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직장 생활 중의 꼬뚜레

by 진의환

소처럼 열심히 일한 세월 35


6월이면 남반구 브라질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다. 햇볕은 따사한 가운데, 하늘은 높고 눈이 시도록 파랗다. 파란 바다에 둥둥 떠있는 구름은 온갖 상상을 자아내는 형상으로 수시로 변하면서 에어쇼(Air Show) 연출한다. 사무실 북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 초원 위의 창공과,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노라면 흘러간 청춘이 하늘 구름만큼이나 덧없어 보여 순간 깜짝 놀란다. 북서쪽 창공에서 용맹하게 갈기가 사자 모양의 구름이 바람을 타고 북동쪽으로 흘러가는데, 깜박이고 다시 보니 어느새 구름의 갈기와 날랜 발은 사라지고, 길게 꼬리 풀어 늘어진 혜성의 모습으로 떠밀려 간다. 명멸하는 구름의 모습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부운인생 풍취산운(浮雲人生 風吹雲散),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으로 표현되는 우리네 인생의 단면이 아닐까 생각되면서 30 전으로 머릿속의 시계가 되돌아간다.


1986 봄의 말년 육군 병장 시절, 나는 따사한 아래 모포 깔고 누워 권의 책을 읽고 있었다. 경제 신문에 연재되던 기업 소설을 책으로 역어 출판된 백시종(白始宗)걸어 다니는 이었다. 기업 소설은 S 그룹, H그룹, D그룹 당시 쟁쟁한 3 재벌 기업 중에서 마음을 H 그룹으로 편향하게 만든 결정적인 책이었다. 백시종은 한국 경제 태동기인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경제를 이끈 견인차, S그룹과 H그룹의 다이내믹하고 저돌적인 기업 활약상을 그려 내고 있었다.


특히 S그룹 창업자 L 회장과 H 그룹의 J 회장의 업적과 경영 스타일을 자세하고도 대비되도록 기술하고 있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S 그룹에 입사하고 싶었는데, 책을 읽고 마음을 돌려 H 그룹에 호감이 갔다. S그룹이 밀가루나 설탕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옷이나 전자 경공업 제품이 주력 업종일 , H 건설, 중공업, 자동차 무거운 제품이며 해외에서 돈을 버는 스케일이 크고, 국내보다는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점에서 비교 조명되었기에, 나는 H 그룹의밖에서 벌어서 안을 찌운다라는 애국자적 모습에 마음이 쏠렸다. 젊은 놈으로서 무언가 적극적이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가능성이 있고 진취적이며 도전적인 직장이 없을까 하고 찾아보게 되었다. 그때 H그룹의 상반기 대졸 신입 사원 모집 광고를 보았고, 이미 시종의 소설에서 자극받았기 때문에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지원해서 H그룹에 입사했다. 1986 6 1.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 , 사직 공원 , 서울고등학교 자리의 연수원에서 입사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H 그룹은 주력 기업이 건설과 중공업에서 자동차로 중심이 옮겨 가고 있었다. 일본 M 자동차에서 가져온 도면으로 만든 엔진을 탑재한, 조랑말이라는 뜻을 가진 차의 미국 수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조랑말 차의 미국 수출은 당시 어마어마한 일대 사건이었다. 비록 엔진은 일본 기술로 만들었지만 부품부터 차체까지 순수 우리의 기술로 만든 국산 자동차가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안전 규정을 가진 미국 시장에 수출된다는 것은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없었다. 대다수의 우리 입사 동기들은 H 자동차로 배치되었다.


연수 중의 에피소드이다. 당시 울산에는쥬리원 백화점 있었고, 백화점이 가장 컸으며 가장 번잡한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사 담당자가 군중 속에 숨어서 채점하는 가운데 나는 백화점 정문 도로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모아 연설을 해야 했다. 일종의 후안무치(厚顔無恥) 담력 테스트였다. 최고의 담력은 그룹 창업자 J 회장이 가지고 있었다. J 회장은 울산에 세울 조선소 설계도 하나만 달랑 가지고 런던에서 조선소 건설 자금을 빌렸고, 바로 그리스로 날아가서 선주에게 당시 우리나라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 주면서 한국은 전통적인 조선(造船) 강국이라고 (?) 쳐서 배를 수주했다. 지금 되돌아보니, 당시 메이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의 조랑말 차를 팔려면 최소한 정도의 배짱과 담력은 필요했고, 그래서 신입 사원 교육 프로그램에 그런 과정이 들어갔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백화점 화단에 뛰어 올라가 광신도 마냥 고래고래 소리치며 관중을 모아 일장 연설을 했다. “여러분! H 자동차 신입 사원 진의환입니다. 제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5분만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울산 시민 여러분! 살려 주세요! 여러분! 저기 숨어 있는 사람이 나를 채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저는 태화 강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으면 사진의 여자가 시집을 갑니다.” 몇몇 사람이 하하하 하고 웃자 무슨 일인가 하고 호기심에 끌린 군중들이 모였다. 일단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한 것이었다. 나는 본론에 들어갔다.


