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거슬러, 홀과 복도를 가르는 방화셔터라인까지 되짚어왔다. 이른바 생명선이었다. 마텔의 교육은 이 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지배인은 자신이 담당하는 12구역 홀 서빙 직원들을 불러다 곧잘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복도에 화재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고객이 선 밖으로 빠져나왔는데, 복도 저 끝에서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한 사람이 보인다. 한시라도 지체하면 불이 번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너희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고객들이 서 있다. 셔터를 내리겠는가, 아니면 머뭇거리겠나.
소리를 지르겠어요. 비상호출버튼을 누르라고요. 안드로이드를 깨우면 안드로이드가 알아서 구조해주겠죠.
화재 시엔 자동으로 전원이 차단된다는 걸 잊었나. 천장이 열리면 그쪽으로 불이 번질 수도 있잖아.
화재를 감지하면 이쪽으로 달려 나오는 걸 선택할 수도 있죠.
안드로이드가 제아무리 빨라도 불보다 빠르진 않아.
지배인이 요구하는 답을 모르는 직원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지배인의 진심일까. 그는 마텔의 대변자로서 묻고 있는 지배인에게 진지하게 답변한다는 생각 자체가 거북했다. 하지만 마텔의 관점을 그대로 뱉는 것 또한 내키지 않았다. 마텔의 관점은 이른바 원 플러스 원, 머릿수를 세는 게 원칙이었다.
닥쳐봐야 알겠는데요.
그는 이렇게 받아쳤다. 지배인은 더 몰아세우지 않았지만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눈빛이 고양이를 보는 개처럼 사나운 경계심에 차있었다. 그런 눈빛과 마주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는 자신이 힘없고 얄팍한 종잇장처럼 가장자리부터 구겨지는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십 원짜리 동전같이 납작하게 굳어져 잔인하게 회오리치려는 감정을 느꼈다. 속은 기분이었다. 저 사람이 우리들의 닉네임을 지은 그 사람이 맞나. 목소리, 억양부터가 변했다. 좀처럼 끝을 올리는 법 없이 어미를 교묘히 울려 말을 마쳐도 끝소리가 메아리치는 기이한 효과하며. 말투에서부터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나 싶었다. 그러나 말투와는 별개로 그는 지배인이 쓰는 단어의 용법에 저절로 거리가 둬졌다. 의식하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배인은 ‘고객들’, ‘한 사람’이라고 철저히 구분지어 말했다. 구조의 기준이 단지 호칭의 차이에 달려있기라도 한 듯 정확한 발음이었다. 그 기준에 따르면 소수인 사람은 다수의 고객들을 대신해 무조건 죽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음악이 흐르고, 샴페인을 나르는소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년. 그들은 누구도 자신을 소년이라 여기지 않았다. 소년이란 이름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름을 한참 떠나온 기분을 느끼며. 마텔엔 소년이 더 이상 살지 않았다. 소년의 얼굴을 한 소년들이 일했다. 그들은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행커치프 위에 달린 명찰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한입쿠키소년. 안드로이드보다 한 자가 더 많은 닉네임.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았다.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발음하는 것을 지나가며 여러 번 들었다. 눈을 빛내며 마치 노래하듯, 한입쿠키소년, 이라고 한마디씩 소리 내 불러들 보았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리운 얼굴을 했다. 아주 오래된 것을 곰곰이 불러일으키는 표정들이었다. 그는 그 얼굴을 보며 오래된 것은 늙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젊음이야말로 오래된 것이었다. 관측되는 별들이 전부 과거의 것이듯 소년시절은 어느덧 박제된 새의 날갯짓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젊음을 그리워하지 늙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늙음은 현재고, 소년은 칠천오백광년을 거슬러가야 만날 수 있는 푸른 별의 이름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젖어 걸어가노라면 누군가 한쿡소년, 부르며 멈춰 세웠다. 그때마다 쿠키쟁반을 내밀며 목례하고 웃는 자신이 동일한 이름의 로봇인 양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반경이 모두 적나라하게 비춰지는 기분이었다. 정수리 위의, 혹은 등 뒤에 붙은 투명하고 거대한 반사경과도 같은 시선에 의해. 이전에도 의식한 적 있는 시선이었다. 마텔의 골목이 아닌 진짜 골목을 배회하던 시절에도 늘 보고 있던 시선이었다. 오직 그 눈만 변함이 없었다. 맥락에 상관없이 소년을 보던 그대로 그를 봤다.
