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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벼운 존재 Feb 05. 2024

엄마


아침에 눈을 뜨자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가슴 어디선가에서

밀려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베개잎을 젖시고 소매로 닦아도 눈물과 콧물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돌아가실 때 엄마 모습이 떠 올랐다.

엄마는 갑자기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3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고.

여름 내내  동네병원을 다녔는데

효과가 없자  대학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니 위암 말기였다.

그날 엄마만 빼고 

식구들이 숨 죽여 울었다.

39년 전이라서 그랬는지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시기가 너무 늦어 수술을 하는 것보다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엄마 친구분 중에 간호사가 계셔서

링거만 집에서 맞으셨다.

4 남매 중 큰 오빠만 결혼을 했다.

돌아가시기 전날 회사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빨리 오라고

나는 조퇴를 하고 집에 가니, 지방에 있었던 작은 오빠도 올라왔다.

우리는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엄마는 숨을 쉬기가 곤란해하셨다.

방밖에서 장례 준비를 하고 나와 여동생 작은오빠는 엄마 곁에 앉아 있었다.

9시쯤 되었을 때 엄마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우리를 보고 계시다가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이불로 뚝뚝 떨어졌다.

우리도 숨을 죽이고 울었다.

한 30분쯤 지나서 엄마가 목이 아플까 봐 고개를 돌리려고 

머리를 잡으니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우리를 보며 울면서 돌아가셨다.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차있었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냥 울었다.

엄마 친구분들이 자식들 결혼도 다 못 시키고 한이 되어서

눈도 못 감고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젊은 나이 50세.

2월 눈이 내리는 날 '꽃상여'를 타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와 여동생은 엄마 없이 결혼을 했고

작은오빠는 아직 미혼이다.

일어나서 달력을 보니 내일모레가 엄마 제삿날이다.

큰오빠와 새언니가 아파서  부모님 제사를 몇 년 전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

제삿날의 날짜는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는가 보다.

낮에 전화를 하니 동생이 울먹이며 전화를 받았다.

"왜 그래"라고 묻자 이모가 갑자기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늘 말씀하셨다고.

엄마가 보고 싶으면 이모 찾아가서 보라고

우리는 직장을 다녀서 동생이 엄마 간호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보냈는가 보다.

"내일모레가 엄마 제사라서 그런가 보네, 언니가 절에서 공양 올릴게 "라는 말에

동생이 눈물을 터트린다.

동생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는 가보다.

우리는 서로 '설'을 보내고 이모네 집으로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2월에 눈 내리는 것이 드문 일인데

오늘 눈이 내린다.

나이가 먹어도  늘 그리운  단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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