여러분! 우리 울산 공장에서 만든 조랑말 차가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한 뉴스 봐서 아시죠? 이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나라도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독일, 프랑스와 어깨를 같이하는 자동차 선진국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자동차 회사가 어느 회사인지 아십니까? 미국의 GM 사입니다. 회사가 세계 각지의 공장에서 년에 생산하는 자동차가 자그마치 600 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굴러 다니는 자동차가 200 밖에 안됩니다. 우리 회사는 이제 년에 35 대를 만듭니다. 우리의 H자동차가 세계 제일의 자동차 회사가 되도록 제가 밑거름이 돼서 울산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유세장의 국회의원 후보같이 당시로서는 말도 되는 황당한 소리로 뻥을 쳤다. 당시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H 자동차의 서열은 25 밖이었다. 자체적으로 엔진을 만들 기술도 없었다. 일본 M 자동차에 로열티를 주고 사온 엔진 도면을 가지고 와서 배우면서 일본인 기술 고문을 신처럼 받들었다. 일본 기술 고문의 한마디는 바로 법이요 교리(敎理)였다. 당연히 일본어를 못하면 승진은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그러다가 미국 수출 개시로써 모든 바람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일어에서 영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입사하면서 바람을 탔다. 신입 사원 업무는 미국의 법제를 알고 미국에서의 모든 법률문제에 대응하는 일이었다. 대학 때까지 번도 영어 듣기(Hearing) 능력 향상을 위해 AFKN 방송 테이프를 듣고, 출퇴근 시에는 카세트를 호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을 귀에 달고 다녔다. 1987년에는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고 위스콘신 법대에 가서 공부도 했다.


그로부터 30. 이제 HK 자동차 그룹은 연간 800 대를 생산, 판매하며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참고 2015 순위: 세계 1 도요타 그룹, 2 복스바겐 그룹, 3 GM 그룹, 4 르노-닛산, 5 HK자동차 그룹). H자동차의 옛날 스승 일본 M 자동차는 까마득하게 뒤에 서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는 H 개발하여 새로 만든 성능 좋은 엔진을 일본 M 자동차에 팔고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요 역전 드라마이다. 세계 2 포드 자동차로부터 기술을 받아 차를 만들어 국내에 있었으나 이젠 포드 자동차도, 혼다 자동차도 H자동차 뒤에 서있다. 푸른 하늘 구름 사자였던 GM 이제 하이에나 모습으로 변해가고, 표범 같던 M 자동차 구름은 이미 혜성처럼 꼬리를 드리우고 하늘을 지나간다.


얼마 직원들과 관계사들 법인장들을 모아 환갑 기념 회식을 했다. 35년을 돌아보니 나는 H자동차 내에서 가장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재직 35 20년을 직원으로, 15년을 임원으로 일했다. 독특한 점은 35 24년을 해외에서, 11년을 한국에서 근무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의 24 5개의 자동차 공장 부지를 물색하고 주정부와 담판하여 인센티브를 얻어내서 위에 공장을 건설하고(Green Field Project), 조직을 갖추고 안정화시키는 헌납했다. 물론 현장에서 쓰러지는 고비도 있었다.


신입 사원 연수 시절 울산 주리원 백화점 앞에서 고래고래 지른 목소리는 황당한 꿈만은 아니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35 대에서 800만대로 성장하는 급격한 기울기의 상향 그래프에서 나도 속의 점이었고, 그때의 땀도 그래프에 스며들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꼬뚜레가 단단히 코를 관통하고 있던 세월인지라 그저 소처럼 일했다. 이제 35년을 바친 회사를 나와 글을 쓴다. 흘러간 청춘은 구름처럼 덧없지만, 그래도 땀이 배인 자동차 공장은 오늘도 힘차게 돌아간다. 세월 젊은 날의 탱탱하던 얼굴에는 어느새 눈주름이 자글자글 해졌고, 귀밑 털은 다시 검정 염색약의 도포(塗布) 기다리고 있다.



