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rtynine Sep 15. 2021
장례식
스무 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시골 살던 나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삼베옷을 입고 영화 ‘친구’에서처럼
집에서 마을 장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한 번도 뵌 기억이 없는 친척 어르신이 첫 문상객이었다
마을 장례사 어르신이 살짝 귀띔해 주시는 대로
곡을 하며 친척 어르신께 절을 했다
그리고 (상주는 죄인이라 하셨기에) 무릎 꿇은 채로
어르신의 물음에 일일이 이런저런 답을 해드렸다
어찌 된 일이냐 지병이 있으셨나 아버지는 이런 분이셨다
많은 이야기 사이에 이따금 침묵이 흐르면 어색하셨는지
어르신은 연거푸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다
또 다른 친척 어르신, 아버지의 지인, 누나의 지인, 매형의 지인 많은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하고 명복을 빈다는 진지한 위로를 했다
그러다 손님 뜸했던 늦은 밤에 나는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야 인마 일나라!” 취기 가득한 친구 놈 하나가 내 발을 차며 나를 깨웠다
“절 한 번 할라고” 이어진 말을 끝으로 오전부터 우리 집에 와 다른 친구 녀석들과 상갓집은 시끄러워야 된다며 술 마시던 친구 놈이 절을 했다
절을 끝낸 친구는 싫다는 나를 기어이 손님 받았던 마당 술 자리로 이끌었다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취기가 가득했다
나를 불러 앉혔지만 친구 놈은 다른 친구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 나누며 가끔 내 잔에 술을 채울 뿐 말이 없었다
삼일장 내내 친구 놈은 함께 데려온 친구 녀석들과
술 마시고 손님 받고 나를 불러내고
손님 받고 술 마시고 나를 불러내고
운구를 싣고 상여를 메고 곡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삼일 내내 별말은 하지 않았다
가까울수록 가까운 말은 없었다
그저 옆에 있어 줄 뿐
가까운 사이에는 침묵이 쌓여도
그 사이로 어색한 정적은 흐르지 않았다
빈 위로 대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진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