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하게 줬다 뺏는 게 어딨냐?”
아버지는 볼멘소리로 말씀하셨다.
“네? 제가 뭘요?”
“용돈 말이야. 한 달에 10만 원 주던 거. 그걸 뺏어가면 어떡하냐?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가지고...”
나는 결혼 전, 부모님께 매 달 10만 원씩 용돈을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앞으로는 지속적으로 드리기는 어렵다, 생신이나 기념일에 한 번씩 드리도록 하겠다, 말씀드린 적이 있다.
“아빠 그건 뺏는 게 아니잖아요. 조금 줄이는 거잖아요.”
솔직히 따지자면 지금까지 드린 걸 토해내라고 해야 뺏는 거 아닌가?
그런 마음은 들었지만 나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명절이나 생신 같을 때는 챙길게요. 저도 새 가정 준비를 해야 해서 빠듯해요.”
“돈도 잘 버는 놈이...”
아버지와 나는 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랐다.
옛날이야기다.
외할머니 부양을 가족끼리 결정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외삼촌과 외숙모가 모시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부양하셨다.
시간이 흘러 외삼촌의 자식은 유학을 가야 했고 외숙모가 발 벗고 나서서 외할머니 부양을 좀 나누자고 요청했다. 아버지는 짧게 거절하셨다.
거절 이유는 두 가지였다.
집안 어른도 아닌 여자가, 어딜 나서 가르치듯 부양을 요청하냐.
자식 유학 보내는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집이냐.
솔직히 나는 외숙모가 이해가 된다. 자식을 유학 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을 것이다.
그래도 외삼촌은 본인 어머니인 외할머니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결국 며느리는 남인 부분도 있다. 그러니 미적지근한 남편의 태도에, 자식을 유학 보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섰겠지.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셨나 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나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외할머니, 그러니까 아버지 입장에서 장모님은 아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자신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제사를 만들었고, 아내는 그 준비와 결정에 말없이 따르고 있다.
사실 종교적 이유로 처음에는 절하는 것은 거부하셨지만, 결국 지금은 그 절도 하신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아버지는 아내를 위해 양보 할 수 없었던 걸까?
각자의 돈을 어디에 쓰느냐는 각자의 자유고, 나도 절대 동의하는 부분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의 것, 나의 자유” 같은 것에 민감했다.
아버지에게 돈이란 건 ‘책임의 증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계산을 따지는 게 아니라, 묵묵히 감당하는 것.
여유 있는 가족이 따짐 없이 나서는 게 도리라고 믿으셨겠지.
그런 철학 아래, 용돈 이야기를 꺼낸 나에게도 섭섭함을 느끼셨겠지.
하지만 나는 달랐다.
돌봄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돌봄을 하는 내 삶도 존중받아야 했다.
누군가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는, 반대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겠지.
아버지의 침묵을 깨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빠, 아까 말 심하게 한 건 죄송해요.”
“그래, 알겠다.”
“그럼... 상견례는 정말 안 가실 거예요?”
어머니가 얼른 끼어들었다.
“상견례는 무조건 가야지. 약속이잖아.”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시다가 말했다.
“그래, 가긴 갈게.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다. 괜히 무슨 말했다가 또 트집 잡힐까 봐 싫다.”
불편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갈등은 피하고 싶었다.
“알겠어요. 아빠 결정이니까 존중할게요. 저도 아빠를 조종하려는 게 아니에요.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서로 그걸 인정하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네가 나랑 생각이 같다고 생각했다. 여자애가 너 생각을 바꿔놨다고도 생각했고... 근데 이제 보니 그게 다 네 생각이구나.”
“네. 전부 제 생각이에요.”
그 순간, 우리가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30년을 함께 살면서, 왜 아직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
그 말이 끝이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묵묵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며칠 후, 상견례 당일.
집안은 분주했다. 어머니는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나는 재킷을 입으며 넥타이를 맸다.
여자친구 가족도 준비를 마치고 장소로 향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도 셔츠와 정장바지, 손목시계도 갖추어 상견례에 가실 준비를 마치셨다.
평범한 상견례 복장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아버지가 등에 회색 가방을 등에 메셨다.
회사원들이 출퇴근길에 메는 딱 그 모양의 가방이었다.
어머니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보, 그게 뭐야?”
아버지는 아무 대답 없이 가방끈을 고쳐 멨다.
그 가방 속엔 대체 뭐가 들었을까.
아버지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혹은, 말 대신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현관문을 열었다.
이 상견례, 평범하진 않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