고향이라는 꼬뚜레


1984 2 13 아침 8시경. 아직도 엄연한 겨울의 한기에 몸을 으스스 떨며 공주 차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고등 동창 O에게 전화했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었는데, O 전화받자마자 차부 근처의 음식점으로 총알같이 튀어나왔다. 고마웠다. 소주 병에 따끈한 해장국 사발씩 먹었다. 아침 해장 바로 우리는 연무대행 버스에 올랐다. 연무대 수용 연대 앞은 시장 바닥 같았다. 울고, 껴안고, 노래 부르고…. 바글바글한 와중에 볼펜, 바늘과 , 노랑 고무줄 파는 아줌마들은 군중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그것들을 사서 입대하면 듯이 말했다. O 나는 조용히 이별의 포옹을 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수용 연대에 정문 안으로 없이 걸어 들어갔다. 순간부터 호칭은충남장정(壯丁)’이었다. 새로 지급된 헐렁한 군복 입고 3 동안 나는충남장정 속에 묻혀 있다가 논산 훈련소 XX연대에 편제되었다. 수용 연대에서 훈련소 내무반까지 같이 명의 충남 장정이 있었다. 훈련소 우리 내무반은 경상도 전라도 서울 각도의 훈련병으로 혼합 구성되었다. 우리는 이상장정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훈련 기간 어느 일요일 오후 내무반에서 각자 쉬고 있을 기간병이 들이닥쳐 소리친다. “! 작업할 있으니 내무반에서 10명씩 연병장 집합해라.” 그러자 경상도 출신 훈련병(군대 용어로 문둥이)들은아이고 마려하고 관물대에서 화장지 꺼내서 화장실로 가고, 전라도 출신(군대 용어로 따블 )들은 빨랫감 들고 세면장 가고, 서울 뺀질이들은 PX 도망간다. 결국 연병장에 나가 보면 수용 연대에서 만난충남장정들만 나와 있는 보았다. 그래서 군대에서멍청도 말이 생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멍청해서가 아니라 어디 가든 부지런하게 솔선수범하기 때문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절대 약싹 빠르지 않다. 어떤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고, 어지간해서는 내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얼굴 표정과 동작 그리고 말에서도 (), 불호(不好) 철저히 은폐시킨다. 충청도 말은 느리고 어눌한 같지만 대신 짤막하게 요점만 정확히 표현한다. 장마와 삼복더위에 지쳐 있을 때이다. 충청도 영양탕 집에서 어제는 복날이라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도 그것이 있는지 알고 싶은 경우의 대화는 이렇다.

~?”

~

다른 예를 들면, 밤에 잠자다가 부인이 부스럭거리자 남편이 눈치채고 물어본다.

~?”

~~”(N0)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신속한 대화인가? 충청도 사람들만이 있다. 김정열, 김학래, 남희석, 서경석, 최병서, 이영자, 최양락, 황기순이들의 공통점은? 알다시피 충남 출신 개그맨이다. 그럼 개그맨 중에는 충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을까? 말이 느린 듯하나 함축적이며 우회적이고 때로는 기습적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추석 아침. 서울 사람이 서산에 있는 장인 집에 일찍 가서 인사하고 골프 나가려고 급하게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좁은 시골길이라 추월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앞에 가는 충남 번호 차가 너무 느리게 가는 것이었다. 조급증이 서울 사람이 클랙슨도 울리고 헤드라이트를 올렸다 내렸다 해도 좀처럼 길을 비켜주지 않다가 마침내 충청도 사람이 차를 길가에 세우더니 차문을 열고 서울 차를 세웠다. 서울 사람이 긴장했다.

그러자 충청도 사람이 점잖게 한마디를 천천히 한다.

아니~? 그렇게 급하시면 어제저녁에 내려오지 그랬유~~?”

삿대질과 욕이 나올 알고 긴장했던 서울 사람에게 얼마나 통쾌한 기습적 반전이며 훈계적 유머인가!


충청도 사람들은 속내를 먼저 내보이지 않기 때문에 협상의 달인이다. 충청도 어느 농가 부부가 마루에서 아침밥을 먹고 잇는 이웃집 아저씨가 온다. 밥시간에 손님이 불쑥 와도 대접하는 우리의 인심.

이웃집 아저씨, 아침밥도 얻어먹고 막걸리까지 얻어 마시고서도 좀처럼 생각을 하고 계속 이런저런 얘기 하며 앉아 있는다. 참다 지친 주인아줌마가 먼저 물어본다.

그런데 용식 아버지, 아침 댓바람부터 우리 집엔 오셨대유?”

그제야 이웃집 아저씨, 용건이 생각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한다.

아이고 정신이야! 있유?”


내가 충청도 사람의 이런 협상 전법을 인도에서 써먹었다. 회사 보호 차원에서 부득이 인도 조폭 두목과 (대외적으로는 집권 정당의 청년분과위원회 위원장) 용역 계약 금액을 협상해야 일이 있었다. 그쪽에서는 용역비로 500 루피를 불렀고 나는 200 루피를 고집해서 합의가 되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마침내 최후 담판을 하러 두목 집에 새벽 4 반에 약속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사람은 잠자다가 일어나 응접실에 나왔다. 시간 동안 김빼기 작전에 들어갔다.

