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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부스터 Oct 20. 2024

금주 다이어리 Day4

묵은 때를 벗겨내다

현재 시간 am 12:44 오늘은 청소로 불태웠다.

비교적 빠른 나이 28살에 결혼을 했다. 어디에 살지가 가장 큰 고민이였다. 초등학교 동창인 우리 부부는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둥지를 틀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알아보는 동네는 평촌 인근.. 정확히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지역이다. 딱히 평촌을 고집하는 건 아니였지만

둘다 서울로 출근해야하면.. 어디가 좋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평촌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이사를 왔다. 새로 생긴 아파트들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서 20살이 훌쩍 넘는 구축 아파트가 되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가 그나마 가장 늦게 지어진 아파트였으니깐.. 다른 아파트는 년식이 더 되었다. 친구네 놀러다니며 아파트 구조, 구축 아파트의 주차장 문제 등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평촌은 지리상 위치, 학구열 때문에 대체로 집 값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 우린 그 구축 아파트에 비싼 전세값을 주고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동편마을이라고 그린벨트로 묶여있었던 곳이 개발이 허가되면서 신축 빌라들이 이쁘게 들어섰다고 신혼집 임장설을 듣고 있으니 내가 거기서 살고 싶어졌다. 친구는 행원인데 대출을 거의 무이자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근데 대출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가 보다. 신축 빌라는 다가구 주택으로 무이자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구조라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역시 세상에는 꽁자는 없는거 같다.

동편마을도 전세가가 높은 편이였지만 구축 아파트에 들어가느니 신축빌라가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때 당시 동편마을 그야말로 신혼집으로 핫했고, 우리는 어머님의 지원을 받고, 무대출로 전세집을 구했다. 주변 친구들은 무대출을 특히나 부러워했다.

등기부등본을 꼭 떼봐야한다는 행원 친구의 조언에 우리는 어설프지만 깐깐한척하는 세입자 코스프레를 잠시나마 했었다. 동편마을 신축빌라는 건물 통째로 주인이 한명이고, 보통 주인이 꼭대기층에 거주하며, 아래집들은 세를 주고, 1층은 가게월세를 받는 말 그대로 갓물주였다. 건물주 부부는 돈 많은 인자한 사람들 같았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우리를 만날때마다 온화한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셨다. 우리 부부는 사는내내 건물주의 생각을 상상해본다. 신혼부부니깐 집도 깨끗하게 쓸꺼고, 돈도 많고, 온화한 미소를 장착한거 보면 동결로 2년더 연장해주지 않을까? 그야말로 떡 줄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받아먹을 생각에 잔뜩 기대가 컸었다. 우리집은 곧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마시며 즐기며 2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났다. 2년뒤 갓물주는 우리집을 반전세로 돌린다고 통지를 했다. 우린 말 그대로 무대출이였고, 재테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햇병아리었기에 목돈 우리도 필요 없는데, 월세내는건 돈 아까운데.. 라는 생각뿐. 생각보다 월세를 50만원을 달라고 한다. 큰 비용이였다. 불이나케 부동산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당시 동편마을 3단지가 29평형으로 국민평수 단지였다. 4억이라는 말에 억소리가 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말 그대로 무대출에 둘다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고, 아이도 없었고, 게다가 금리가 2%초반대였는데 그때의 우리는 월세는 돈 아까워, 대출은 받으면 망하는줄만 알았다.

정확히 그 아파트는 2년 뒤 8억이 되었다. 허허허 더 올라보지 못할 집이 되었다.

우린 건너편 다가구주택으로 옮겼고, 이번엔 조금 더 올려서 4층 주인집세대로 이사를 했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4층이었지만 옥상을 단독으로 쓸 수 있다는 조건이 굉장히 혹했었다. 우린 먹는거에 특히 음주의 환경에 진심이었으니깐..

옥상에서 바베큐를 해먹는 상상을하니 생각만해도 행복했었다. 이사한 날 조그만하나 테라스에서 전에 막걸리도 한잔하고, 친구들을 수시로 초대해서 옥상파티를 즐겼다.

