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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아빠.

by 송대근
"다녀왔습니다, 아빠."


1년 만에 돌아온 본가.

익숙한 듯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왔다.

역시나 개가 먼저 손님을 반기러 뛰어나왔고, 이윽고 아버지도 얼굴을 보이셨다.

"어, 왔냐?"

바닥을 끄는 듯한 아버지의 발걸음. 구부정한 아버지의 등.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 저 정관수술 했어요."

"그래, 카톡 봤다. 저녁 먹을 거냐?"

아버지는 별 관심 없으시다는 듯 주제를 돌리셨다.

하지만 정말 관심이 없으시다면 카톡조차 보지 않으셨겠지.

어찌 대응할지 모를, 난감하고 민망한 상황에 대한 아버지 나름의 대처라 생각했다.


"이제 어버이날인데, 처갓집에 인사는 했냐?"

"처갓집이랑은 저번주에 미리 식사하고 왔어요."

"그래. 잘했다. 뭐 먹었냐?"

"오리고기요."

대화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결혼 이후에 내가 민감해진 걸 지도 모른다.

그래. 원래 우리 집은 이런 대화를 나눴었지.


30년 넘게 함께 산 가족이 서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우리 가족은 원래 피상적인 대화를 했다.

그저, 내가 이 가정 내에 살고 있으니 이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뿐.

그렇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뿐.


결혼을 준비하면서 처갓집을 방문하게 되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집이 '이상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사실 그건 내 건방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다는 것은 어느 곳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척도다.

그저, 다를 뿐이겠지.


나는 결혼을 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이상해지셨다고 생각했다.

말이 통하지 않고, 답답하고, 되풀이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버지와 달라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아버지는 전혀 이상해지지 않으셨다.


"아빠, 식사하시고 엄마랑 같이 산책 가실래요?"

"아니, 난 됐다."

"다리 아파서요?"

"어. 난 너희처럼 오래 못 걷겠다."

익숙한 대화였다. 아버지는 우리와의 시간을 보내기 싫으신 게 아니었다.

그저, 당신의 다리가 오래 걷지 못하셨다.


"아빠, 내일 점심에 뭐 하세요?"

"운동 간다."

"댄스 스포츠요?"

"어."

아버지는 댄스스포츠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춤바람 들었다고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항상 '운동'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취미와 어머니에 대한 배려 사이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빠, 이거 선물인데. 귀한 중국 술이에요."

"그래. 멋있네. 한 잔 해야겠다. 오늘은 자고 가냐?"

"네. 내일 돌아갈 거예요."

"저녁은 뭐 먹을래?"

아버지는 밥에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식사자리를 핑계 삼아 아들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다.

말재주가 능숙하지 않으셔서, 원만한 대화소재를 잡지 못하셔서 술핑계만 자꾸 대신 것이다.


"너, 술 마셔도 되냐?"

"가끔은 괜찮아요."

"며느... 걔는 뭐라고 안 해?"

"안 들켜야죠, 뭐."

술자리 말고는 아들과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 재주가 없으셨던 아버지는, 아들의 금주가 내심 아쉬우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술 한잔 하게 해 달라는 말씀을 그렇게 말씀하셨겠지.


아버지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도 그렇게 나를 기억하겠지.

그렇게 세대는 뒤집히고 맞물린다.


노웨딩을 핑계로, 바뀌지 않는 삶들 사이로,

인생은 어느새 뒤집히고 있었다.

그렇게 바뀌지 않는 것들이 결국 세상을 뒤집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이다.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뿐만 아니라,

선택으로 묶여진 가족까지도.


"제 결혼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끝이에요."




아니,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과거의 그림자를 걷고,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미래로 나아가는,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첫걸음.


-<노웨딩, 인생을 뒤집을 줄이야?!> 끝, 시작-


지금까지 <노웨딩, 인생을 뒤집을 줄이야?!>를 함께 걸어와 주신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결혼식은 하지 않기로 선택했지만, 삶은 더 깊이 있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향해 흘러갔습니다.
연재는 여기서 끝이지만, 이 선택 이후의 삶은 이제 막 시작입니다. 작가가 느꼈던 감정들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짤막한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노웨딩’이라는 화두 앞에서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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