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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마지막 금주일기.

by 송대근

스마트폰 액정이 깨지는 바람에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운명일까, 그렇게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 나 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그토록 바라던 금주상태에 다다르게 되었다.


본래 나는 금주, 그렇니까 음주충동을 참는 상태에 놓여있었고 또 욕망을 잘 참지 못했다.


아무래도 '참아가는' 금주의 한계였으리라.


하지만 무슨 변덕인지,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이 들면 결국 술을 끊어야 할 텐데, 지금부터 끊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시작해 말의 방법도 바꿨다.


'나는 술을 못 먹거나, 끊은 게 아냐. 안 먹는 거야.'


술을 '안 먹는다.'는 표현으로 건강이나 평화 같은 다른 목적에 의해 이루어야만 했을 금주가, 그냥 내가 금주 자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치 식스팩을 만들고 싶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운동 자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상태.


지금의 나는 금주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고의 전환 이후, 더 이상 15년을 따라다니는 음주충동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나는 더 자신감 있고 성취적인 느낌을 항상 받게 되었다.


이제 아내에게 금주를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금주, 라기보다 그냥 술이 나의 인생에 없는 것이 되어버린, 이렇게 말하면 뭐 하지만 해탈한 느낌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감정만 표현할 수 있을 뿐, 원인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또 마시기 시작할 수도 있을까? 글쎄,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유혹이 아닌 내 의지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겠지만. 오랜 기간 싸움 끝에 얻어낸 이 정신상태를 재차 음주하여 다시 그 중독상태로 돌아기고 싶진 않다.


일단 중독되어 충동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 갈증을 참아내기는 몹시 힘들기 때문이다.




무소유에서 그런 말이 있던 것 같다.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삶을 불행하게 한다고.


나에게는 술이 덜어내야 할 대상이었고, 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버림에는 성공했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기분이 바뀌었다는 것이 믿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마지막 한 수를 두기 위해 그동안 5년이 넘은 시간 동안 싸워왔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또 그리 쉽지도 않았다.


아무튼 그렇다.


지금으로서는 나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더 이상 음주충동이 들지 않고, 드디어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느낌이다.


한편으론 허무하다!


평생 못 해낼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오는구나!


앞으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되는대로 써 내려간 금주일기와는 다르게, 경험을 읽기 좋은 형태로 정리해서 또 다른 글을 하나 써보고 싶은 기분이다.


5년 전, 처음 금주를 다짐하고 샀던 팔찌다.


Sober라고 적힌 이 팔찌는 처음 금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억압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참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1년 만에 다시 술을 입에 댔겠지.


하지만 이제는 금주에 대한 다짐도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이 팔찌도 필요하지 않다.

아내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금주일기도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두 권에 이어졌던 이 일기를 이만 덮는다.

2025.11.05, 지중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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