아이고 소파 있네유! 얼마 주고 샀유? 어디서 샀데유? 아이고! 그림 멋있네유. 화가 이름이 뭐래유? 어디 가면 있대유? 가구는 100년도 같으네유! 무슨 나무로 만든 거래유??” 등등.

나의 끊임없는 허드레 질문에 드디어 두목,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어이, 미스터 , 새벽부터 이런 얘기 하려고 아니잖아? 좋아! 내가 100 양보해서 400만으로 합시다.” 나는 천천히 답했다.

“250만으로 해유~.”

성질 급한 두목에이! 졸려 죽겠는데그래 300만으로 하지.”

이렇게 해서 시간 빼기 덕분에 협상은 2 만에 끝났다. 이게 충청도인의 끈기 있는 빼기 협상 전법이다.


충청도 사람은 같은 말이라도 긍정과 부정이 포함되는 것처럼 말한다. 듣는 사람이 주의 깊게 듣고 판단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보직은 서울 본사의 관재과장이었다. 관재과장은 부동산을 사고팔고, 부동산 개발 건축에 관한 각종 인허가를 획득하는 임무였다. 그때 충남 처에 공장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공장 건설 현장에서 긴급 SOS 요청해 왔다. 회사 인허가 팀이 파견 나가 있었는데 그들이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이라서 충청도 공무원의 말을 알아들어서 인허가 진도가 나가니 충청도 사람인 내가 내려와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상황이었다.


충청도 사람인 담당 공무원 계장에게 우리 인허가 경상도 직원이 가서 이야기했다. ‘”계장님, 오늘 날이라서 배나무 골에 보신탕 준비해 놨으니 저녁에 거기로 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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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무리 기다려도 계장은 나타나는 것이었다. 다음날 인허가 직원은 촌지 봉투를 준비해 가서 계장 옆에 붙어 봉투를 슬쩍 내밀며 마디 한다.

