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잃어버린 승리의 전주곡
2021년 8월 30일, 23시 59분,
미군 제82 공수사단 소속의 크리스 도나휴 소장이 소총을 쥔 모습으로 수송기에 오르면서, 20년간 이어오던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이 끝나게 됩니다.
소총 하나를 손에 들고 굳은 표정으로, 수송기에 발을 올리는 그의 모습은 야간투시경에 잡혀 역사속의 사진으로 남게 됩니다.
사실 군대에 있었던 분들이라면,
이 사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상상이 가실 거예요.
사단장이 참모진 하나 없이, 금방 총알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지역을, 그것도 야간에 혼자서 활보한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지...
거기다가 흐릿한 야시경과 강한 조명을 피해서, 저렇게 얼굴 윤곽이 잘 나올 정도의 해상도를 만들기 위해, 담당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본인이 의도는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착잡함을 느꼈답니다.
사진 한 장이 주는 미군의 메시지가
너무나 명확해 보였기 때문이에요.
'이 전쟁에서 우리는 발을 빼지만,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번 철수의 의미는 베트남과는 다르다...'
마지막 수송기가 이륙하고,
이를 지켜보던 탈레반군들은 텅 빈 공항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으며, 밤하늘을 향해 기쁨에 겨운 총성을 울립니다.
'그곳에서의 전쟁은 신화 속의 싸움 같았다.
왕이 그들의 한쪽 머리를 잘라버리면,
다시 또 하나의 머리가 나오는
신화 속의 괴물, '히드라' 같았다.'
- 플루타코스 영웅전,
알렉산더의 '아프간 정복전' 묘사에서 -
그리고,
잘려 사라진 줄 알았던 히드라의 머리가
다시 세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아프가니스탄.
테러와의 전쟁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난 시간에
새로운 아프간 주둔군 대장이 등장합니다.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예일대 박사까지 받은, 거기다 이라크에서 전쟁 경험도 있는 워대디, 글랜 맥마흔 대장이 온 것이었습니다.
어디든 전쟁이 있는 곳이면,
국가를 위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글렌 대장.
부임한 이후부터 그는 누구도 하지못한
이 전쟁을 끝장낼 생각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늘 해왔던 것처럼 교과서가 말하는 솔선수범하는 리더쉽을 선보이죠.
그런 그의 눈에 이곳은
너무나 긴장감 없는 모습입니다.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동맹국가 장교들,
피자집과 햄버거 가게 까지 있는 마을같은 병영.
긴장된 전쟁터를 생각하고 온 글렌의 눈에,
이 모든 상황들은 너무나 나태하게만 보입니다.
그런 그에게 미국 정부의 사람들은 이야기하죠.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원한다.
해결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빨리 종결 되었으면 한다.
그의 전임자는 이 임무를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당신의 추진력과 결단력을 보면 이 임무의 적임자인 것 같다.
하지만 다시,
해결책이 뭔지는 우리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 대사관 사람들은 더하여 못을 박습니다.
자신보다 오래 이곳에 있었던 전문가들마저도 답을 모르겠다는 상황, 더하여 필요한 병력 지원까지 없다고 사전에 잘라서 못 박아 버립니다.
전임자가 무능하여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는 협박성 이야기까지 슬쩍 비치며 이들은 글렌을 압박합니다.
글렌은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점점 느끼게 됩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높은 사람,
카르자이 대통령.
그에게 장황한 아프간 안정 계획을 이야기하는 글렌장군 (대통령은 새로산 DVD 플레이어를 설치 중 이었습니다). 장군의 말을 한참 듣던 대통령의 표정이 영 못마땅해 보입니다.
협력하여 같이 아프가니스탄을 여기저기를 다녀보면서, 구석구석까지 재건하자는 글렌의 말에 대통령은 마지못해 이야기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장군.
하지만 나는 이미 이 나라를 많이 다녀 봤다오."
이 나라의 현실을 알기 위해 글랜은 이제
아프간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한 마을의 촌장님은 글랜에게 이야기합니다.
"미군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노상방료나 하고,
주민들에게 상놈들이라고 욕을 합니다."
아프간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미군 군사고문은 작심하고 이야기합니다.
"저놈들은 항상 도둑질하고 마약에 취해 있습니다.