2년 뒤 갓물주는 또한번 우리를 배신했다. 무려 전세가를 6,000만원을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2번째 집은 집크기, 단독 옥상 사용은 뿌리칠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보안에 취약했고, 무엇보다 엘레베이터 없이 4층을 오르락 내리락하는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장을 보고 오는 날이면.. 1층에서부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참에 집을 사서 이사하자 vs 그냥 전세값을 올려주고 살자 신랑과 첫 대립이였다.

난 인덕원이라는 위치만 포기한다면 그 돈으로 호계동, 의왕에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분노의 임장이 시작된다.

20집도 넘게 본 것 같다. 일단 구축아파트 제외, 지하주차장 연결 가능 한 곳! 조건으로 엄마네 동네 오전동에서부터 호계동까지 쭉~ 내려오면서 집을 봤다.

물론 나 혼자. 부동산 아주머니도 열정적인 분을 만난 것도 한몫 했다.

나온 매물을 열심히 보여주셨고, 열심히 보러 다녔다. 그땐 내가 회사를 때려치고 동편마을에서 카페를 하고 있어서 비교적 시간이 있었다.(카페를 하게 된 썰은 다음에…)

부동산 아주머니랑 짜고 신랑을 설득하기 위해 3개 집으로 추려서 보여주고,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성공이다!

우린 그 집을 전체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계약을 했다.

몰랐는데.. 그 집을 알아보러 다닐때 지금의 우리 아기천사가 내 배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같이 집을 보러 다녔다고 생각하니 외롭지 않았다.

그래서 태명도 아파트 이름을 따서 “타운이”로 지었다. (아파트가 현대홈타운이였다. )

확장보다는 폴딩도어로, 거실 마룻바닥은 헤링본으로 전체 조명, 문, 전실 하나하나 내가 생각한 인테이어로 꾸며나갔다.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우리 여기서 타운이 초등학교까지 10년 살자! 신랑이랑 우리의 첫집을 그렇게 기념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랫집이였다. 조현병인게 분명하다. 우리는 임산부와 신랑 둘이서 낮에는 거의 없고, 저녁에도 움직임이 거의 없었는데 시도때도 없이 인터폰이 울렸다.

걸어 다니기만 하면 인터폰이 올 정도였다. 9시 이후에는 안방화장실도 사용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번은 아침 7시에 인터폰이 왔다. 앞 베란다 물을 트냐는 민원이었다. 갓난아기와 밤새 씨름을 하다 겨우 단잠을 깨운 나는 그야말로 폭팔하기 직전이었다.

밖은 비가 오고 있었고, 27층 아파트 중간층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물을 틀었을꺼라는 창의적인 상상력… 조현병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된다.

내 집에서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강아지 산책을 하다가 만난 아랫집 아저씨가 또 시비를 걸어온다. 난 3개월된 아기를 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그리고 또 몇 개월 후 어느 주말.. 신랑이 주말에 이발을 하러 잠깐 외출했었고,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라고 문을 열었는데 아랫집 아저씨었다. 욕을하며 협박을 한다. 다음엔 그냥 안올라온다며 뉴스봤지? 층간소음으로 살인나는거. 협박이었다.

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문 앞에서 최대한 이성적으로 응답했고, 문을 닫고 경찰을 불렀다.

신랑은 이렇게 불안하게 살 수 없다며 문 앞에 골프채를 가져다 놨고, 관리실에 연락해 그 아저씨랑 연락을 닿게 해달라고 이야기 했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강약약강이었나보다. 장문의 긴 문자로 사과의 말을 전했고,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우리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남편이 나간 뒤에 바로 올라온거 보면 남편이 나가는 걸 보고 온것 같았다. 또라이는 상대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집 주인이 없으니깐 아랫집에서 내 쫓을줄이야. 우린 또 부랴부랴 집을 알아봤다. 신혼 4년동안 살았던 인덕원의 위치가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사이 인덕원 집값은 더 올랐고, 구축은 가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의 아파트를 저질렀다. 그땐 나는 무직 외벌이 가족이었는데,

지금 아파트로 옮길려면 대출을 더 얹어야 했고, 신랑은 부담스러워 했다.

