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불을 삼키러 온다
4장 캠핑촌 골목에서
죄송합니다!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확인해 볼 겨를이 없었다. 손에서 기둥을 놓기 무섭게 쿠키가 바닥을 쳤다. 쏜살같이 굴러가는 마카롱이 보였다. 쟁반이 기울고 있었다. 그는 아픈 손까지 동원해 수평을 맞추려고 서둘렀지만 쿠키 탑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뒤죽박죽 쏠린 쿠키들이 쟁반을 넘어 훌쩍 튀어 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쿠키들은 한바탕 신명나게 치솟았다 불판이며 머리통에서 깨져 박살이 났다. 심장이 펄떡 뛰었다. 또다시 발굽 소리가 몰아쳤다. 잔인하게 내몰리는 소리였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 벽을 떠받고 보랏빛으로 파열하길 원하는 소리였다.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려 했다. 순간 갈비뼈에서 이상한 저항이 느껴졌다. 고삐를 당기는 힘이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신경을 비비 꼬아 묶는, 근질근질 어지러운 뒤틀림. 이 기묘한 뒤틀림이 마치 꽁꽁 묶은 밧줄이라도 되듯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생각은 걸림 없이 나아가 어느새 스스로를 비웃는 지점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나야말로 완고해. 봐, 이 밖으로는 한 발짝도 못 걸어 나가잖아.
이때 거짓말처럼 툭, 마비가 풀렸다.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숨이 몰아쉬어지듯 한꺼번에 웃어졌다. 저 새끼가, 하는 부르짖음이 단번에 내꽂히기 전까진.
퍼뜩 정신이 든 그는 바로 앞 텐트에서 버선코같이 내밀린 고개를 보았다. 얼큰하게 취한 데다 이마에 과자 부스러기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었다. 이쪽으로 비틀린 목울대 주변에 검버섯이 돋아 있었다. 거의 아버지뻘 되는 사내였다. 뿌리 부분이 센 파마머리 여자가 사내 뒤에서 어깨를 붙들며 말리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쟁반을 오른 손바닥에 놓았다.
저놈이! 어디, 던져 봐!
그는 규정대로 받쳐 든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의심을 받자 순간적으로 진짜 내던지려고 의도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사내가 책임자를 불러오라며 앉은 자리에서 날뛰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올려붙일 기세였다. 여자가 일어나려 몸부림치는 사내를 팔뚝으로 감아 주저앉혔다. 팔이 무척 길었다. 바닥에 앉은 채로도 펄쩍 튀어 오르는 사내의 가슴팍까지 손이 닿았다.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어 팔을 드는 순간 겨드랑이가 열렸다. 점이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도 까맣게 도드라진 형태가 선명했다. 그는 겨드랑이에 난 점이 젖꼭지가 퇴화한 흔적이라는 사실을 문득 기억해 냈다.
진화는 퇴화를 동반하는군. 아니면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는 건가.
그는 불판에서 지방을 터뜨리며 회색으로 요란하게 익어가는 살점들을 응시했다. 저 지경에 이르도록 묵은 빚을 청산하고 다시 또 팅팅 불리는 건가.
사내는 여전히 책임자를 들먹이며 그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책임자를 알면 벌써 찾으러 갔겠다. 그는 남아있는 쿠키들을 가지런히 모으며 흘깃 보았다. 윽박지르는 사내의 목이 벌겠다.
눈이 있으면 좀 봐라, 인마. 여기가 뭐 하는 덴지. 여기는 우리 구역이야. 너같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받아주는 데가 아니야!
가만히 듣고 있던 그의 얼굴이 쥐어 짜이듯 구겨졌다. 코가 쌩 미어졌다. 재채기가 폭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밖에 황사가 심해서요.
좀 전의 그 목소리였다. 그는 이마를 젖히고 톱날 같은 신발 밑창을 올려다보았다. 또다시 재채기가 났다. 신발에서 풀풀 날리는 먼지 때문이었다.
미안합니다.
