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해.”
“맞아. 내가 잘못하면 눈치 보지 말고 그렇게 말해 줘.”
우리는 베트남의 한 테라스에서 그렇게 사랑을 약속했다. 아니, 정확히는 결혼의 조건을 정했다.
"대신 함부로 말하긴 없기야. 말하는 순간 정말 이혼할 거니까."
그날 저녁은 무척 평화로웠다. 공기는 습하고 따뜻했고, 바다는 시원하고 맑았다.
그런 환경에서 ‘이혼’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한마디가 백년해로보다 더 간절한 다짐이었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오래도록 의심해 왔다.
사랑은 자유였지만, 결혼은 의무가 되었다.
애인은 기대였지만, 부부는 권리처럼 행사되었다.
잡은 고기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이 말을 사랑의 냉소로 쓰지만, 나는 결혼의 실상을 설명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이미 결혼했으니 이제 신경 안 써도 된다’는 태도.
애정도, 배려도, 변화에 대한 노력도.
제도 속에 갇힌 감정은, 아주 쉽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우린 그렇게는 되지 말자."
그게 우리만의 혼인 서약이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은 우리를 '남편', '아내', '며느리', '사위'라 부른다.
이 명칭들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가족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역할이고 책임이며, 때로는 복종이었다.
나는 세상 모든 문제의 뿌리를 힘의 불균형에서 찾는다.
결혼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육체적인 불균형은 폭력이 되고,
경제적인 불균형은 지배가 되고,
정서적인 불균형은 학대가 된다.
그렇게 불균형한 결혼은 사랑을 소모시키고, 결국 상처로 끝난다.
결혼이 실패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불균형한 줄다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날, 우리는 테라스에서 선언했다.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긴장을 늦추지 말자.
사랑을 지속하고 싶다면, 서로를 경계하고, 동시에 존중하자.
그 말은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쌓은 가장 단단한 약속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이혼을 준비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로를 평생 아끼겠다는 말을 하며
마치 그것이 보장이라도 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결혼식.
우리는 그런 장면에 진심을 담을 수 없었다.
결혼식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사랑의 증명’이었고,
우리에겐 그 증명이 오히려 진심을 흐리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맹세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고,
오히려 그 무대에서 맹세를 연기하는 것이 더 거부감이 들었다.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한 건
불행한 결혼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결혼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려는 선택이었다.
결혼은 소박했다.
참석자도 없고, 반지도 없고, 예물도 없었다.
13박 14일의 베트남 신혼여행. 항공권과 숙박을 다 포함해 180만 원.
믿기 어렵겠지만, 그건 정말 완벽한 신혼여행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시작했다.
누구의 축복도,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매년 신혼여행을 다시 갈 수 있다면,
굳이 그날만을 인생의 가장 특별한 하루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삶 전체가 특별하면 되니까.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결혼’이라는 시스템의 거대한 톱니바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부터,
우리가 아닌 ‘그들’의 결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