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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밥상에 오르면 안 돼요!

by 송대근
“정치는 밥상에 오르면 안 돼요!”


“왜 안 되는데? 내 집에서 내 말도 못 하냐?”

아버지는 격앙된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셨다.




상견례를 딱 2주 앞둔 어느 토요일 저녁,

그녀와 함께 부모님과 마지막 식사 자리를 가졌다.

예비신부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여자친구와 마지막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오후 7시, 온 가족이 시간 맞춰 모이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은 먼저 모여 다 함께 여자친구에게 대접할 손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약속시간에 30분 늦으셨다.


차가 막혔다거나, 그런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고.

본인이 좋아하시는 ‘댄스스포츠’ 때문이란다. 뭐, 이미 늦은 건 어쩔 수 없지.

일단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 넘어가려고 했다.


무엇보다 상견례를 앞두고 사전에 조율할 부분은 먼저 맞추는 게 좋을 테니. 나는 오늘 저녁식사에 그런 많은 이야기가 오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기가 안 좋았을까? 때마침 지역선거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열렬한 ‘진보’ 정당 팬이시다. 그렇다면 좀 진보적이시면 좋을 텐데...

‘그래도 정치 이야기는 안 꺼내시겠지?’

내심 상식적인 태도를 기대하면서도 불안 불안했다.


“너는 몇 번 찍을 거냐?”

술잔이 돌고, 숟가락을 아직 몇 번 뜨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불쑥 튀어나온 아버지의 한 마디는 마치 삐끗한 젓가락처럼 분위기를 탁 끊었다.

“아휴, 아빠. 비밀선거라서 말하면 안 돼요.”

나는 웃으면서 상황을 무마하고 다른 대화주제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아니 누굴 찍는지 말을 못 해?”

“투표일에 근무라서 투표하러 가지도 못해요.”

최대한 중립적으로 표현하면서 그녀를 보호했다. 하지만,


“근무? 투표일은 휴일이잖아.”

“아빠. 간호사는 3교대 근무라서 휴일이랑 상관없이 일 한다니까요.”

상견례를 2주 앞둔 상황에서도 아직까지 그녀의 업무체계를 전혀 이해하지 않고 계셨다.


아버지의 머릿속에 간호사는,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이미지보다는 지역의원 수준에서 일하는 사람- 에 머물러 떠나질 않는 것 같았다.

며느리한테 좀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텐데. 내심 서운했다.


“아무튼 보수는 안 돼.”

뜬금없고 일방적이었다. 대화의 주도권을 고집하신다. 한동안 대통령 욕을 하시더니 누구누구는 안 된다신다. 우리는 신혼집, 혼수마련, 예물, 이런 이야기를 좀 하려고 마련한 자리인데...

아버지가 계속 정치이야기를 꺼내시니 결국 어머니도 어느 정도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셨고. 결국 식사자리는 정치비판회가 되어 버렸다.


여자친구는 다음날 근무 때문에 식사 후 곧장 먼 길을 떠나야 했다. 나는 여자친구를 배웅해 주고 집에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여자친구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 호칭도 그래. 그냥 ‘너’라고 부르잖아. 직업에 대한 이해도도 없고. 새로운 가정을 차리는 데에 전혀 관심은 없고. 정치이야기만 하고.’

나는 불만이 많이 쌓인 채 아버지와 대면했다.

상당히 화가 난 상태기 때문에, 내 말투가 퉁명했다.


“아빠, 왜 정치 얘기를 꺼내는 거예요?”

“어색한 사이니까 뭐, 날씨얘기, 정치얘기, 그런 거 하는 거지.”

아버지는 떨떠름하게 대답하셨다. 하지만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나는, 입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호칭도. ‘너’라고 부르면 좀 그렇잖아요.”

“그건 내 말버릇이야. 너도 지금 너라고 부르고 있잖아. 내가 뭘 어떻게 불러야 되는데? 너라고 했다고 그게 무례한 거냐? 어색해서 말도 못 하겠다, 그냥... 말하다 보면 그렇게 나오는 거지...”

“그냥 이름을 부르시거나, 며느리라고 불러주셨으면 좋잖아요.”

“내 말버릇을 고치라고? 지금 날 조종하려고 드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렇잖아. 아니, 니들이 꼭 날 평가하는 거 같아.”

아버지의 태도는 완전히 돌아서 버렸다.


“아니 어쨌든 손님이 왔으니까 좀 배려를 해서 이야기하자는 거잖아요.”

“그럼 니들이랑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

“결혼하니까 집은 어디다 구하냐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집? 집은 니들이 여기 들어와 사는 거지.”

터무니없는 얘기다.


“네? 제가 언제 그런다고 했어요? 의정부에 살 거라니까요.”

“그래. 벌써 니들이 다 알아서 결정해 놨네. 그럼 내가 할 얘기는 없잖아.”

나는 아버지와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알겠어요. 그럼 아무튼, 상견례 가서는 정치얘기 하지 말아요.”

“왜? 그쪽 집안이 보수정당 지지하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서로 불편해질 수 있잖아요.”

나는 최대한 완곡한 단어 선택을 했으나,


“아니, 어른들 만나서 그런 얘기하는 거지. 왜 자꾸 내 말에 시비냐?”

“어휴... 아무튼. 정치는 밥상에 오르면 안 돼요!”

내가 진절머리가 나서 외치자 아버지도 지지 않고 외쳤다.

“왜 안 되는데? 내 집에서 내 말도 못 하냐?”


아버지는 씩씩대시더니

“그럴 거면 나 상견례 안 간다!”

식탁을 쾅 치고 일어선 아버지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다.

나도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느껴, 대화를 포기했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우리 아빠가 상견례, 안 간대.”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한숨만이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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