저 빌어먹을 놈들은 항상 취해 있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재건전문 농업 전문가.
왠일인지 밭에는 마약 재료인 양귀비꽃이 가득합니다. 왜 양귀비를 기르냐는 글렌의 질문에 그는 대답합니다.
"대체작물로 목화를 심을 수 있지만,
미국 정부가 향후에 세계 시장에서
미국 농민들과 경쟁하게 될지도 모르는 목화를
재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글랜은 점점 이곳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캠프로 돌아온 글렌은 재건계획 수립을 위해
작전참모에게 지역에 대한 브리핑을 받습니다.
그런 그에게 작전참모가
유독 강조하는 곳이 있습니다.
헬먼드(Helmand),
아직도 탈레반들이 점령 중이고 가치도 없는 이 지역은 작전에서 피할 것을 참모는 강력히 건의합니다.
뉴스들을 보면서 여론의 방향을 살피는 참모들.
그들을 하찮게 여기는 글랜에게 참모들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저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글랜은 그가 또 다른 전쟁터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바로 '언론' 이 그것이었습니다.
커다란 지도에 선을 그리고,
군인들을 전진시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던 그의 계획이 사실은, 언론의 지지율 숫자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합니다.
한 편의 쇼가 되어버린 전쟁터.
글랜은 답답한 상황을 끝내버리기 위한
'한 방' 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선이 한 번도 점령하지 못한 땅으로 향합니다. ‘헬먼드'... 그곳을 점령하고 미군의 강함을 보여주겠다!
글랜은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전쟁을 마무리하러 온 게 아니야.
승리하러 온 거지."
이제 헬먼드를 점령하기 위한 병력들이 집결합니다.
해병대 병사들이 소집되고 수많은 군장비들이 출발을 기다리는 상황. 글랜은 이 전쟁에 핵심키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바로 작전에 투입되는 해병들이죠.
이제 작전에 투입될 해병들 앞에 선 글랜 장군,
그가 병사들에게 사기를 끌어올리는 연설을 합니다.
연설을 마칠 즈음... 한 병사가 손을 듭니다.
그리곤, 줄곧 표정이 어두워 보이던 한 병사가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행동하려고 애
씁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우리.
에게 총을 들고 달려들 때,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장군님."
'워머신' 은 영원한 미남배우,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영화입니다.
9.11 테러 이후 전쟁을 거듭하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이미,
엄청난 국력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전투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던 미국.
(보통은 그 반대인데 말이죠)
카불의 마지막 미군기가 떠나는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이제 이 전쟁놀이의 끝이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를 생각해 본다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느끼고 있었을 답답함이 영화를 통해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사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저는 이미 한 번 보았더랬습니다.
당시에는 가볍게 보았던 블랙코미디 를
다시 꺼내보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인터넷의 댓글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지금의 결과에 대한 여러 의문이 생깁니다.
먼저 미국의 무능함에 대하여
비난하는 사람들의 글들이 보입니다.
20년 동안 바보짓을 한 미군들,
도대체 저 많은 장비를 왜 그냥 버리고 도망 나올 수밖에 없었나...
미군이 아프간에서 생각만큼 무능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이 전쟁의 의미에 대한 내용이었죠.
영화에서 글렌 장군은 전쟁의 의미를 정확하게 집어냅니다. 이 전쟁은 '재건' 작전이고, 이러한 작전은 '인기투표' 와도 같다는 것을 말이죠.
현지 사람들과 친해지고,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고,
그것들을 지킬 군대를 양성합니다.
베트남전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경험들이 야전매뉴얼에 반영되었고,
미군 장교들은 충실히 이러한 규정을 배우고,
이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현지인들에게 좋은 사람들로 보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하나씩 보여줍니다.
'선거'에 따라 평가받는 민주국가에서
'여론'의 지지는 전쟁지속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계속해서 시간을 끌고 있었고, 늘어나는 전사자들의 숫자를 보면서, 미국 유권자들의 머릿속에는 베트남전의 악몽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의 관료들은
지속적으로 아프간 현지 사령부에게 요구합니다.
'추가 파병은 없다.'
즉 더 이상의 희생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영화의 중반부에 가면 관료들은 글렌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멋진 ‘승리' 의 소식이 아니라,
미국 시민들에게 아프간이 재건되고 있다고
납득시킬 정도의 '예쁜 숫자' 라고 말이죠.