계장님, 어제저녁 보신탕 드시러 오신다 하더니 오시고이거 얼마 되지만 휴가 가실 여비 하세요

~~~”

말에 직원은 헷갈린다. 어제도됐유하고 왔으니됐유 분명 부정이라고 생각하고 내밀던 봉투를 슬그머니 빼서 다시 호주머니 속에 넣고 나와 버렸다. 이러니 인허가 업무가 제대로 추진될 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집에서도 발생했다. 신혼 우리 집에 아버지가 올라오셨다. 저녁상 물리자 경상도 새댁인 와이프가 물었다. “아버님에~ 디저트로 과일 드릴까에?”

~~”

말에 아버지는 먹고 싶었던 과일도 드시고그렇다고 체면상 달라고 말씀도 못하시고

. 불찰이었다. 와이프에게 충청도 뜻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불효자의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충청도 사람이라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선입관은 나에게 꼬뚜레가 되지 않는다. 다만, 말은 느린 하지만 급한 성격은 내가 스스로 꼬뚜레를 차는 것처럼 나를 긴장시키고 여유와는 거리가 부지런한 삶을 살게 만들었다.


같은 교인이라는 코뚜레


살기 좋다는 미국에는 지진과 허리케인 그리고 토네이도라는 자연재해가 인명을 위협한다. 유럽과 중동에는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고, 인도나 동남아는 태풍(싸이클론) 홍수가, 일본에는 지진, 중국에는 살인적 스모그가 있다. 이렇게 사람 사는 모든 곳이 엄청난 자연재해와 인재에 공포를 느끼지만 브라질에는 자연재해와 전쟁이 없다. 과연 브라질 사람들 말대로 교황은 나라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신은 브라질 출신인 맞다는 생각이 정도로 브라질에는 자연재해도,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도 없다.


1996 H 사는 넓은 땅에서 () 명만 사는 브라질이 아닌 인도, 엄청나게 많은 신이 살고 있으며, 무덥고 가난한 그러나 우리 조상의 고향 같은 나라에 자동차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로서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우선 인도에 날아가서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고 전국의 땅을 물색한 천신만고 끝에 남부의 첸나이 외곽에 부지를 확정하였다. 땅을 보러 가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국의 토지개발공사 같은 정부 기관의 차를 타고 갔다. 서류를 검토해 보니 땅은 4 고속도로 옆에 붙은 땅이었다. 소가 도로 한가운데 태평하게 누워서 되새김질하고 있고 사이사이 동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길을 시간 정도 비틀비틀 달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할 시간이 지난 같아 정부 사람에게 4 고속도로는 언제 나오냐 물어보니, 대답이 우리는 이미 고속도로 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무슨 고속도로가 중앙선도 없고 소와 양이 위에 누워있다니……


그런 고속도로 30Km 장장 시간 동안 달리고 달려 겨우 공장 부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넓이를 발로 쟀다. 보폭 76cm 기준으로 해서 가로, 세로 부지의 크기를 재서 경계를 말뚝으로 표시하고 65 평을 빨리 사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등기부 조사 결과 주인은 자그마치 2,000명이 넘었다. 여기서부터 주정부와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진행상 6개월 땅을 모두 수용해서 우리에게 넘기라고 했고, 산업성 장관은 주인이 2,000명을 넘으니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빠르면 3 내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사에서는 무조건 6개월 후에 공장 건설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한 입장을 나에게 전달해 왔다. 여기에서까라면 까는군대 정신, 아니 H그룹 특유의 강인한 불도저 추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산업성 장관을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선물을 내밀어 보았다. 그가 청백리라서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같이 술을 먹자고 했다. 술을 못하는 크리스천이라며 거부했다. 시간은 가고 해결 방법은 없었다. 어느 토요일 저녁, 답답한 마음에 아는 변호사 집에 불쑥 찾아갔다. 그는 파괴의 신이자 수많은 힌두교 서열 4위인 ‘Eshwar’ 인도 이름으로 지어 사람이었다. 고민을 들은 그는 산업성 장관은 인도에서는 보기 드문 청백리에 독실한 크리스천이니 사람이 다니는성당에 같이 나가서 친해지는 수밖에 없다라는 엄청나게 값진 어드바이스(Advice) 주었다.


그다음 날부터 상관인 법인장을 모시고 일요일마다 성당으로 나갔다. 난생처음인 성당이었지만 오래된 신자인 척했다. 어설프게 성호를 긋고 무릎 꿇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아멘 따라 했다. 미사가 끝난 후에 친교의 시간에 장관을 만났다. 그로부터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성당에서의 친분을 가지고 장관실에 약속도 없이 수시로 들어갈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정부 산하 기관에서 늦장 부리는 것을 그에게 낱낱이 고자질해가면서 속도를 내도록 푸시(Push)했다. 결과 3 후에나 착공 가능하다는 땅을 애초 계획대로 6개월 만에 반을 사들여 일단 건설 공사를 착공했고, 1 안에 나머지 땅도 사들일 있었다. 산업성 장관도 놀랬다. 그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아멘을 외쳤다.


