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술, 맥주가 역사 속에서 보인 활약에 대하여
인류 최초의 술은 과실주다. 그러나 인류가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맥주다. 포도주의 6배 이상을 마신다.
술은 음식과 달리 먹지 않아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과거 맥주는 식사 대용이었다. 보리빵을 물에 담가 발효시킨 것이 바로 중세 이전의 맥주다. 근대까지도 유럽에서는 낮은 도수의 맥주를 끼니로 먹었다. 아이용 맥주가 따로 있을 정도다. 맥주는 쾌락 이전에 허기를 해결해주는 존재였다.
이렇듯 맥주와 포도주는 비슷하지만 여러가지로 다른 술이다. 당분이 많아 저절로 발효되는 포도주는 신화적 기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는 예수의 피로 상징되면서 신성시되었다. 그리하여 포도주는 신과 왕, 그리고 귀족을 위한 술이었다. 신화적 기적이 없는 맥주는 전분을 포도당으로 만드는 인간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맥주를 세속의 술로 여겼고, 이후에도 민중의 술로 남았다.
맥주보다 포도주를 더 좋아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로부터 전해진 맥주를 로마인과 켈트족, 게르만족에게 전파했다. 춥고 서늘한 날씨 때문에 포도 농사가 어려웠던 북방 유럽에서는 맥주의 주원료인 보리가 비교적 수확하기가 더 수월했다. 특히 게르만족들이 살던 독일 지역은 물에 석회가 섞여 나오는 등 식수의 질이 좋지 않아서 일상생활에서 맥주를 거의 물처럼 마셨다. 맥주를 너무 좋아했던 게르만족들은 전쟁터에도 맥주를 가져갔다. 이 술은 전장에서 어마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게르만족 전사들은 전장에서 맨 앞에 전사 한 명이 서고, 그 뒤에 두 명과 세 명 순으로 늘어서는 삼각형 대형을 즐겨 짰다. 삼각형 대형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맨 앞에 선 전사가 적진 앞에서 달아나거나 움츠려들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야 했는데 이 때 선두에 선 병사에게 맥주를 잔뜩 먹여 취하게 했다.
밀에 견주어 하품인 보리로 만들어진,
라인강과 다뉴브강 건너편 야만인이 즐겨 마시던 음료인
맥주는 중세 유럽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포도주가 엄숙한 의식이라면 맥주는 그야말로 땅에 발을 붙인 일상이었다. 맥주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되는 금식일이나 사순절에도 마실 수 있는 물과 같은 존재였다. 중세부터 수도사들은 맥주를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그 맥주는 전해오고 있다. (독일의 바이엔슈테판, 파울라너나 벨기에의 레페 같은 것들은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다가 지금은 기업의 상품이 되었다.)
맥주는 유럽이 아닌 중동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이집트는 발효의 나라였다. 나일강의 검은 흙에서 밀과 보리가 넘쳐났고 화학 강국이기도 했다. 또한 화폐가 쓰이지 않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임금 대신 맥주를 지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부터 맥주는 이집트의 국민 음료였다.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나일강 인근의 고대 도시 히에라콘폴리스에 있다. 기원전 3500년 경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마 멸망 이후 8-9세기까지 게르만족의 약탈 속에서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던 중세 유럽의 등불은 베네딕토 수도원이었다. 여기서 수도사들은 사라진 로마시대이 농업 기술을 부활시켜 중세 경제를 회생시키기 시작했다.
따라서 경제적 구심점이 된 수도원에 잉여농산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중세 수도원은 이들이 변질되거나 손실되기 전에 가공해서 팔아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맥주다.
그러나 중세의 도로 환경은 보름 남짓이 맥주의 유통기한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수도원은 다시 맥주의 보존기간을 늘려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들은 호프를 찾아냈다. 9세기의 수도사들은 홉을 넣으면 맥주의 맛과 향이 좋아지고 보존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넉넉한 먹거리로 배고픔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인구가 급등한 유럽에 14세기에 페스트(흑사병)라는 재앙이 찾아왔다. 바로 수백년 동안 맥주의 판로가 되었던 그 길이 아이러니하게도 역병의 경로가 된 것이다.
수도원의 맥주를 즐겨 마시던 유럽인들은 페스트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는 300년 가까이 계속되었고 유럽인구의 1/3이 사망했다.
