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 때문에 相이 相이 아님을 못 보는 중생들의 마지막 희망 갠지스 강
인더스, 갠지스 강 문명을 태동시킨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인도이지만, 내가 다시 인도에 와서 둘러본 인도 북부의 명소는 대부분 이슬람 문화의 유적이었다. 델리 후마윤 묘에서부터 꾸뚭 미나르, 따지 마할, 아그라 성 등이 그렇다. 물론 힌두 문화와 불교 유적을 파괴하고 그 위에 지어진 것도 있고 또 그 안에 알게 모르게 힌두,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바라나시와 갠지스 강(힌디어로는 Ganga, 한문으로는 恒河라고 표기)에서는 이슬람 유적보다는 힌두의 진수, 불교 성지의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차에서 내려 요리조리 소똥, 개똥 그리고 거리에 널브러져 앉아 있는 걸인들을 피해 걸어서 강가로 나갔다. 시바 신이 머리를 두고 있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2500km를 달려 벵갈 만으로 흘러가는 갠지스 강은 힌두들에게는 그야말로 구원의 강인 것이다. 즉 살아서는 그 강물에 목욕하면 모든 업을 씻어내어 청정, 순수한 몸으로 재생되며, 죽어서는 그 강가에서 화장된 후 그 재가 강에 뿌려지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니 그 어느 종교 그 어느 메시아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구원의 손길일 것이다.
석양이 뉘엿뉘엿 질 때 나는 통통배에 탔다. 배는 엔진을 끄고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기니 천천히 떠내려 갔다. 서북에서 동남으로 내려오던 강물이 바라나시 연안에서는 남에서 북으로 흐르니 더 신성한 강이라는 설명을 가이드가 했다. 가이드는 왜 갠지스 강에서 화장(火葬) 하는 지를 열심히 설명하고 나서 여기서 화장해서 재를 뿌리면 안 되는 다섯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두(Sadhu: 집 나온 수행자), 임산부, 3살 이하 어린이, 코브라에 물려 죽은 자, 그리고 나병 환자는 여기에서 화장하면 안 된다고 한다.
어딘가에는 꼭 예외를 두어 무언가는 구별을 하려는 인도 힌두교의 차별성이 느껴진다. 모든 사람에게 고른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언터쳐블은 여기서 화장해도 윤회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단언하여 차별한다. 이런 차별성에 반기를 들어 당시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만민 평등사상에 기초하여, 누구나 부처가 되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주창한 석가모니는 요즘으로 말하면 혁명가인 셈이다.
해가 완전히 져서 넓은 강 위에 뜬 달을 유유히 바라보며 저녁 강바람을 즐기고 있노라니, 강변 가트(Ghat; 목욕과 화장을 위한 계단)에서는 저녁 힌두 의식인 뿌자 소리와 거기 모인 대중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고, 그 옆 화장터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며 화장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밤인데도 화장터에서는 소, 개 등이 어슬렁거리며 물끄러미 시체 타는 장면을 쳐다보며 애도하고 있었다. 화장장에서 곡(哭) 소리는 전혀 안 들린다. 곡 소리를 예방하고자 여자는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한다는 게 화장장의 규율이다. 감정에 약한 여자가 울게 되면 망자가 슬퍼서 이승을 못 떠나고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유이다.