아까보다 작아진 목소리였다. 공중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상당히 앳되었다. 거의 또래처럼 들리는 미성이었다. 기둥을 사이에 낀 두 다리의 구겨지고 접힌 바지 주름마다 먼지가 뽀얬다. 허리 위쪽은 그림자 진 구멍에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구멍. 그러고 보니 복도 천장에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기둥은 구멍 한복판에서 뻗어 나온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바로 해 주변으로 시선을 던졌다. 텐트마다 옆에 기둥을 하나씩 끼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방구석에서 나오려던 것뿐인데 그쪽 팔을 밟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는 그 말엔 대꾸 않고 이렇게 물었다.
예? 황사요? 벚꽃이 한창일 텐데.
봄이 한 면만 있는 줄 아세요?
별안간 가시 돋친 목소리가 날아왔다. 긴 팔 여자였다. 그는 놀라서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사방이 아우성쳤다. 선을 넘기 전 매미 떼를 연상시키던 소리였다. 여태 이 소리가 안 들렸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물 내려가는 소리였다. 변기 물을 내리고, 설거지물을 쏟아붓고 하는 소리들이었다. 물소리가 얼마나 큰지 주변의 소음을 다 덮어버릴 지경이었다. 머리만 남겨두고 몸이 한없는 깊이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때 변기 구멍이 배설물을 그대로 삼켜버리는 소리가 꺼억 울려왔다. 차라리 이대로 더러운 것이 되어 눈에 띄지 않는 배수로를 통해 달아날 수만 있다면.
잠시만요. 저, 내려갈게요.
매달린 사람이 소방수마냥 기둥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주위로 먼지가 자욱이 끼쳤다. 그는 실눈을 뜨고 보았다. 눈높이에 다다른 얼굴은 여독으로 노랗게 퇴색했을망정, 젊었다. 청년이라고 부르면 더할 나위 없게 생겼다. 눈꺼풀이 얇은 긴 눈매가 섬세했고, 안은 빛났다. 그는 한 잔의 그윽한 차가 생각났다. 쿠키의 달콤함을 더욱 기분 좋게 녹여줄 연둣빛 싱그러운 차 한 잔.
제가 경솔했습니다. 조심해서 살폈어야 했는데. 무턱대고 내려오는 바람에 그쪽 과자까지 폭발시켰네요.
이렇게 말한 청년은 멋쩍은 듯 손가락을 찔러 넣고 머리칼을 긁적였다.
구르는 마카롱 바퀴엔 이끼가 끼지 않겠지.
그는 입가를 비틀며 생각했다. 난 이끼투성이야. 그는 차갑게 웃으며 자신은 영원히 과도기일 거라는 상념에 젖어들었다. 어느 틈에 청년은 나이 든 남녀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 있었다. 연거푸 허리를 구부리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더욱이 정중하게 그를 변호하기까지 했다.
아파서 그래요. 제가 모르고 밟아버렸거든요. 제가 안 그랬다면 이 사람도 흥분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 잘못이에요.
사내는 숨을 헐떡이며 잡아먹을 듯 노렸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진 않았다. 여자의 긴 팔이 사내의 불룩한 뱃구레에 둘러 얹혀 있었다. 그는 뜻밖에 감동을 했다. 자신을 위하여 누군가 이렇게 나서서 변명해 준 적이 있던가. 청년의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건성으로 뱉은 말이었다면 그쯤에서 멈추지 않았을 거였다. 기어이 담당자를 불러내 불만을 접수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는 등, 사태가 얼마든지 번거롭고 험해질 수 있었다. 나이 든 남녀는 강한 시선으로 그와 청년을 번갈아 쏘아보았다. 그뿐이었다. 더는 상관하지 않고 눈길을 거두어 서로를 다독이는데 전념했다. 뺨을 맞댄 고개가 마침내 텐트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가 소리 내어 빈정거렸다.
다정한 거북이들 같군.
외지인인 나보다도 이곳에 적응을 못하는군요.
청년이 대뜸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눈빛이 매서웠다.
모르겠어요? 저 사람들한텐 여기가 밖인 거예요! 올라갑시다. 얘기 좀 나눠요. 갖고 있는 퍼즐 조각을 좀 합쳐보자고요.
