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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상견례 취소해?

by 송대근
“그럼 상견례 취소해? 예약해 놨단 말이야.”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기다려봐. 아버지 진심은 아닌 것 같아.”


“그럼 결정되면 빨리 말해줘. 우리 집도 부모님 일정 다 맞춰두셨단 말이야.”

그녀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서로에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문제는 각자의 집안일.

결혼 전에 우리는 약속했었다. 각자 집안 문제는 각자 해결하자고.


나는 곧장 어머니를 찾아갔다.

“엄마, 아빠 상견례 안 가신대요.”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관자놀이를 매만지시더니,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상견례는 해야지. 사돈댁도 다 준비하셨을 텐데...”

“아빠가 안 가신다니까요. 취소할 거면 빨리 말해야 해요.”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조심스레 아버지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이야기 좀 해볼게.”

문은 조용히 열렸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닫혔다.

나는 식탁에 조하게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사실 이런 장면은 익숙했다.

어머니는 우리 집의 중재자였다.

충돌을 싫어하시고, 말없이 끼어들어 사람들 사이를 정리하셨다.

어머니는 세 자매 중 둘째였다. 항상 손해 보는 역할, 양보하는 자리.

단 한 번도, 부모님께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언니와 충돌하면 동생인 네가 양보해라.

동생과 충돌하면 언니인 네가 양보해라.

양가적인 상황에 저항도 못하고 자라셨다.


첫째는 첫째라 대접받고, 막내는 막내라 귀하다.

반복된 환경은 어머니를 체념하게 만들었고,

결국 어머니의 특성으로 뿌리내렸다.


그게 어머니의 삶이었다.

태어난 순서, 맡은 역할, 반복된 말들.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성격을, 운명을, 평생을 만들어간다.

우리에겐 개개인의 선천적인 특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네 가족사회는 각자의 개성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족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재능이나 책임에 따라 부여하지 않고, 성별이나 나이, 항렬과 같은 이 강한 기준을 적용해 왔다.


그렇게 아스러져간 들. 기회들.

우리는 언제까지 불편한 기준을 허용해야 할까?


렇다면, 나는?

나는 지금, 정말 나 자신의 의지로 삶을 결정하고 있는 걸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머니는 조용히 방에서 나오셨다.


“아빠가 많이 충격받으셨어.”

“충격이요?”

“그래. 너희가 결혼식도 안 하겠다, 제사도 안 지낸다, 애도 안 낳는다, 용돈도 없다, 노후도 각자라고 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제오늘 얘기 아니에요. 3년 전부터 차근차근 말씀드렸어요.”

나는 내 선택이 부모님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꺼내왔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준비가 된 건 나뿐이었다.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네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여자친구를 잘못 만나 이상해졌다고 생각하셔.”

나는 순간 울컥했지만, 차분히 말했다.

“아니에요. 그건 다 제 생각이에요. 여자친구와 생각이 같을 뿐이에요.”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좀 있다 아빠 나오시면... 일단 사과하고, 다시 이야기해 보렴.”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내 설명이 부족했던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이해란, 때때로 설명보다 더 어두운 곳에 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3년 넘게 준비했던 이야기.

이제 다시 꺼낼 시간이다.


마침내, 무겁게 닫혀있던 방문이 열린다.

이 순간, 우리는 정말 가족이 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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