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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어요. 정말입니까?

by 송대근
“돌이킬 수 없어요. 정말입니까?”


의사의 목소리는 낮았고, 내 심장은 그보다 더 고요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네, 확실합니다.”


정관수술을 결심한 날이었다.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날은, 나의 과거를 인정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정면에서 마주한 날이었다.




이번엔 나의 이야기다.


나에게는 두 명의 ‘어머니’가 있다.

세상에 나를 낳아준 여자와,

세상 속 나를 키워준 어머니.


아버지의 설명에 의하면, 아주 어릴 때.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에 부모님은 이혼했다.

아버지는 나를 데려갔고, 낳아준 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한 번도 얼굴 보러 오지 않았다고?’


내게 생명만을 주고 떠난 여자.

그 사람에 대한 실망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염증처럼 퍼져 있었다.


반대로, 묵묵히 피붙이도 아닌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에겐 말로 다 못할 감사를 느낀다.

어머니는 내게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찍이 마음을 정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내 몸의 절반은 그 여자에게서 왔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는 건, 유전자를 또 한 번 세상에 남긴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비출산은 나에게는 복수와도 같았다.


하지만 내게 진짜 가족이 되어준 어머니께 받은 은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세상에 되갚고도 싶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는 내 방식으로 가족을 이룰 거라고.

생물학적 연결이 아닌, 선택의 사랑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입양을 통해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언젠가, 입양된 아이가 내 품에 안긴 채 조심스럽게 묻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빠는 왜 나를 선택했어요?”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것이다.
“아빠는 너를 선택한 게 아니란다. 우리가 만나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뿐이야.”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인연은, 또 다른 이름의 사랑으로 다시 내게 돌아올 것이다.


정관수술은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삶의 방향이 확고하기에 망설임은 없었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아내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지만, 그 배경에는 아내가 겪은 힘든 과거도 있었다.


나는 그 상처를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다.




수술은 간단했다.


수술시간보다도 무자녀 부부에게 수술의사 재확인, 상담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예상된 절차였기에 수술길에는 아내가 함께해 주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함을 확인한 의료진은 곧 수술실로 안내했다.

수술실 앞에서, 아내는 내 손을 꼭 쥐었다.

“잠깐이면 끝난대. 금방 나와.”

담담한 척 말했지만, 나는 수술대에 누워 스마트폰에 정신을 팔았다.

아니, 팔려고 노력했다.


"묵직하게 불편하실 수 있어요."

친절을 뒤집어쓴 업무적인 목소리. 그 뒤로 이어지는 따끔한 느낌과 함께 아랫배로 밀려들어오는 둔탁한 감각.


"지금 찌르고 있습니다. 느껴지세요?"

"아니요."


그때 의사가 찌르고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
송씨 가문의 대?

무책임한 어떤 여자의 흔적?
보편적 가족관념에 대한 죄책감?

확실한 건, 정관은 아니었을 것이다.


의사는 마취를 확인하고는 이윽고 익숙한 듯 수술을 시작했다. 정관을 잡아당길 때 드는 약간의 불편함 말고는 통증은 없다시피 했다.

단백질이 타는 고소 하면서도 탄내 섞인 냄새를 뒤로 수술은 마무리되었다.


수술 부위에 압박드레싱을 걸치고 병원을 나서자, 어적어적 걷는 우스꽝스러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걸음걸이.


맞다. 20여 년 전, 초등학교 5학년, 포경수술을 했을 때도 딱 이랬다.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엄마손에 끌려갔고, 이번엔 내 발로 걸어갔다는 것.


"고생했어, 여보. 먹고 싶은 거 있어?"

약국에서 항생제를 타고 나오는 길. 아내는 나에게 점심메뉴를 사 주겠다고 했다.

차이가 없다면 그 때나 지금이나 돈가스를 먹어야 한다는 것.


그 때나 지금이나, 수술 뒤 돈가스는 별 맛이 없었다.

20년이 지나도 바뀐 건 없었다.
누가 정했을까? 그저 의례적인 식사행위.


그리고 식사를 끝낼 무렵,
입속 돈가스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머릿속엔 질긴 숙제가 뭉게뭉게 떠올랐다.



'... 부모님껜 뭐라고 설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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