카운터에 기대선 지배인의 옆얼굴이 보였다. 초로의 얼굴이었다. 잠시 딴 데를 보고 있는 그 눈동자와 낯빛에서 청춘의 흔적이 엿보였다. 한낮의 그늘같이 배어든 젊음이었다. 그는 마텔에서의 첫날 자신을 압도했던 지배인의 모습을 기억했다. 지배인은 핏발 선 두 눈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한 꺼풀 벗겨보면 인간은 다 피투성이다. 화장과 의상으로 화려하게 감추고 있지만 속은 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친절해야 되는 거다. 우리의 친절은 안드로이드의 계산된 데이터 출력과는 달라.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뜻에서 예의를 갖춘다.
지배인은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주름진 눈가로 엷게 배어나던 그 미소가 대낮을 어스름 녘으로 물들여놓았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는 한쪽 끝으로만 웃는, 웃음이라기보다 빗금에 가까운 입모양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저 입의 틀어진 각도야말로 환멸에 찍힌 도장과도 같다고. 나는 낚인 거야. 미혹된 거야, 저 따위 아무 것도 아닌 텅 빈 자국에. 스스로 홀렸지. 어리석게. 그는 똑바로 초점을 맞추려고 눈을 깜박댔다.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이 입가를 실룩이게 했을 때 지배인의 시선과 마주쳤다.
지배인은 발진을 환영했다. 여드름 난 사춘기 소년 같아 보인다며 오히려 흡족해했다. 그는 듣고만 있었다. 지배인의 어조가 딴판으로 바뀌었다.
또 샛길로 빠졌군. 골목은 네 담당이 아니야.
지배인의 얼굴에선 어느새 특유의 웃음기가 거두어져 있었다.
그래요. 한입쿠키소년은 달콤한 과자로 유인하는 역할만 하면 되죠.
그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내놓는 것도 한입쿠키 같은 가르침에 불과하고요.
지배인이 경고했다.
네 구역에서 이탈하지 마. 제발 집중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야.
지배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세상의 끝, 시대의 종말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얼어붙은 땅. 그는 자신이 연기를 망친 배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연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부가 무대에 올라 있는 것이다. 배우 하나가 갈팡질팡하면 상대의 몰입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배인은 몹시 방해받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대사를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졌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대 위를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딱 한 번 관객석을 박차고 무대 위로 튀어 갔던 것뿐인데, 이런 역할을 배정받을 줄은 몰랐다. 억울했다. 이 역할을 떠맡으면서 다른 더 큰 무대를 등지고 선 느낌이었다. 그는 당장에 이 갑갑한 목줄과 턱시도, 발뒤꿈치를 조금씩 까지게 하는 구두를 벗고 맨몸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밖으로. 어느샌가 밖이 그리워졌다, 보장은 원치 않는다, 위험은 안전의 반대가 아니다, 위험은 삶이다, 삶은 변화하는 것이다, 마텔이 그 변화를 해충처럼 취급하고 고정된 배역을 주사해 사람에게서 영원히 박멸키로 결정지었다 해도 삶이 그 결정을 뛰어넘고 만다, 삶은 너무나 넘쳐난다, 나는 생생한 삶의 접촉을 원한다, 머리와 심장을 동시에 켜는 그런 순간을 만나 튀어나가듯 움직이고 싶다. 그는 갈비뼈를 들이받는 황소의 뿔을 느꼈다. 어서 제자리로 튀어가, 하는 지배인의 말소리가 먼데서 윙윙대는 바람소리마냥 울렸다. 지배인이 우두커니 선 그의 손바닥에서 빈 은쟁반을 채가더니 한입쿠키가 가득 쌓아올려진 새 쟁반으로 갈아 얹었다. 지배인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다. 무슨 신호라도 주듯 고개를 한 번 까딱, 해보이며 그를 재촉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도중 우주복을 입은 무리에 왈칵 생각이 미쳤지만 돌아서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말아 쥐었다. 폭발한 극장의 파편 한 조각이 손아귀로 날아든 것처럼.
