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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솔 Oct 16. 2023

Bar에서 '마티니' 주문하기 <초급>

제임스본드와 킹스맨 얘기는 이제 그만

가장 유명한 칵테일은 뭘까? 국내든 외국이든 포함해서 역시 마티니가 아닐까 싶다. 현대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마티니의 변형이 존재한다. 이제는 과일은 뭐든지 다 갖다 붙이면 된다. 

딸기, 수박, 멜론, 사과, 포도, 망고, 오렌지 등등 마티니를 만들 수 없는 재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일뿐만이 아닌 초콜릿이나 유제품 계열로도 만들 수 있고, 허브나 야채를 사용하기도 하며, 커피를 이용한 마티니는 너무나 유명하다.


마티니의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이 글에서는 변형된 스타일이 아닌 진과 버무스를 사용한 오리지널에 가까운 마티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IBA에서는 '드라이 마티니'라고 불리고 있다. 그렇다. 제임스 본드의 그것과 킹스맨에서 나온 그것이다. 



영화에서 나온 마티니에 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간단하게 검색만 해도 자료는 많이 나오니까 궁금하면 각자 찾아보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실의 bar에서 마티니가 실제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만들어지고 있고 어떻게 주문되고 서브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현실을 살아


또한 여러분들이 bar에 가서 마티니를 주문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국내에서 드라이 마티니 칵테일의 포지션은 어느 위치일까? 아직까지도 마티니는 체험과 도전의 영역이다. 마티니를 진정으로 즐기는 소비자는 100명 중에 10명도 안된다. 어디선가 들어본 유명한 칵테일이기 때문에 호기심에 주문하는 경우가 많고, 맛보다는 감성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 많이 쓰인다.



이게 절대로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바에서 어떤 칵테일이든 그 자체의 맛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바텐더들은 손님에게 맛뿐만이 아닌 다양한 경험과 즐거움, 술을 즐기는 그 자체의 시간에 가치를 두어 서비스를 한다. 우리는 바에 가서 언제나 능숙하게 술을 마실 수 없다. 영화나 책, 다른 미디어에서 나온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난생처음 본 모르는 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경험하는 것이 바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다만 약간의 지식이나 팁이 더해져 시야가 넓혀진다면 더더욱 즐겁게 바를 즐길 수 있다.




우선 마티니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알고 가자.


1. 진

2. 버무스

3. 올리브

4. 레몬 껍질(의 에센스)

5. 비터(옵션)

이 이외의 나머지는 옵션이다.


진과 버무스를 믹싱글라스에 일정 비율로 넣고 저어서 글라스에 따라낸 후 올리브와 레몬껍질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문장으로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주문하는 사람 입장에서 요청할 수 있는 요소들이 생각보다 많다.




첫 번째는 진과 버무스의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바에서는 마티니의 스탠더드 레시피를 꽤나 치밀하게 설계해 놓기 때문에 본인이 죽어도 마시기 싫은 브랜드가 아니라면 웬만해선 업장의 선택에 맡기는 게 좋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바텐더가 수상해 보일 때가 있다. 이 사람이 만든 마티니는 왠지 겁이 나거나 의심스럽다면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혹시 베이스는 어떤 걸 쓰시나요?'

'진은 뭘로 해주시나요?'

'버무스는 혹시 뭘 쓰세요?'


이 정도로만 물어봐도 바텐더는 브랜드를 소개해주면서 자기가 만들 마티니의 방향을 간단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스탠더드 하게 만들 것인지, 버무스의 양을 늘려 마시기 편하게 할 것인지, 드라이하게 할 것인지 혹은 독약을 제조할 것인지 등등 알려주면 원하는 대로 방향을 함께 설정해 나아가면 된다.


*마티니를 주문했을 때 조용히 웃으며 아무 말 없이 만드는 바텐더는 정말로 수상쩍지만, 높은 확률로 맛있는 마티니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진과 버무스의 비율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독하게 먹을 것인지 덜 독하게 먹을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마티니 안 독하게'는 없다. '리버스마티니' 이딴 걸 먹느니 더 맛있는 칵테일이 많다.

마티니를 포함한 칵테일의 레시피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내가 처음 바텐더를 시작할 당시에 마티니의 표준 레시피가 3:1에서 4:1 정도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6:1이다. 유행 또한 변한다. 스윗한게 유행했다가 드라이한 게 유행했다가 다시 스윗한게 유행했다가, 업계에서도 바텐더의 취향이 많이 타는 칵테일 중 하나다. 


비율 또한 각 업장에서 정해진 레시피가 있기 때문에 떡 주무르듯이 요청하면 실례이다. 게다가 어차피 여러분들은 더 드라이하게 먹고 싶을게 분명하기 때문에


'조금 드라이하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도수 높게 해 주세요.'


이 정도면 딱 좋다.




세 번째는 올리브를 어떻게 내어줄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올리브의 브랜드를 지정하기는 사실 좀 힘들다. 업장에서는 이미 당신에게 내어줄 올리브가 2~3종류 정도로 정해져 있으며, 많은 경우 10개 내외정도 일수도 있지만 일일이 올리브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신에 올리브를 좋아한다면 많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고, 마티니에 담가져서 나오는 게 싫으면 따로 서브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씨가 포함된 큼직한 올리브 한 개 정도만 술에 담가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3개 이상의 올리브가 픽에 꽂아져서 서브되는 마티니는 올리브의 뉘앙스가 술의 맛을 지배하게 되어 밸런스를 해친다. 그렇다고 아예 안 넣으면 그 특유의 감칠맛이 사라진다. 마티니는 식전주로도 널리 사용되던 칵테일이기 때문에 입맛을 돋우는 감칠맛과 짭짤한 뉘앙스가 함께하는 것이 어울린다.


올리브의 개수, 그리고 서브되는 형식을 본인에게 맞게 요청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레몬껍질의 사용 유무이다.



칵테일 제조 마지막 단계에 글라스 주변에 멋진 손짓으로 레몬껍질을 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레몬껍질에서 나오는 에센스는 마치 향수와 같이 마티니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갓 서브된 마티니를 들어 얼굴로 가까이 가져올 때 피어나는 진과 버무스의 보태니컬한 뉘앙스와 차가운 냉기, 레몬의 산뜻한 향이 함께 조화롭게 느껴질 때, 내 혀부터 시작하여 온몸의 세포와 혈관까지 마티니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다만 바텐더의 테크닉이 부족하거나 레몬의 관리상태가 좋지 않으면 오히려 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맛에도 영향을 끼치거나, 심지어 비린냄새가 나기도 한다. 바텐더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이거나 칵테일을 만드는 모양새가 어설프게 느껴진다면 레몬필은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도 좋겠다.




지금까지 마티니 즐기는 방법 중에서도 칵테일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여러분들이 취사선택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사실 뭔가 대단할 것 없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이야기다.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냥 본인이 원하는 대로 즐기면 되지만, 아예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지 않는가.


막상 바에 갔는데 바텐더가 '취향껏 고르셔라', 또는 '어떤 걸 원하느냐'라고 주관식으로 묻는다면 정말 많이 아쉬운 접객 방식이다. 전문가로서 꽤나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전문가라면 가이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객관식으로 선택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이 세상에 많은 바텐더들은 노력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마티니를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당신에게는 바의 신이 미소를 지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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