외에도 공장 건설에 따른 여러 가지 인허가를 위해 법인장과 나는 그가 장관으로 재직한 3 동안 성당을 다녔다.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나라이지만, 우리는 일요일 새벽 5시에 만나 6km 구보를 하고 아침 식사 성당에 나갔다. 미사 무릎 꿇고 모아 얼굴을 괴고 감고 하는 기도 시간에 우린 아주 같은 단잠을 즐겼다. 새벽 운동 고단했기에.

기도 헌금 바구니가 돌았다. 대나무로 만든 조그만 소쿠리 같은 헌금 바구니에 지폐를 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동전만 딸랑딸랑 들어온다. 내가 준비해 100루피짜리 지폐를 넣으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았다. 최초의 지폐이며 우리 메이드 달치 월급이니까. 잠에서 선잠 법인장님은 지갑을 열어 500루피를 집어넣는다. 운전수 달치 월급이다. 헌금 바구니를 들고 있던 사람이 이상 필요 없이 바로 신부님께 가지고 가서 헌납한다. 내가 법인장께 말씀드렸다. 우리가 너무 많은 금액을 내서 위화감 조성하는 같으니 다음부터는 조금씩만 내자고. 그랬더니 법인장께서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다. “인도 사람들은 헌금을 내면 되지만 우린 숙박비를 내야 하잖아!”


청춘과 열정이 소란히 묻힌 인도! 거기에서 코뚜레 황소처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청백리 산업성 장관 덕분에 인도 공장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할 있었다. 그는 청백리라서 자유로웠지만, 같은 교인이라는 코뚜레에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인도인의 코뚜레를 파괴하는 시바


2016 말부터 인도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다시 해보라는 명령을 받고 인도와 한국을 번갈아 왔다 갔다 했다. 홍콩에서 인도 비행기를 타자마자 21 전에 델리 공항에 내렸을 맡은 쾨쾨한 냄새의 추억이 바로 살아난다. 나는 냄새를인도 냄새 한다. 커리에서 나오는 냄새, 맛살라에서 나오는 냄새, 힌두 사원에서 나는 향내, 인도 사람들의 땀과 체취,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인도 냄새 이룬다. 인도에서 살아 사람이나 장기 여행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런 말들이 인도를 설명해 준다. ”인도는 극도로 사랑하거나 또는 증오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인도는 울고 나올 운다.” (여자들이 남편 따라 인도 때는 가기 싫어 울고, 나올 때는 한국 가서 청소하고 빨래해야 하니 돌아가기 싫어 운다는 ). “인도는 머리는 21세기이나 꼬리는 18세기이다.”


인도에서 6년을 살아 경험이 있다지만, 다시 먹는 인도 음식은 여전히 자극적이고 소화 장애를 일으킨다. 다시 인도에 위장약은 필수였다. 14 동안의 미국과 브라질 생활을 탓인지, 손가락을 수저나 포크 대신 용하던 습관을 다시 살려 내기도 쉽지 않았다. 흔히 카레라 부르는 커리(Curry), 인도 된장인 (Dhal), 인도 빈대떡인 (Naan) 차파티(Chapati), 전병 안에 양념 감자를 넣은 맛살라 도사(Masala Dosa), 향신료를 많이 넣어 매콤한 볶음밥인 비르야니(Biryani), 버터와 향신료를 발라 구운 닭고기 탄도리 (Tandori) 치킨 등이 내가 주로 손가락으로 먹는 인도 음식이다.


20 인도 공무원들과 업무상 식사하는 때가 많았다. 우리나라 () 단위 공무원들을 접대하러 시골 음식점에 갔다. 자국이 질질 흐르는 하얀 웨이터 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널빤지로 식탁 위에 커다란 바나나 잎과 스테인리스 2개를 앞에 놓는다. 그러면 나는 같이 인도 사람들 따라서 왼손으로 컵의 물을 바나나 잎에 부으면서 오른손으로는 바나나 잎을 씻어 낸다. 그다음 쌀밥을 바나나 잎에 덜어 놓고 커리를 붓고 오른 손가락으로 혼합한 다음, 손가락 5개를 삽처럼 접어 초밥 만들듯이 밥을 뭉쳐서 입에 집어넣으며 먹는다.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업무이다 보니 수가 없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 어느 학회에서 저녁 식사 미국 교수가 인도에서 교수에게 한마디 했다. “인도에서는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비위생적이지 않소?’ 인도 교수가 대답했다. “전혀 아니오. 포크로 음식을 먹는 서양식이 위생적이요. 손가락은 오직 속으로만 들어가지만, 당신이 쓰는 포크는 사람 사람 속을 들락날락하는 것이지 않소?”


인더스 문명으로부터 시작한 반만년 이상의 찬란한 역사가 있는 인도에는, 어떤 관행이든지 합리적 이유와 배경이 있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단지 숟가락 포크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더운 나라이니 음식이 상했는지 또는 돌이 있는지 손으로 먼저 검사해 보는 것이고, 이상이 없다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손가락으로 느끼면 감상하고 식욕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미국 교수처럼 본질을 보고 현상만으로 인도의 관습과 문화를 섣불리 평가해서는 큰코다친다. , 가난과 무질서 그리고 쓰레기 휘날리는 거리라는 외관만 보고 속내를 얕게 판단해서는 절대 된다. 전생(前生), 윤회(輪廻) 그리고 범아일여(梵我一如; ‘우주의 근본 원리인 (Brahman) () 같으니 안에 우주가 있다’) 심오한 철학과 논리적인 사상을 공유하는 불교, 자이나교 그리고 힌두교의 나라가 인도이다. 같이 브라만 교에서 출발하였지만 카스트 제도에 근거한 일부 선택된 자들만이 명상을 통해 열반과 해탈을 이룰 있다는 점에 반발하여 생긴 평등주의의 종교가 불교이다. 