지배인이 고마웠다. 갈까 말까 망설이던 차에 등을 떠밀어준 격이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왕왕 기웃대던 서북쪽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화셔터가 내려와 맞물리는 가느다란 홈선 안쪽에서 한꺼번에 쏴아, 하는 소리들이 밀려왔다. 매미들로 가득한 여름 복판에 들어선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다소 엉뚱하게 상상해보았다. 이곳의 계절변화는 종잡을 수 없이 빨랐다. 마네킹에 입혀진 옷들처럼 계절을 앞서갔다. 날씨 또한 변덕스러워서 대한(大寒)을 하루 지나 봄 냄새를 맡고, 그 이튿날 바로 함박눈이 내리는 걸 목도하듯 늘 갑작스러웠다.
한 발짝 내딛는 사이에 봄이 여름으로 바뀌지 말란 법도 없지.
짐짓 호기롭게 생각하던 그의 발이 저절로 선을 넘어갔다.
사람의 기분이야말로 기후처럼 갑자기 추워지거나 더워지기 십상이었다. 자갈이 밟히자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이 골목은 흙바닥이었다. 정체된 차량같이 고정된 텐트가 양쪽으로 끝없이 쳐져 있는. 문득, 돌아갈 길을 잃어 숲 속에서 헤매다 주저앉은 수중동물이 떠올랐다. 텐트 주변이 어수선했다. 곳곳에 병 따는 소리가 들렸고, 고기 굽는 냄새,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이 복도는 캠핑하기에 적합지 않았다. 폭이 좁고 천장도 닫힌 데다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창 또한 나 있지 않았다. 이러다 화재가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열기가 후끈했다. 그래서 더욱 캠핑객들이 졸지에 기약 없는 야영생활에 돌입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가정했다. 부득이하게 상륙한 물고기가 도로 입수하려는데 도무지 바다로 향하는 길이 안 보이는 거다. 그때 물고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말라죽거나 바닥에 지느러미를 쳐대면서라도 적응해 갈 도리밖에 없지 않나. 진화란 비참한 것이었다. 선택받은 생명의 특출한 능력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망각으로 내몰리는 일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생명이 겪게 되는 생에 대한 지난한 대가. 기나긴 유예이자 이별이었다. 어쩌다 휩쓸려버린 원치 않은 조건의 연속이 바로 진화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부득이한 진화라고 불렀다.
감히 나를 바꾸려고 해!
어디선가 성난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흠칫 놀라 곁눈으로 살폈다. 불판에서 피어오른 연기와 그 연기가 무성해질 새도 없이 빨아들이는 흡출기의 연통에 가로막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굳게 맞물린 입매와 술잔을 집어든 손가락 두엇만 간신히 알아보았다. 불판 주변엔 자그마한 뚝배기를 비롯한 아기자기한 찬그릇이 빼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비좁은 상판마다 취기에 들뜬 몸짓들이 눈에 띄었다. 그는 피로해져 눈을 뗐다. 완고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이 사람들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어 언제까지나 이 꽉 막히고 협소한 공간에서도 캠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런 삶에 인이 박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더 들어가려면 방법이 없었다.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쟁반을 머리 위로 쳐든 채 게걸음을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수고로이 벽과 천막 사이의 비좁은 공간을 지나려는 자신이 의아하면서도 막상 궁금해졌다.
마텔이 수용 못하는 삶이 있을까. 아니, 이런 삶을 조장하는 게 마텔 아닌가.
그들의 생활방식을 관찰하자니 갈빗집 체인점에 붙어있던 경고문이 떠올랐다.
‘무전취식은 경범죄에 해당합니다.’
이 캠핑촌 골목에서는 매일같이 무전취식이 이루어질 거였다. 그렇게 이 골목 주민들은 나날이 습관적으로 빚을 져 나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선 자발적으로 발이 묶였는지도 모른다.
몸이 휘청했다. 천막을 고정시킨 못에 발부리가 걸렸다. 그는 벽에 뒤꿈치를 밀어붙인 뒤 왼팔을 뻗어 가까이의 기둥을 꽉 붙잡았다. 기둥은 쇠보다도 차가웠다. 이것이 ‘카보나도’라는 물질인가. 그는 까맣게 반짝이는 기둥으로 발을 옮기려 하였다. 그런데 힘줄이 곤두서기도 전에 이빨로 깨무는 통증이 손목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