비축해 놓은 군량미 같다. 수행했던 과제들, 도반들과 나누던 질문과 이야기들이 몸이 아플수록 더욱 선명하게 상기되었다. 한 번은 나에게 남은 생이 하루라면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나누어봤는데 대부분은 어제처럼 보내겠다는 대답이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업을 들으며 인생 본연의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해답은 아니어도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했었던 질문들이 힘이 된 것 같다.


어떤 종교든 무너진 마음을 단번에 일으켜 세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덜 흔들리게 하는 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경험한, 종교의 힘이다.


병실 속 작은 법당, 이 안에서 만큼은 나는 견고하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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