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청년의 방에서
같이 코끼리를 완성시켜 봅시다.
청년이 활기차게 말하였다. 그는 무전기 스위치부터 껐다. 다이아몬드 칩이 박힌 무전기는 지나치게 음질이 좋아 무전 치는 사람의 음성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이 들렸다. 그래서 되도록 혼잣말도 삼가는데 어떻게 여태껏 무전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부주의에 놀라 잠시 얼빠진 얼굴을 했다.
오귀헌, 이라고 합니다.
청년이 불쑥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는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야. 그는 자신에게로 뻗어온 그 손이 마수가 아니기를 바라며 살며시 잡았다. 그러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청년도 굳이 물으려 들지 않았다. 그는 탁자 주변의 거친 목조의자를 당겨 청년과 마주보도록 놓고 앉았다. 양손을 깍지 낀 다음 작게 입을 벌려 말하였다.
먼저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마텔의 4퍼센트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관찰하고 이 머릿속에 떠올린 것들밖에 말씀드릴 수 없죠.
괜찮습니다. 풍문으로 들은 내용이나 댁의 느낌 같은 것들도 소중합니다.
청년이 반색을 하며 받았다.
마텔이 마트와 호텔의 합성어인 건 아시죠?
그는 가볍게 서두를 꺼내었다. 청년은 처음 듣는 기색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아,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가 약간 떠보듯 이어 말했다.
소문에 따르면 마텔을 이루는 건축 자재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답니다. 벽이며 지붕, 천장, 우리가 방금 타고 오른 기둥까지도. 차갑지 않았어요? 이곳의 구조물들 전부가 다이아몬드 속성을 띠어 열전도율이 엄청나게 높거든요. 어떤 땐 냉방장치가 꺼지거나 고장 나도 더운 줄 모르고 지나가요.
글쎄요. 당신 말대로 다이아몬드라는 특수한 소재의 성질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습관 때문이 아닐까요? 습관이야말로 그 어떤 폭염도 이기고 돌아가는 무서운 힘이니까요.
청년은 어쩐지 쓸쓸한 표정으로 무겁게 뱉었다. 그러고는 금방 생기를 띠고서 물었다.
그런데 바닥도요? 여기 와서 처음 본 게 바닥이에요. 색이 어둡고 광택이 흐르는 게 꼭 대리석같이 보이던데.
카보나도예요. 외계에서 온 다이아몬드죠. 듣기로는 카보나도가 떨어진 운석 구덩이에 이 마텔을 지었다고 해요.
운석 구덩이였다면, 고온으로 땅이 달궈졌을 테니 다이아몬드 생성에 아주 좋은 조건이 마련됐겠군요.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가 대부분이겠죠.
그가 조금 빈정거리는 투로 대꾸했다.
어쨌거나 마텔 주인장은 선조로부터 어마어마한 땅을 물려받은 모양이죠?
땅을 물려받은 건지 본인이 샀는지는 알 수 없죠. 하기야 그 사람이 실재하는지조차 모르겠는데요.
본 적 없어요? 사진이나 뭐 다른 매체로라도?
아니요. 이름조차 거론되는 걸 들은 적이 없어요. 다만…….
다만, 뭐요?
여자라고 해요. 전해지기론 아주 큰 슬픔을 겪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 여자는 심장까지도 다이아몬드로 돼 있답니다. 세간의 조롱에도 끄떡하지 않는 단단함과 비웃음을 단박에 베어버리는 날카로움을 지닌 심장을요.
그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청년이 문득 심상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럼 먼지도 끼지 않나요? 기계의 과열은 대개 먼지로 인한 것인데요. 냉장고의 심장을 망가뜨리는 것도 그 사소한 먼지랍니다.
말을 마친 청년의 얼굴에는 아까처럼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그는 미소를 도로 거두어들였다. 청년이 곧바로 물었다.
그런데 건물 전체가 다이아몬드로 돼 있다면 여기저기서 도둑이 들끓었을 것 같은데요.
도둑이요? 어떻게 훔친단 말입니까? 훔쳤다 해도, 도대체 어디로 가져간단 말입니까?
그는 조금 어이가 없어져 반문했다.
마치 저 밖엔 아무 것도 없는 양 말씀하시네요.
청년이 다소 의아해하며 말했다.
알아요, 있어요. 아니, 있었지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모든 걸 공유하는 마텔에 도둑이 생길 리 있나요. 설사 있더라도 그 버릇은 싹 기어들어갔을 겁니다. 마텔은 모든 걸 다 내어주거든요.
청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응수했다.
출구만은 예왼가 보죠?