불교에 밀렸던 브라만교는 대중적 숭배 요소인 토착신, 남성 원리(시바 ) 여성 원리 등을 규합한 탄트라(Tantra)라는 우주 생성 원리를 도입하며 7세기경 힌두교로 변신하고 인도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힌두교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 인구 16% 차지하는 13 인도인의 80% 힌두교를 믿는다면 안에서도 깊은 사유(思惟) 경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힌두교에는 3만여 명의 신이 있다고 한다. 인도 이름도 그중의 하나인 이슈와르(Eshwar)이다. 힌두의 최고의 신은 원래 하나이나, 업무 분장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려진다. , 우주를 창조한 신은 브라만이라 불리고, 그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할 때는 비슈누(Vishnu), 창조를 위한 파괴를 때는 시바(Shiva) 나타난다. 현재 대부분의 힌두교인들은 비슈누와 시바를 숭배한다. 비슈누는 고대의 태양신과 같이 온화와 자비를 베푸는 신이고, 시바는 춤과 음악을 좋아하고 파괴의 속성이 있으나 자신을 믿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는 카리스마 적인 성격이 있어 숭배를 받는다.


힌두교의 우주 창조는 시바 신에게서 나온다. 시바 신의 몸에서 여성성의 본질(Shakti) 남성성이 나와 삼라만상 우주를 만든다고 믿는다. 시바 신은 힌두교 사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안치되어 있다. 힌두교 5 성지인 인도 남부 타밀나두 칸치푸람에 있는 사원을 자주 방문했다. 사원은 인도 H 자동차 공장에서 가까워서 20 ,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관광 안내 방문했기에 기억이 생생하다. 시바신의 모습을 한국인들은 맷돌 위에 세워 놓은 남근석(男根石) 정도로 이해하고 별로 시큰둥해한다. 대신 사원 거대 석탑에 조각된 남녀의 나나하고 에로틱한 남녀의 접신(接身) 모습에 남자들은 그저 신기해 침을 흘리고, 여자들은 민망해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라 곤란해한다. 힌두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맷돌 같은 바탕은 여신의 상징(자궁)이며 Passive 세계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창조의 텃밭으로 요니(Yoni) 하고, 위에 맷돌의 손잡이처럼 우뚝 박힌 것은 링가(Linga 또는 Lingam) 하여 시바 신의 에너지, 하늘, , , , 공기 우주를 구성하는 Active 요소들을 상징한다. 링가와 요니의 결합으로 우주는 생성되는 것이니 그것을 바로 시바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의인화하기 이전에 인간이 생각할 있는 사실적이고 꾸밈이 없는 원초적인 신의 모습인 것이다. 링가와 요니는 우주를 설명하는 동양의 음양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고대 인도인들은 남성과 여성 자체로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믿었으며, 남녀가 결합된 상태에서만 완전한 신적 상태에 다가갈 수가 있고 또는 해탈까지도 얻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힌두 사원의 남녀 교합 조각 상들을 자세히 보면 안정미와 균형미가 보인다. 시바 신의 아내는 파르바티, 두르가 또는 칼리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와 그의 아내는 10 동안에 10 8000개의 체위를 실행하며 부부관계를 맺었고, 그것이 발전된 것이 인도의 성전(性典) 카마 수트라(Kama Sutra) 것이다. 카마는 애욕이라는 뜻이고 수트라는 경전이다.


힌두교에서 귀족은 일생에서 나이에 따라 다음 3가지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가르친다. 인생 초년기에는아르타(實利)’ 하여 생존하는 처세 방법을 경전을 통해 배워야 하고, 중년에는 종족 보존을 위해 카마(愛慾) 배워야 하며, 인생 후반기에는 다르마(倫理) 배워 인간답게 사는 인생의 목적이라고 한다. 현대에서도 맞는 너무나도 합리적인 삶의 지혜가 아닌가? 대학 신입생 시절 선배가 이름을 쪽지를 주면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해 오라고 시켰다. 무슨 책인 줄도 모르고 도서관에 가서 대출 신청했는데 사서가 웃으면서 책은 이미 대출되었으니 없고, 법대생이 그런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였다. 알고 보니 책이 카마 수트라였다. 흔히 세계의 3 성전(性典)하면 인도의 카마수트라, 중국의 소녀경(素女經) 그리고 논자마다 다르지만, 이스라엘의 탈무드(Talmud) 꼽는다.


소녀경은 흔히 이해하는 것처럼부부 생활 안내서 아니다. 도교적 입장에서 의학적 건강 내지 운동 지침서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다만 건강을 위한 운동의 파트너가 여자라는 점이다. 소녀경이황제내경(黃帝內經)’이라는 고전 한의학을 집대성한 책의 일부라는 점에서 봐도 그렇다. ‘남자는 불이고 여자는 물이니, 남자는 빨리 타서 단번에 꺼져 버리나, 여자는 물이니 천천히 데워지고 오래 끓는다. 그래서 남자가 인내를 가지고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야 음양이 조화롭게 되고 서로 기를 주고받는 환기(還氣) 상태에 이를 있다. () () 이길 없으니, 항상 여자를 존중하고 여자가 최고라는 맘을 가지고 행해야 되고, 그리 함으로써 음양의 조화가 되면 남자는 건강해지고 수명이 연장되며, 여자는 피부가 좋아지고 윤기가 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소녀경의 요점이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는데, 카마수트라도 언뜻 보기에는 성생활 안내서 같지만, 기원전 4세기경 브라만 학자가 책이라는 점에서 인도 철학의 오묘한 이치가 담긴 어려운 책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인도인에게 파괴의 시바는 자신의 코뚜레를 풀어 주는 전능하신 신이고 그들은 안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다. 참으로 편리한 생각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끼운 코뚜레를 푸는 방법도 생각해 위대한 사유의 동물이다.


