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불교에서는 '모래 만다라'라는 수련의식이 있다.
그 안의 철학은 매우 깊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해 수개월간 모래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면 쓸어 담아 강에 버리는 것이다.
윤회, 무상, 찰나. 이 수련의식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인간이 느낄 어떤 감정일까?
이에 나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 나만의 수련을 해 보기로 했다.
세상 만물은 바다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다.
바닷물이 증발해 물이 되고,
물이 대지에 뿌려져 곡물을 자라게 하고,
다시금 생명을 탄생하게 했다.
알코올 만다라의 준비는 이렇다.
물
사과, 설탕
효모
준비가 끝나면 뚜껑을 덮고, 어둡고 서늘한 곳에 통을 옮긴다. 이제 모든 일은 하늘에 맡기고 기다린다.
하늘의 햇살, 거친 바람. 변덕스러운 온도.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대자연의 선택에 순응한다. 알코올 만다라의 시작은 나 자신이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시작된다.
2주일이 지나면 모든 것은 뒤섞여, 알록달록하던 사과의 모양은 온데간데없이 녹아버린 펄프만 남게 된다. 효모에 의해 발효부패가 진행된 것이다.
사과가 떠난 자리엔 연한 사과색이 입혀진 물이 남게 되었다.
처음 뚜껑을 열면, 달콤한 사과향도 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코를 찌르는 통증이 느껴진다.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달콤함 뒤에는 날카로운 것이 도사리는 것이다.
자기 역할은 다 한 사과펄프를 걷어내고, 남은 것에 팔각, 월계수잎을 넣고 1주를 더 기다린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효모는 계속 발효를 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보지 못하는 일이 수도 없이 많고, 그렇게 세상은 유지되고 있다.
3주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발효가 끝났다. 조금 떠서 향을 맡으니 팔각과 월계수잎의 동양적인 향이 밀려온다. 끝에 은은한 사과의 향도 따라온다.
맛을 보자 처음부터 '크~' 소리가 날 정도의 알코올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독함이 가시기도 전에 사과의 달콤함이 혀를 달랜다.
비로소 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수준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알코올 만다라로 만드는 술은 나에게 가장 맛있고 완벽한 술이어야만 한다. 끝의 달콤함이 조금은 눅진하다고 생각돼, 통레몬을 얇게 썰어 하루간 넣는다.
하루 뒤 레몬의 시트러스향이 술의 피니쉬를 가볍게 바꾸어 주었다. 드디어 완벽한 술의 베이스가 완성되었다.
사과의 단맛, 팔각의 정향, 레몬의 시트러스가 한데 어우러져 산미가 폭발하면서도 알코올 부즈는 전혀 없는 좋은 술이 완성되었다.
이제 모든 부유물은 건져내고, 술을 차가운 곳에 옮긴다. 이틀 정도의 시간을 거쳐 콜드크래싱이란 과정을 통해, 남아있는 효모의 활동을 멈추고 제거하는 일이다.
이틀 뒤, 바닥에 쌓여있는 효모와 이물질은 건들지 않고 조심스럽게 상부의 맑은 액체만을 모은다.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이렇게 알코올 만다라에 어울리는 술이 완성되었다.
이제 마지막 시간이다.
바다에서 온 것을 모두 바다로 돌려보낸다.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입에 가장 완벽한 술.
그 술을 만드는 데 한 달이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금주를 아무리 오랜 기간 유지하더라도, 그것이 깨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듯.
하지만 나는 스스로 술을 만들고 다시 술을 돌려보냈다.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무념무상.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할 필요가 없을 뿐.
이제야, 나는 알코올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