말하고야 아차 싶었다. 출구든 입구든 문으로 향한 기억이 없다. 청년은 곰곰이 되짚어봤다. 어떻게 왔는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이미 먼 꿈속의 일처럼 시간의 두께를 잃고 아련한 펄럭임이 된 여정이었다. 생각나는 것이라곤 지나온 길뿐이었다. 길은 갈수록 좁아졌다. 바람이 들이쳐 먼지알갱이가 눈알을 찔렀고 발밑에서는 쉼 없이 모래가 서걱거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기침이 났다. 애써 가래를 삼키면 피 맛이 났고, 속이 메슥거렸다. 팔을 뒤로 돌려 배낭 측면의 망에서 물병을 꺼냈지만 물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청년은 물병을 제자리에 꽂아 넣으며 자문했다. 몹시도 따끔거리는 이 길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앞엔 황사뿐이었다. 청년은 실눈을 뜨고 걸었다. 길은 누군가 일으킨 먼지로 이미 자욱했고, 거기에 자신의 발걸음이 다시 먼지를 더하고 있었다. 이보다 황사가 옅었을 적엔 그래도 눈을 감고 자글거리는 모래알들을 느끼며 해변을 꿈꾸는 운동장을 걷고 있단 몽상에 잠길 수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버석대는 먼지가 오래 눈 감고 있지도 못하게 했다. 이물감이 심해지며 물기가 차올랐다. 청년은 거리감을 잃었다. 차에든 사람에든 부딪치는 게 낫겠단 생각을 하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걸었다. 그런데 소리가 들렸다. 긴파람 소리였다. 건물 외벽에 부딪친 바람이 내는 긴 휘파람 소리였다. 전방에 노란 눈사람 같은 형체가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렸다. 두 눈을 깜빡여 물기를 흘려보내고 나니 그 형체는 머리에 보자기를 인 노파의 뒷모습으로 바뀌었다. 노파는 골반의 천장관절이 기우뚱 틀어져 있었다. 청년은 노파의 뒤를 따라갔다. 먼지로 찌든 몸을 씻고 하룻밤만이라도 잤으면 싶었다. 그런데 노파는 먼지에 휘말렸는지 어느새 뵈지 않고 황사를 뒤집어써 본색이 바랜 육중한 건물 모서리만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길은 또 모르는 사이 아득하게 펼쳐져 청년은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한동안 갈팡질팡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건물이 어마어마했다. 어느 쪽을 향해도 노란 벽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간판도, 창문도, 지붕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널따랗게, 높다랗게 장벽만이 계속되었을 뿐이다. 고개를 아무리 쳐들고 꺾어보아도 벽이 끝나는 지점이 보이지 않았다. 청년의 두 다리가 우뚝 멈춰 섰다. 청년은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양 무릎을 짚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잠깐만 쉬어 갈까, 하는데 모래밭이 시커먼 돌바닥으로 바뀐 것을 목도했다.
어떻게 여기 와 있지. 청년은 알 수가 없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입구를 지나온 걸까. 도무지 입구를 발견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청년은 허리를 세우고 홀 안을 두리번거렸다. 처음엔 빨갛고 노란 빛의 고리들이 시야를 흐려놓았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로 눈이 가 닿자 이번엔 시야 전체가 까맣게 얼룩져버렸다. 청년은 주변이 반짝인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반짝임 속에서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했다. 더 이상 휘청이는 두 다리를 지탱할 수 없어 무너지려는 찰나, 사방에서 에워싸는 그림자를 느꼈다. 한목소리로 겹쳐진 여러 사람의 외침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마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청년은 까무룩 꺼져가는 의식 속에 양 겨드랑에 채워지는 손을 느꼈고, 무엇보다 그 손들이 보드랍고 친절하단 것에 감사하며 순순히 무거운 몸뚱이를 내맡긴 채 잠이 들었다.
실은 저도 요즘에야 그런 의문이 들어요.
갑자기 들려온 그의 목소리가 청년을 다시 기억 밖으로 끌어냈다.
저 역시 제 의지로 여기 와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었을 텐데. 왜 그동안 한 번도 이 사실을 의식한 적 없을까요? 그냥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여기서 일하고 있더군요. 한 손에 쿠키 쟁반을 들고 목에는 이 나비를 달고서요. 해가 질 무렵이었어요. 다이아몬드 창유리는 석양에 물든 구름 빛을 서늘하도록 반사시켰지요. 창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는데 그만 앗 소리를 지를 뻔했어요. 구름 쪽으로 구부린 손가락에 꼭 불이 번진 것같이 보였거든요. 그 정도로 생생했답니다.
그는 말하다 덜컥했다. 황소의 얼굴이 되튀었다. 황소가 불을 삼키러 온다. 문득 이 말이 가슴을 쳤다. 자신에게 가하는 위협처럼, 경고처럼. 달아나고 싶었다. 못 견디게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그는 깍지 낀 손바닥이 맞닿도록 힘을 주어 잡았다. 뜨거운 돌덩이같이 치받는 소리에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 썼다.
다이아몬드! 돌발적인 연상이었다. 다이아몬드는 별에서 왔다. 별은 초신성이 되어 폭발하기 직전 탄소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폭발과 동시 우주로 내뿜어진 탄소는 묻힌 걸까, 심긴 걸까. 우주의 진공은 묘하게도 무덤이면서 밭이다. 남김없이 타 흩어지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다. 빠르든 늦든 반드시 일어나고야 마는 사건. 바로 띄엄띄엄 있던 소립자들이 서로 당겨져 뭉치고 녹아들며 재창조되는 사건이다. 그리하여 전에 없던 행성이 되고 생명체가 되고 연료가 되고 연필심이 되고 토너가 되고 유독 한 생명체가 탐내는 보석이 된다. 이것이 시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던 입자를 형태화시켜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강한 물질로 깎아내는 힘. 때를 만나면 탄소라는 씨앗은 다이아몬드로 피어난다. 그렇다면 내면의 이 억눌린 돌멩이도 때를 만나 다이아몬드의 위력을 발휘하는 날 있을까. 그러한 다이아몬드의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