그런 신랑을 안도시키기 위해 내가 나이가 젊은데 식당 알바를 해도 월 100만원은 못벌겠어? 대출 이자는 내가 벌어오겠노라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가정의 보탬이 될테니 가자고!

우리 신랑도 내가 믿음직스러워서 결정한건 아니겠지만 그러자고 얼떨결에 5억 5천 분양가 프리미언 3억을 얹어서 이 집을 계약했다.

그때 주변의 반응은 꼭대기 잡았다고 다들 걱정하는 말들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심 부러운 마음 아니었을까?

현재 우리집은 의왕시 대장아파트가 되었고, 가끔 아랫집 아저씨 덕분이라고 과일바구니라도 보내드려야 하지 않냐.. 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서론이 왜이렇게 길었냐면, 그래서 오늘 청소의 주제가 이제 나온다.

이런 일들을 겪고 이사를 하다보니 아이도 아장아장 걷을때고 조금 있음 쿵쾅 쿵쾅 뛰어 다닐텐데.. 주의를 시킨다 해도 애를 묶어서 키울수도 없는 노릇이고…

집 전체를 매트 시공을 했다. 그 매트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매트는 닦아도 닦아도 키즈카페 매트 같았고, (키즈카페 매트보다 더 더러웠던거 같다) 집도 좁아보이는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그 매트를 들어냈다. 우리는 이 매트 들어내면 새 바닥이겠다.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기가 통하지 않고 오염물이 안들어갈 수 없기에 곳곳에 검은 곰팡이가 껴있었고, 물을 쏟아도 절대 새지 않다던 말은 역시나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었다. 아이가 쏟은 우유가 겉은 닦았지만 그 사이로 들어가 하얗게 굳어있었고, 먼지는 말도 못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바닥에서 지냈던걸까.

청소를 하면서 다시한번 깨닫는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당장의 문제만 덮으려고 하면 안은 더 썩어 간다는 것.

매트를 뜯기전에 아이에게 몇번의 다짐을 받는다. 집에서 절대 공놀이 안돼, 뛰어 다니는 것도 안돼, 원래 안되는 거였지만 이제 더 조심해야해.

지킬 수 있겠어? 아이들은 새로운것에 흥미를 느끼기에 지금 당장 매트를 뜯을 생각에 알겠다고 여러번 대답을 해준다.

다 뜯어내고, 바닥을 청소하니 내 마음도 청소가 되는거 같았다. 그래.. 당장 주의를 돌린다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언제나 남아있어.

나도 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맞서서 해결해보자. 조금의 용기가 단단해졌다.

깨끗해진 집에 있으니 정신이 한결 맑다.

오늘은 금주 4일차인데 두통이 시달렸다. 알코올 금단현상인건지.. 카페인 금단현상인건지 모르겠지만 저녁때 되니 두통도 한결 좋았졌다.

이참에 쇼파도 바꾸기로 했다. 청소를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이케아로 가본다. 사실 큰 기대 없이 갔다. 마음에 드는게 있을까?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쇼파를 발견하고 나는 신랑의 반응을 살핀다. 다행히도 신랑도 마음에 드는 눈치다. 너가 원하는 스타일이였잖아 ~ 이걸로 하자!

당장 거실에 있는 쇼파도 내다 버리고 싶지만.. 새로운 쇼파가 올때까지 아이가 앉아서 티비볼 수가 없다는 말에 참아본다.

한김에 아이 옷도 정리하고, 한숨을 돌리니 11시.. 아이를 재우면서 같이 눈을 감고 싶었지만

다른건 몰라도 금주 다이어리는 한자라도 꼭 적자라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테블릿을 열었다.

오늘 정말 많은 일들을 해치운 하루였다. 오늘 좀 늦게 잠들긴 했지만.. 5일차 아침 컨디션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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