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좀 살갑고 그래야지. 쯧.”
아버지는 한마디로 그녀를 평가하셨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하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살가움'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라는 것.
대신, 성실했고 우직했다.
여자친구는 3교대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밤낮이 바뀌는 스케줄 탓에, 평범한 직장인들과 시간을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렵다. 부모님은 평일에 일하시고 주말에 쉬시니, 그나마 맞춰보자면 주말뿐이었다.
어렵게 시간을 맞췄다.
하지만 문제는 거리.
나는 인천, 그녀는 서울 노원.
차도 없으니 늘 대중교통. 왕복 5시간!
그 먼 길을, 그녀는 어떤 기분으로 오곤 했을까?
그래도 여자친구는 불만 하나 없이, 매번 과일 같은 선물을 손에 들고 왔다.
부모님 생신 때는 케이크를 빼놓는 법이 없었고, 그 케이크는 늘 특별했다.
내가 봐도 ‘이건 어디서 산 거지?’ 싶을 정도로 정성스러운 것이었다. 나 같은 둔한 눈에도 모두 독특하고 특별해 보였다. 흔한 케이크는 아니었다.
한 번은 이랬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살려, 아버지께 수액을 놔 드리러 온 적이 있다.
5시간 거리를 무거운 수액을 챙겨 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것도 의료행위니까, 만에 하나 잘못되면 책임은 그녀가 져야 할 일이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왜 저렇게까지 하지?’
나는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로 불안했다.
아버지는 과연 이 마음을 알아주실까?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걱정이었고!
그 많은 과일도, 매번 다른 정성스러운 케이크도, 심지어 수액까지도-
아버지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분이 원한 건 단 하나, ‘감정노동’.
눈을 마주치며 웃는 것. 살갑게 말 한마디 거는 것.
그것이었다.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다. 상대가 그걸 못한다고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바라는 게 없다면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생겼다면, 그건 교환이어야지, 억지로 강요해선 안 된다.
여자친구는 그걸 몰랐다.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붓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성의를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시아버지는 전혀 부족하다고 느낀다니!
어쩌면 내가 먼저 얘기해줬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버지는 선물이나 수액 같은 건 안 봐. 애교? 그건 너한텐 무리니까 그냥 체념하자.'
하지만,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당연히 며느리는 애교가 많아야 제일.
당연히 며느리가 명절마다 제사를 지내야지.
당연히 부부가 시부모와 한 집에서 살아야지.
당연히 아들내외가 노후를 책임져야지.
모두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자신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아버지의 ‘개방적’이라는 허울은, 내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벗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