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벼운 존재 Dec 13. 2023

소망, 사랑, 희망

       어머니들의 종이접기 이야기

                          

금요일 오전  11시.

성당으로 시니어 아카데미 종이접기 반 어머니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마음이 따스워진다.

첫 수업에 어머님들의 존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이었다.

보통 성인반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젊은 분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다니기 때문에 서로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고민 끝에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한 어머님께서 손을 드시고는

"선생님, 우리의 호칭을 '어머니'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다른 어머니도

"맞아요. 우리한테 선생님이라고 부르니까, 좀 부담스러워요."

"저 보다 지혜도 많고, 세상을 더 경험하셨으니 선생님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 그러면 선생님이 너무 많아서 안 돼요."

단호하셨다.

요즘은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좀 거북해하신다.

"예~ 어머니라고 부를게요."

"좋아요." 모두들 합창으로 대답을 하셨다. 

어머니들께 너무 감사했다.


호칭을 정하고  마음이 편해지니, 일찍 돌아가신 나의 엄마가 생각났다.

살아계셨으면 이 나이가 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종이 접기만 하는 수업인데 나의 강점을 살려

'꾀 많은 토끼' 그림책을 읽어 드리고, 책 내용에 맞게 종이접기를 하고

그림책 나오는 내용으로 낭독극을 했더니 새로운 수업이라면 좋아하셨다.

수업이 끝나자 어머니들께서

"선생님, 식사하시고 가세요." 

"어머니, 오늘은 수업이 또 있어서 안 되고 다음에는 꼭 먹고 갈게요."

"아이고 밥도 못 먹고 가서 안 됐네."

"밥은 먹고 다녀야지"

"다음엔 꼭 먹고 가요." 신신당부를 하셨다

성당 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다정해서.


다음 수업은 '외로운 산타 할아버지'로 정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해 갔다.

'외로운 산타할아버지'는 '우치다 린타로 글, 사와다 토시키 그림' 그림책으로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돌아온 산타 할아버지의 방은 텅 비어 있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도 점점 더 쓸쓸해지기만 하고, 결국 산타는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그림책이다.

책 제목을 종이로 가리고

"어머니, 하모니카를 부는 산타 할아버지 얼굴 좀 보세요.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신가요?" 질문을 하였더니

"글쎄, 잘 안 보여요. 좀 더 가까이 와 보세요."

"자, 여기요"

"울고 계시네."

"왜 울까요?"

"글쎄요"

"왜, 우시는지 책을 한번 볼까요?"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그림책을 보니 더 재미있어하신다.

"아이고, 외로워서 울고 계시네. 쯧쯧"

"어머니, 성당에서 이렇게 외로우신 분은 누굴까요?"

"혹시! 신부님인가요?" 한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시자

"맞아! 맞죠 선생님?" 다른 어머니도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만약 신부님이라면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까요?"

그러자, 다른 어머니께서

"성당을 빠지지 말고 나오면 기뻐하실까?"

"맞아! 빠지지 말고 꼭 나오면 될 거야."

정말 지혜로운 어머니들이시다.

다음 장면에 커다란 거인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시고는

"어머나! 혹시 예수님."

"맞네. 산타할아버지가 슬퍼하니까 기쁘게 해 주시려고 오셨네."

"맞아!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주고, 아이고 예수님 맞아요!!"

다음날 거인은 떠나고, 정갈하게 개어 놓은 이불 위에 불룩한 양말이 보였다.

"어머니~~ 퀴즈!! 이 양말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어머니들께 다가가서 그림책을 보여주니

"사랑"이라고 하셨다.

아! 하늘에서 '박하 눈'이 내려와 코등에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했다.

또 다른 어머니들도 " 희망", "소망", "사랑"

우리 어머님들이 마음이 맑고, 편안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저절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는 거인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고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처음 생각으로는 하루는 트리를 만들고, 다음시간에 트리 꾸미기로 하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

"어머니, 트리 만들기 하면 너무 어려울까요?" 여쭈어보니

"선생님, 쉬운 거 했으면 좋겠어요."

"혹시, 전에 꼬마산타 접으셨어요?"

"아니요, "

"그럼 꼬마산타 접을까요?"

"좋아요"

"그런데 어머니,

산타는 빨강 산타도 있고, 노란 산타도 있고, 파란 산타도 있어요.

제가 트리 먼저 만들려고 빨강 색종이를 다 준비하지 못했어요." 말씀드리자

"선생님 저는 분홍 주세요", "저는 노랑 주세요."

한 어머니께서는 저의 귀에 대고 

 "선생님, 저는 빨강 산타 접고 싶어요"

박하사탕이 나의 머리통을 치고 달아났다.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어머니들의 종이접기는 6살 어린이들과 같다.

"선생님, 줄이 삐뚤어 졌어요."

"선생님. 눈은 어떻게 그려요."

어머니들은 어릴 적 놀아 보지 못한 '종이접기 놀이'를 

아주 천천히 꼼꼼하게 접으며 즐기신다.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들이다.

이제 '시니어 아카데미 교실'의 모든 반이 겨울 방학에 들어갔다.

우리 어머님들께서 겨울을 잘 보내시고 내년 봄에

사랑과 소망과 희망을 담은 종이접기 반에서 또  만났으면 좋겠다.





                15센티 빨간색 색종이 두장으로 꼬마산타 접기

             

작가의 이전글 다시 한번 1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