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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런 집안이 있다니?

by 송대근
“뭐 저런 집안이 있다니?”


상견례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여자친구가 전해준 이야기다.

“뭐 저런 집안이 있다니?” 장모님은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여자친구에게 토로하셨다.


여자친구는 이전까지 장모님과 장인어른께 우리 아버지의 행동과 태도를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괜히 먼저 말해서 편견이 생길 수도 있고, 또 괜히 내가 밉상스럽게 보여 나와 결혼을 반대하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단다.


“평생 교단에 섰는데, 오늘은 수업보다 힘들었어.”

“원래, 좀. 말이 없으신 분들이신가 보지.”

장인어른은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접근하셨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지만, 이제 두 분께 더 이상 숨길 수는 없었다.


“원래 저랬어.”

여자친구도 많이 참고 참았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께 자신이 겪은 모든 사실을 토로했다.


“... 그래. 너도 힘들었겠다.”

“상관없어. 난 남편이랑 살 거지, 시아버지랑 살 게 아니니까.”

“그래도 송서방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나를 편견을 가지고 보시지는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근데 그 가방은 뭐라니?”

장모님은 여자친구에게 아버지가 상견례 내내 신경 쓰시던 가방을 물어보셨다.

“보통 그런 가방은 상견례에는 잘 안 메고 오잖아.”

“아, 그거? 내가 남자친구한테 한 번 물어볼게.”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상견례가 중간쯤 이어질 무렵,

그날 메뉴에는 하필 홍어가 있었다.

원래 메뉴에는 장어가 나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주문이 잘못되었는지 홍어가 나온 것이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젓가락을 멈췄고, 어머니도 조심스럽게 코를 찌푸리셨다.

“아... 이거, 홍어죠?”

“저희는 홍어를 못 먹어서...”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로 넘어갈 법한 순간,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안 드시면, 저 주세요.”


누구도 웃지 못했다. 왜냐하면, 진심이셨으니까.

아버지가 상견례 중 하신 말씀이라고는 딱 두 마디였다.


여기 밥 좀 먼저 주세요. 밥이 없으니 허전하네.

안 드시면, 저 주세요.(홍어)


어떻게든 어려운 식사를 끝나고, 장인어른이 마지막으로 악수를 내미셨다.

“반가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하지만 아버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출구 계단에 발을 걸쳤다.

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장인어른의 손을 대신 잡아드렸다.

그날의 마지막 예의였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급히 나가셨냐고?

그게 바로 그 가방 때문이다.

아버지는 상견례 이후 댄스스포츠 약속이 있었고,

가방 안엔 땀 흘릴 준비가 완료된 스판덱스 복장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오늘의 주제는 ‘결혼’이 아니라 ‘댄스’였던 것이다!



“차라리 잘됐어.” 아내, 이제는 그렇게 불러야 할 사람은 담담히 말했다.

“시작부터 사이가 틀어졌으니까. 나중에 제사든 뭐든, 신경 안 써도 되잖아.”

나는 씁쓸히 웃었다.

그녀가 일부러 시댁과 틀어지려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도할수록 더 멀어지는 이 거리감 앞에서

이제는 체념이 유일한 전략이 된 것이었다.

“당신은 사이에 껴서 불편하겠지만, 당신이 싸워줘서 나는 편해졌어.”

“... 그래. 나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어.”

그날 밤, 나는 울었다.


어색함도, 미안함도, 아버지의 침묵까지.

그 모든 것이 목구멍에 쌓여

도저히 삼킬 수 없는 가시가 되었다.


상견례는 일단락됐지만, 우리의 결혼은 아직 세상에 말하지 않은 게 많았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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