그는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발이 떨어지질 않아 쿠키를 하나하나 흩었다 도로 모으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리 주세요!
어느새 기둥을 타고 오른 청년이 구멍 밖으로 손을 쫙 펼쳤다. 그는 얼떨결에 까치발을 하고서 머리 위로 쟁반을 한껏 높이 떠받쳤다. 청년의 손에 잡힌 쟁반이 막 구멍을 넘어가고, 그는 오래 생각지 않았다. 코앞의 기둥을 붙잡았다. 냉기 때문에 사지가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리를 감아 꿈틀, 기둥을 탔다. 구멍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몸뚱이를 서너 번 끌어올리니 어느덧 얼굴이 쑥 빠져나왔고 바닥에 엉덩이가 걸쳐졌다.
그늘지고 호젓한, 다락같은 방이었다. 정면으로 트렁크 크기의 냉장고가 보였고, 구멍과 냉장고 사이의 측벽엔 두툼한 커튼에 가린 수평창이 있었다. 기둥은 계속 이어졌다. 천장 한구석의 엇비슷한 구멍으로 뻗어나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 무릎을 바닥으로 접어 올려 정수리가 닿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일어났다. 낮고 경사진 천장이었다. 청년도 어깨를 굽힌 자세로 허둥지둥 움직이고 있었다. 냉장고 쪽이었다. 청년은 부리나케 냉장고 문부터 열어젖혀 선반에 빼곡한 은빛 주전자 하나를 끄집어내 뚜껑과 손잡이를 잡고 한참을 마셨다. 그러고는 빈손으로 왼편 침대에 가 앉았다. 그는 엉거주춤 쟁반이 놓인 탁자 옆으로 걸어가 커튼을 향해 돌아섰다. 커튼이 원래 쳐져 있었는지 아니면 청년이 쳐놓은 것인지 궁금했다. 저 커튼 너머의 전망은 어떨까. 물끄러미 그려보던 그는 순간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 실감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모든 게 실수인 것 같았다. 혹 내가 미친 거 아닐까. 왜 처음 본 사람을, 그것도 외지인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따라왔지? 그는 발을 끌며 황급히 내뱉었다. 가봐야겠어요. 지배인한테 걸리면 큰일 나요.
그런데 어떻게 큰일이 난다는 걸까. 말하는 본인조차 실은 모르고 있었다. 민망해진 그가 스스로 말문이 막혀 어정쩡하게 섰는데 때마침 청년이 입을 열었다.
이봐요. 이리 앉아 봐요. 내가 진화의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진화는 언제나 가장 약자의 몫이었어요. 궁지에 내몰린 생명에게 찾아오는 일종의 출구인 셈이죠. 도저히 자기 힘으론 안 되는 상대에 맞서 홀로 고군분투, 온갖 궁리를 다하다 혁명적으로, 기적적으로, 콩깍지가 탁 벌어지듯, 꾀가 생겨나며 시작되는 겁니다. 태아가 양막을 찢고 나오듯 살 길을 여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진화는 줄탁동시 같은 거예요. 안팎으로 깨는 작용을 하니까요. 우선 더는 갈 곳이 없다는 자각이 사무쳐야지요. 그럼 기다렸다는 듯 특별한 우연이 끼어들죠. 우연이 특별하다고 말한 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보기에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 같은 우연이 실은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망상에서 비롯된 현상이라 특별하다는 겁니다. 당사자가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한 내용을 당사자의 마음이 알고 구현시키는 거죠. 그 우연한 마주침은 진화에 이르는 징검다립니다. 직감을 믿고 건너야 삽니다. 나를 믿죠?
청년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는 엉겁결에 눈을 끔뻑, 떴다.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할 수 없었다.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심경의 변화를 생각하면 기껍게 여길 만한 암시였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일단 대답을 해버리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허무는 결과가 된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그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생한 삶의 접촉, 더 큰 무대, 불확실성 속으로 투신하는 위험을 그토록 바라왔음에도 막상 주저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거 색다른 미끼 아니야, 너무 척척 맞아떨어진다, 라며. 물론 심장은 수상한 방향으로 힘차게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