밤 8시경 정도가 되자 강에 떠있는 배들이 뿌자 하는 가트 앞에 모두 모이니 파시(波市)가 열린 것처럼 배와 배가 맞대고 떠내려가지 않도록 서로 엮어지니 그 배들 위를 어린 소년 소녀들이 청설모처럼 가벼이 뛰어 넘나들면서 강물 위에 띄울 디아(조그만 촛불 꽃)를 팔러 다닌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해도 가트 화장장의 불길이 자꾸 어른거렸다. 얼마 전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신 형님의 육신이 화장장 전기로에서 한 줌의 따뜻한 재로 변하여 나온 장면을 보고 인도에 온지라, 화장 장면을 보니 인생무상, 쓸쓸함이 밤이슬처럼 내 몸에 서늘하게 배어 온다. 배의 스쿠루가 강의 부유물에 얽혀 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안달이 난 사공과 가이드를 재촉하여 나는 다른 배로 옮겨 타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날 새벽 네 시 반에 기상하여 5시에 숙소를 나섰다. 강가에서 청바지에 깔끔한 흰색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가이드를 만났다. 가이드는 나이가 내 또래인데 이곳이 고향이며 이곳에서 35년째 가이드 생활을 하고 있고, 부인은 사리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시바 신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며 아침 기도 시 손가락으로 쑥쑥 그은 이마의 굵고 하얀 활주로 같은 선들을 보여준다. 배는 천천히 상류로 올라갔다가 엔진을 끄고 하류로 유유히 떠내려 오며 새벽의 갠지스 강을 감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쉽게도 구름 때문에 일출은 숨었지만, 뿌연 안개에 조용하게 갠지스 강의 아침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서안의 바라나시 반대쪽인 동쪽 연안은 가트도 건물도 없는 그냥 모래 밭인 듯 광활하게 보였다. 우주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수의 갠지스 강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모든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알 총수만큼의 보물을 가지고 중생에게 보시한다 해도 금강경의 4가지 핵심 구절(四句偈)을 이해하고 남에게 알려주는 것만큼 값지지 않다고 설파한 석가모니의 ‘항하사수(恒河沙數)의 비유’가 생각난다. 즉 아무리 많은 재물로 남을 도와주는 보시보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법보시(法布施)가 훨씬 낫다는 가르침이 이 갠지스 강의 모래를 비유 삼아 나왔다. 밤에 본 가트의 화장장은 불꽃이 활활 타는 모습이었지만, 아침에 본 그곳은 좀 침잠된 분위기로 작은 불에서 연기가 뿌연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침에 목욕하러 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좀 한적한 곳에서는 강물에 들어가 있는 싸두의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털이 보였다.
배에서 내려 가트 위 언덕의 좁은 뒷골목을 걸어 차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한집 걸러 한 집으로 힌두의 신들이 모셔져 있고 골목 안은 소와 개 그리고 양들의 배설물과 쓰레기 때문에 찌린내와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바라나시가 수 천 년 된 도시인만큼 계획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미로처럼 생겨난 좁은 골목들, 그 좁은 길에 몇 개 되지도 않는 초라한 물건들을 놓고 점포를 자려 놓은 소박한 모습이 인도를 표현하는 가난의 하향 평준화를 민 낯으로 드러내 주고 있었다. 갠지스 문명 때부터 모여 산 이 고대 도시는 늘 화장하는 냄새를 누릿하게 품고 수 천 년의 세월을 그렇게 강 언덕에 쌓아두며 지금까지 존재한다. 그런 찌든 냄새의 골목 안에서도 편안하게 짜이를 마시며 신문을 읽던 인도인이 생각난다. 그에게는 그 더러운 골목도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현장이라서 더럽다는 자각과 상(相)이 없는 보였다. 좁은 골목에 소와 개 그리고 양까지 같이 지내는 광경은 태초부터 이 행성이 인간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리마인드(Remind) 해 주는 것 같았다.
골목길, 큰길 모두 더럽고 냄새난다고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어쩐지 어색하고 경박스럽게 느껴져서 아무 말없이 태연히 걸었다. 소를 닮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걸인들과는 눈을 맞추지 말고 외면하라 했던 인도 여행기들은 기 십 년 전에 쓰인 글이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팁이었다. 차 타러 가는 길을 핑계 삼아 가이드는 그의 처가가 운영하는 카펫, 스카프 등 선물 가게로 데리고 갔다. 몇 백 년은 됨직한 어둠 침침하고 좁은 가게에서 물건을 보여 주길래 단호히 거부했다. 벽에 걸린, 자랑삼아 보여주는 사진에는 할리웃의 배우가 그 가게를 방문해 웃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지나쳤을 그를 가리켜 ‘My friend’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가이드 역시 인도 상인의 한 전형이었다.
골목을 막고 쓰레기를 먹고 있는 소 뒤를 지나치려는 순간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소가 파리를 쫓으려고 꼬리를 휘두르면 영락없이 내 얼굴에 오물이 튈 근접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소 옆을 간신히 통과하고 나서 되돌아 서서 그 소의 눈을 보니 방금 전까지 똥물 튀길 악취 나는 그런 소가 아니라 참으로 선하고 선하게 생긴 아름다운 눈을 가진 신같이 보였다.
그 순간 “눈에 보이는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고, 만약에 모든 형상을 그 상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깨달은 경지이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사구게가 잠시 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통해 오는 외부 자극에 희로애락과 호불호(好不好)의 고통을 받는 평범한 중생이었다.
눈에 보이는 상(相)의 참모습을 볼 줄 모르는 우리는 늘 코뚜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집착이 곧 코뚜레이다. 나와 모든 사람들이 각각의 코뚜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