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의성에서의 1년 더보기 1

의성 청년마을 로컬러닝랩 임팩트랩 1기 강상우

Q1.

더보기는 임팩트 랩으로 함께 하면서 ‘임팩트’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자주 사용했을 것 같아요. 참여하기 전에 소셜 임팩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요?


A1.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공부한 것도 아니지만 항상 꿈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고민했었어요. 그런 부분들이 더 전문화되고 체계가 잡힌 게 소셜 임팩트라고 생각해서 좋은 분야를 찾은 느낌이에요.


Q2.

더보기가 생각하기에, 단순한 도움을 주는 것과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인 것 같아요?


A2

단순히 도움을 주는 건 많은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주고 챙겨주고 내가 움직이면서 만들어나가는 거죠. 반면 소셜 임팩트 같은 경우, 전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게 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만드는 방법들을 전달하는 것 같아요.


Q3.

그러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가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고 있구나’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A3.

임팩트 팀 활동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 어떤 가시적인 느낌을 받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이전에 왔었던 사람들(로컬 임팩트 캠퍼스 1,2기 참가자들)이 보청기, 버스정류장 등의 문제를 발견했던 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곳에 남아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을 봤잖아요. 우리 결과물을 공유했을 때도 많은 관계자분들이 보시고, ‘문제가 될 수 있겠다’며 공감도 해주셨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만들어낸 임팩트를 의성에서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4.

저도 그럴거라고 믿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웃음) 더보기가 프로젝트를 하며, 혹은 의성에서 생활하며 관계를 맺은 누군가의 삶에 무언가를 남겼다면, 혹은 영향을 끼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A4.

프로젝트의 결과물과 관계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무언가 남기거나 변화가 일어났던 걸 이야기해 볼게요. 심심한 의성에 재밌는 거리를 많이 만들어드린 것 같긴 해요. tv를 본다거나 화투를 치신다거나 하는, 조금은 심심할 수 있는 일상이셨을텐데 청년들이 와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니까 좋으셨던 것 같아요. 할머니들도 웃으시고 내세마을 사무장님도 웃으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웃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Q5.

청년들을 정말 좋아해주시죠. 7주 동안 활동하면서 지역에 청년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나요? 어떤 부분에서라도요.


A5.

쉽게 도울 수 있는 것들이 두드러지기는 해요. 일할 사람이 없고 돌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한 현실이니까요. 저는 사실 청년들이 많이 들어와서 새로운 공간들을 많이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서 도시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촌은 촌스러워야 한다.’는 거였어요. 도시처럼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놀 공간을 만들어서 청년들이 살 곳과 할 일을 만드는 것 보다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조금 더 잘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Q6.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잘 융화되는 게 중요하겠죠. 그러면 본격적인 더보기의 프로젝트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문제’를 정의하고 발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죠. 어떤 시각 혹은 어떤 마음으로 문제를 찾고자 했었나요?


A6.

처음에는 정말 이 사람들이 필요한 게 무엇일까, 이 사람들도 해결하고 싶지만 손을 못 대고 있거나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가치가 큰 건 무엇일까 등의 생각으로 접근했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시간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께 불편한 걸 여쭤보면 ‘노인이라서’, ‘늙어서’, ‘시골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많이들 대답하시고, 위험하거나 다칠 것 같다고 말씀드려도 ‘그냥 넘어지지’,’ 죽으면 되지’ 이런 식으로 반응하시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처음에 인터뷰로 풀어나가려고 했던게 잘못이었나, 관찰조사가 더 필요했나 싶었지만, 사실은 필요한 것들을 직접 입으로 듣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Q7.

임팩트 랩 러너들 모두 진심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게 느껴졌어요. 사실 프로젝트 주제를 여러 번 바꾸다보니 어려움이 있었잖아요. 주제를 바꾸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7.

우선 가장 크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량의 한계가 있었어요. 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노인분들은 이런 문제를 겪고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미리 예상하고 접근했다면, 이제는 정말로 노인분들이 겪는 문제는 무엇일까 당사자 분들의 소리를 듣고 접근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제도 바꾸게 되었던 것 같아요.


Q8.

주제가 바뀌고, 길을 잃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A8.

중간중간 일이 좌절되고 계속 피보팅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올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는데 하다가 중간에 어디선가 막혀서 다시 하고 다시 하고 반복하는 작업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래서 길을 잃었을 때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막상 상황에 닥치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우리가 피보팅을 하는 이유가 능력이 안돼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런 경우가 많았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방향성을 계속 수정해야 하고, 정말 큰 가치가 있데도 포기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다른 걸 찾게 되는 과정 자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으려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좋은 팀원들을 만났고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조력자분들을 만났고, 우리와 관계를 쌓아갔던 어르신들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이런 사람들 덕분에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나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우리가 할 수 없는 상황에 계속 부딪히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다가 어느 선 이상을 넘어가니까 작은 거라도 할 수 있는 걸 하자라는 마인드가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9.