이러한 인구의 급감은 임금 상승을 가져왔고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하고 길드와 같은 상공인 조합이 출연했다. 돈많은 상인들은 영주에게 돈을 주고 법적 자유를 샀고 일부 사유재산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를 목도한 농노들은 도시로 나갔고 도시에서 일정기간 살면서 시민이 되었다.(당시 이슬람과 동양에서는 왕이 명령으로 노예로 팔려가거나 일족이 멸해지는 것을 당연한 하늘의 섭리로 받아들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중의 소득이 늘면서 맥주의 수도도 늘었다. 14세기에는 도수가 높은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출시되었다. 맥주는 더이상 식사가 아닌 쾌락을 주는 상품으로 변신해야 했다. 따라서 시장은 이러한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맥주를 변화시켰다. 민간 양조장 주인들은 맥아를 볶거나 태웠고 밀과 귀리 등을 섞어 맥주의 맛과 색에 변화를 주었다. 14세기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는 '복(독일어로 염소란 뜻) 비어'다. 보리: 밀을 7:3으로 혼합한 이 맥주는 인기가 매우 좋아 여러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교회에서 강조하는 선행의 개념이 교황청의 부패한 지배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하고, 교회와 신의 관계가 아닌 신도 개개인과 신의 관계를 강조한 최초의 근대적 신앙관으로 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던 '루터'는 포도주의 고장이 아닌 맥주의 고장 독일 사람이다. 루터는 법대생 시절부터 불면증으로 '복 비어'를 애용했다. 이 맥주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는 누구든 성경을 읽고 행하면 사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고 교회가 성경을 독점하며 천국의 문지기 노릇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어로 된 성경을 쓰기 시작했다. 독일어 성경의 편찬 작업은 인쇄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에 중세 유럽인들은 자국어 성경과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종교의 자유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자본주의를 낳은 근본정신이며 가톨릭을 믿는 남유럽이 아닌 개신교를 믿는 북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종교개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양의 중세를 우리는 흔히 암흑의 시대라고 말한다. 실제 서유럽에서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는 19세기 런던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대 로마 외에는 없었다.(동양은 베이징이나 바그다드, 신라의 경주까지도 인구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중세의 발목을 잡는 교회의 교리 뒤에는 광기와 굶주림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야만의 중세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싹트고 산업혁명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근대국가가 탄생한 배경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중세를 구원한 혁신인 '맥주의 탄생'이 있었다.
한편, 16세기에 접어들어 1516년에 바바리아공국의 빌헬름 4세는 '맥주순수령'을 발표한다. 이 법안은 맥주에 보리, 호프, 물 이외에는 어떤 재료도 넣지 말라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이 법안을 엄격하게 지키는 곳이 많다. 이후 1777년에는 독일을 강타한 커피 열풍으로 프리드리히 2세가 '커피와 맥주에 대한 선언'을 발표하며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국부의 유출을 막기 위해 커피의 소비를 제한할 목적으로 '전장에서 맥주로 몸을 만든 병사들 덕분에 승리했다'며 맥주를 장려했다.
전통적인 맥주는 핏빛 에일이지만 현대인이 주로 마시는 맥주의 70%는 라거다. 라거는 '저장하다'라는 뜻의 독일어 동사 '라거렌'에서 온 것으로 저온발효 방식의 맥주다. 발효 온도를 낮추어 장기 숙성한 혁신적인 맥주 제조법은 15세기 독일에서 개발되었다. 이후 1876년 독일의 화학자 카를 폰 린데가 냉장기술과 냉장고를 개발한 덕에 여름에도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의 파스퇴르의 저온 살균기법으로 맥주 본연의 맛과 품질을 지키면서 장기보관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인이 맛 본 첫 맥주는 1886년에 들어온 일본 삿포로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한국인들의 입맛을 매혹시킨 맥주는 삿포로를 비롯한 아사히, 기린 등이었다.
한국 맥주의 본격적인 역사는
지금의 '하이트 맥주'로 발전한 '조선맥주'가 시작이다.
1933년에 일본의 대일본맥주가 영등포에 설립했다. 1942년 박두병은 일본의 기린 맥주 주식회사가 조선에 세운 '쇼와기린맥주 주식회사'를 인수했다. 이후 1948년에 회사명을 '동양맥주'로 바꾸었고 이것은 지금의 'OB맥주'다.
출처 : 음식의 경제사, 맛있게 읽는 세계사,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이범준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