물에는 꼬뚜레가 없다


브라질에서 10 가까이 살며 자연을 관찰하다 보니 사주 명리학(四柱命理學) 기본인 오행(五行: . . . , ) 상생(相生) 관계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브라질의 우기에 내린 비는 대지를 풍요롭게 하고 만물을 흐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빗물은 사탕수수를 키워 울창한 숲을 이루게 하니 수생목(水生木)이요, 사탕수수에서 나온 에탄올을 자동차에 넣어 엔진의 불을 일으키니 목생화(木生火) , 우기의 많은 번개 불은 땅에 스며들어 질소를 생성하며 대지를 비옥하게 하니 화생토(火生土) , 철광석 브라질의 많은 자원은 땅에서 나니 토생금(土生金) 이요, 지하에 광석 암반이 있어야 물이 고이고 샘물로 솟아나게 하니 금생수(金生水) 된다.


상생(相生)이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의 순리와 조화를 말한다. 같은 순리를 인간이 따라야 도덕규범으로 보고 자연의 물처럼 살아가라고 주창한 이가 노자(老子)이며, 그의 대표적 가르침이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상선약수란최고의 () 물과 같다(The highest virtue is like water)’ 뜻이다. 물은 항상 자기를 낮추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덕이 있고, 만물과 화합하며 남을 깨끗하게 하되 억지로 자신의 모습을 고집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며, 서로 앞서 가기를 다투지 아니하고 (流水不爭先),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껴가지만 방울 방울로 바위를 뚫고, 때론 홍수가 되어 거대한 산도 허물어 버리는 힘이 있으니 물처럼 선하게 살라는 것이다. 물에는 꼬뚜레가 없다.


상선약수를 처세 신조로 삼은 유명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그가 2014 오바마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상선약수(上善若水)’ 휘호를 손수 붓글씨로 써서 주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물은 은근과 끈기가 있어 강하듯이 그와 상통하는 것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가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 보기에는 미련한 같지만 가지 일을 은근하고 강인한 끈기로 추진하다 보면 하늘이 도와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비유이다. 愚公(우공)이라는 아흔이 다된 영감이 있었고, 그의 앞에는 거대한 산이 길을 막고 있어 대처에 드나들려면 멀리 산을 돌아다녀야 했다. 영감은 그것이 불편하여 가족을 동원하여 산을 헤쳐 옮기기로 했다. 자신이 죽으면 아들과 손자기 일을 이어 년에 걸쳐서라도 산을 옮기겠다는 영감의 강인한 끈기에 옥황상제가 감동하여 산을 옮겨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우공이산’! “그럼 나는 인생에서 우공이산의 실제 사례를 만들어 적이 있는가라고 자문(自問)하게 된다.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사례가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

견강부회(牽强附會) 격으로 굳이 하나 내세운다면….


거의 20 일이다. 미국에 공장을 세우려고 남부의 실업률이 높아 일자리 창출이 절실한 정부와 협상할 때였다. 주정부는 공장 부지로 200 평을 99년간 1년에 1달러만 받고 땅을 리스로 제공할 터이니 거기에 공장을 건설하라는 제의를 했다. 다들 좋은 조건이라며 찬성하고 받아들일 찰나였다. 그때 내가 한마디 했다. “ 한국 농부의 자식이다. 농부는 땅에 대해 강한 집착이 있다. 우리 공장을 짓는 땅만큼은 우리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를 해야 안심이 된다. 그러니 리스가 아니라 완전한 소유권을 달라.” 이에 주정부 변호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 헌법상 사기업에 땅을 무상으로 소유권 이전해 없다.” 나는 단호하게 맞받아 쳤다. “그러면 헌법을 고쳐라.”


마디로 협상을 결렬되었고 자존심 상한 주정부 대표들은 서류를 집어던지고 퇴장해 버렸다. 협상 결렬의 원인 제공자로 찍혀 얼마 동안 온갖 비난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며칠 투자청장이 은밀히 찾아와 조건을 이야기했다. “땅의 소유권을 넘겨주기 위해서는 헌법의 개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민투표에서 가결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르니 일단 투자 계약서를 체결하고 공장 건설을 시작해라. 국민투표에서 가결되면 소유권을 넘겨주겠다.”


일단 투자를 유치하고 보자는 셈이 보였으나 제의를 받아들였다. 동안 정부 사람들을 찾아가 끈질기게 재촉하고 졸라 국민투표를 하게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놀랍게도 헌법 개정안은 가결되어 200 땅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번에 받아 냈다. 촌놈의 우직한 승리였다고 자부한다. 기업을 위해서는 전봇대 하나도 옮겨 주기 힘든 한국의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없는 일이다. 이게 나의우공이산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쩐지 쑥스럽다. 산이 아니라 평지인 땅의 소유권을 옮긴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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