결국 미국은 상황 파악은 했을지 몰라도,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뭐...
이번 퇴각에서의 혼란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질서하고 바보같았죠.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유능했으나..,
그래도 대부분은 무능했다고 할까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어떨까요?
많은 댓글에서 사람들이 저항 의지가 없는 아프간 사람들의 무능함을 비웃으면서, 더하여 이전의 한국은 그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누구도 가지 않았던 지역,
헬먼드를 점령하러 가겠다는 글렌 장군.
허가를 받아야겠다는 글렌 장군에게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야기합니다.
"어차피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잖소?
그래도 이런 연극에 끼워주어 감사하게 생각하오."
작전이 일어나는 헬먼드 지역..,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은 미해병대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내몰립니다.
싸울 의지 없이 끌려 나가는 군인들.
(이 장면들은 미군이 아프간에서 겪어야 했던 사실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들에게는 싸워야할 뚜렷한 목적이 없어 보입니다.
미군도 찾지 못하는 적을 볼 수도 없거니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딱히 나에게 피해준 것도 없는 저들과 왜 싸워야는지 이유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전쟁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분명 영국, 소련과도 맞서 싸웠던 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막연한 실체 보다도, 눈에 보이는 지켜야할 것들을 미국이 만들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죠.
새로운 점령지 헬먼드 주민들에게
글렌이 연설을 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가져다주겠다.
탈레반은 여러분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우리가 학교와 도로를 지어주겠다.
그리고,
군대를 만들어 여러분들을 보호하게 하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합니다.
"시설이 생기면 우리도 좋다.
하지만, 어차피 당신들이 떠나면 다시 여기는
난장판이 될 거다.
미군이 오래 머물수록 우리도 힘들어지니,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 달라."
그리고... 아쉽게도 지금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이 된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아프간 사람들의 처지는 딱해 보입니다. 분명 전사의 피들이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통합해줄 지도자가 없으니 말이죠.
많은 이들이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와 그들을 비교합니다만, 저는 조금은 회의적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학습된 동기와
수니파와 시아파, 종파라는 관습화된 동기.
하나의 민족으로 정의되는 우리의 정체성과
파슈툰, 타지크, 우즈벡, 하자라...
다양한 민족으로 정의되는 그들의 정체성.
더하여 세속주의와 근본주의...
이들을 하나로 엮는 것은 실제로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까요.
거기다 냉전시대
소련이라는 명확한 저지목표가 있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의 의지는 다를 수 밖엔 없습니다.
더하여 그런 생각도 해보았답니다.
차라리 아프간 전선이 우리 낙동강 전선처럼
뒤가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였으면 어땠을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던 우리들 처럼
이들 역시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았을까?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판지사르의 남은 저항군들의 굳은 결의를 보면, 그런 생각도 들곤 합니다.
이 영화는 미군이 처한 새로운 상황을 보여줍니다.
과거 전쟁에서는 군복을 입은 적이 잘 보였습니다. 그들을 물리치고, 명확한 목표인 적국의 수도를 향해 공격하는 미국의 모습.
이런 전쟁에는 천하무적인 미군도
보이지 않는 적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재미있게도 영화가 계속되는 동안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라도 해주는 듯 합니다.
적군 탈레반에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화면 어딘가에선 총알들이 날아오지만,
정작 적군인 탈레반 군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령과도 같은 적,
여론과 보급제한에 걸려.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린 미군들.
이 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승리함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깨닫고 있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얻어야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헬만드로 출발하기 전,
손을 들고 질문한 병사에게 글렌이 이야기합니다.
"(이 전쟁의 의미에 대해)
자네 스스로를 먼저 이해시켜야겠군."
탈레반이 물러나고 미군이 머무른지도,
무려 20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아프가니스탄.
어쩌면 이 전쟁,
너무 긴 시간이 흘러버려 어느 순간,
당사자인 미국 조차도 무엇을 하려던 것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게 변해버린건 아닐까요?
다시 한 제국이
그들이 찾던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 갔습니다.
발을 들인 사람들의 모든 의지조차도 지워 버리는 이 산골 나라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죽은 줄 알았던 히드라 괴물의 몸에서
다시 새로운 머리가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변의 나라들은 그 괴물의 머리가
어디로 향할지에 긴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