마인드가 바뀌게 된 전환점이 있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 건가요?


A9.

아무래도 내세마을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많은 걸 느낀 것 같아요. 가면 항상 반겨주시고 챙겨주시고 같이 웃고 떠드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그분들에게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하나라도 해드리자는 마음이었죠. 지금 아니면 못해드릴 수도 있고,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Q10.

중요한 전환점이네요. 그러면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본인이 변화하고 성장했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나요?


A10.

원치 않게 맺어진 어른들과 어떻게 잘 지내야 하는지 몰랐어요. 어른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관계를 쌓는 일 자체가 힘들었는데 여기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풋살도 많이 하면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도 잘 지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말도 잘 걸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되고… 그런 부분들이 바뀌었죠.


Q11.

어떻게 보면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더보기가 로컬에 기여하고 싶은 본인의 역량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A11.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무엇이고 얼마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는 사람들을 제 편으로 만드는 걸 잘하는 것 같아요. 만약 로컬에 온다면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을 모아서 공간도 만들고 일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만약 오지 않더라도 나와 친한 사람들이나 내 편인 사람들에게 ‘의성 좋으니까 한 번씩 놀러 와라, 그리고 의성에 와서 돈 좀 쓰고 가라’하면서 의성을 홍보할 수 있는 작은 홍보대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Q12.

의성을 애정하는 게 정말 느껴지네요. 의성이 낯선 곳이라서 이방인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7주 동안 의성이라는 지역에 녹아들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요?


A12.

많은 것 같아요. 여기 금강장에 놀러 오는 친구들이랑 맺은 관계들도 특별하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났던 내세마을 주민분들, 의성 주민분들을을 만나면서도 녹아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얼굴을 알아봐 주시거나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신기했어요. 또 풋살 모임에서 만나는 의성 형들이 제 이름이나 나이를 기억해주고 하는 걸 보면서도 놀랐어요. 뭐라도 ‘형이 사줄게',  ‘내가 사줄게’ 하면서 이것저것 사주시는 사람들도 되게 많았고요.


Q13.

아무래도 임팩트 랩은 인터뷰도 많이 하고, 내세마을에 방문하기도 하다보니 의성 주민분들을 만났을 것 같아요. 의성 주민분들과 만났던 날 중에 기억에 남는 날이 있나요?


A13.

농부달장(지역 플리마켓)에서 공연 노래소리에 맞춰 나만의-성 사람들이 다같이 호응하고 분위기를 살렸던 날이 기억에 남아요. 그 자리에 나와있던 상인분들, 구경하는 관람객분들, 앞에서 공연해 주시는 분들 등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우리가 만들어 준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젊은 청년들이 다같이 와서 무언가 하고 있구나 하면서,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봐줄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Q14.

맞아요. 모두가 좋았던 날로 손꼽을 만큼 즐겁고 의미있는 날이었죠. 그러면 지역 주민분들과의 관계가 점점 변화했던 적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더보기의 생각을 편하게 들려주세요.


A14.

용주밥상 사장님이신 동욱이 형이 생각나요. 원래 사장님과 손님이었다면 지금은 같이 풋살 하는 형, 동생이 되었어요. 저희들 사이에 특별한 일이나 경험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같이 만나서 풋살을 했고, 지나가다가 만나면 인사하고, 또 그냥 풋살 쉬는 시간에 이야기하고… 이게 전부였는데 어느새 헤어지기 아쉽고 정이 많이 든 것 같아요. 

Q15.

그럼 이제 마지막 챕터에요. 나만의-성 이라는 공동체가 더보기에게는 어떤 공동체였나요?


A15.

프로젝트는 시작과 끝나는 날짜가 정해져 있잖아요. 거기에 맞게 관계를 형성하고 너무 친해지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의성에 와서는 날짜가 흘러가는 감각이 잘 안 느껴졌고, 계속  ‘기간이 아직 남아있으니 조금 더 친해져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친해져버린 것 같아요. 막상 이제 헤어지려고 하니까 너무 아쉽고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걱정도 돼요.


Q16.

나만의-성 식구들과 다함께 생활하면서, 또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A16.

내 일처럼 아파하고 위로해 주고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배려심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것 같아요. 다들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 소외되는 사람 없이 똘똘 뭉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 서로 전부 다른 사람들이라서 배울점도 너무 많았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의성에 온 이유 by 쫑pr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