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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결혼식을 왜 안 한다는 거냐?

by 송대근
“도대체 결혼식을 왜 안 한다는 거냐?”


아버지의 가장 큰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결혼식, 하고 싶지가 않아요. 여자친구도 같은 생각이에요. 웨딩드레스 입고 사람들 앞에 광대같이 서는 게 부담스럽대요. 저도 공장같이 찍어내는 결혼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차분하게 답했다.


"그쪽 집안도 동의한단 말이냐?"

"딸 의견을 존중한대요."

"그래도 그렇지, 무슨 하자 있는 결혼도 아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속으론 결혼식을 기대하고 계셨다는 사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결혼식은 부모님의 행사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 기대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게 됐다.


"하고 싶지 않은 결혼식으로 축복받는 시작을 한다고 해도,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돈도 아깝고요."

솔직하게 말했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은 짧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을 아끼셨지만, 눈가에 아쉬움이 서려 있는 게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왜 결혼식이 그토록 중요했는지, 직접 말씀해주시진 않았지만.

그래서 나름의 추정을 해보게 됐다.




의 유년 시절. 아버지는 장남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뵌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셨다고만 들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류에 적힌 할머니의 이름이 내가 아는 그분이 아니었다.

나중에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다.

내가 아는 할머니는 둘째 부인이었고, 아버지는 첫째 부인의 호적에 등록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누군가의 명복을 비는 일도, 위패 앞에서 절하는 일도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스스로 제사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가족의 흔적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듯했다.

나는 그게 아버지 나름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간절히 원하셨던 아버지.

첩의 자식이라는 말에 지워졌던 이름들, 차별과 시선으로 움츠러들어야 했던 과거.

그 모든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던 건 아닐까.


그런데 세월이 흘러, 아들은 이제 제사도, 결혼식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 반대하는 결혼도 아닌데- 식조차 올리지 않겠다고?

그럼 친척들에겐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 주변인들이, 똑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군가는 ‘요즘 애들’이라며 수군댈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게 견딜 수 없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내가 참고 결혼식을 올렸으면 되는 거 아닌가?

사진 한 장 찍고, 형식적이라도 예식을 올렸다면 아버지가 조금은 편해지셨을까?

하지만 나는... 이미 자아가 너무 커져 있었다.

가족이라도, 내 신념과 충돌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물론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다.

나도 편하지 않았다. 가슴 한 편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다.

아버지도 그랬겠지.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불편함을 끌어안은 채, 이 결혼식을 하지 않게 됐다.

그건 나의 선택이었다.


키워준 은혜를 이렇게 갚는 것이냐는 비난도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 부모님이 지원해 주신 모든 비용을 갚았다. 삼천만 원.

아버지는 “그걸론 택도 없다.”라고 하셨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도 부모님께 효도하며 지내고, 편안한 노후를 선물해드리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 역시 나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비정하지만, 제한된 환경 속에서 결국 나의 생존을 택했다.


나는 불효자인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유전자인가.


아버지는 이 마음을... 언젠가 알아주실까.




결혼식만 없을 뿐, 결혼은 한다.

즉, 새로운 관계를 앞두고 상호 간의 인사는 필요했다.



나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상견례 자리에 앉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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