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불을 삼키러 온다

2장 마텔의 수수께끼

by 수연


마텔에는 안인지 밖인지 착각하게 만드는 공간이 많았다. 포석이 깔린 복도가 특히 그랬다. 홀 가장자리를 에워싼 벽에는 수십 개의 길이 뚫려 있었는데, 그 길에 들어서면 어릴 적 골목길을 걷던 느낌이 물씬 났다. 포석 틈새를 비집고 자라나는 풀도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붕이 열려 햇빛과 바람, 달빛까지 드나드니 영락없었다. 지금도 포석을 밟는 그의 머리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놀고 있는 한 손을 펴 손가락 사이로 감겨드는 보드라운 바람을 느꼈다. 바람이 구두코에 하얀 꽃잎 한 장을 얹어놓고 갔다. 그는 꽃잎이 떨어지지 않게 사뿐히 걸었다. 쟁반을 향하는 손들에도 드문드문 꽃잎이 내려앉았다.

벚꽃잎이 떨어진다!

누군가 소리쳤다. 쇼핑객들은 양팔을 뻗어 봄의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려 야단이었다. 재빨리 움켜쥐는 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 짝 소리 나게 부딪는 손, 그리고 애타게 흔적을 붙좇는 손. 꽃잎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소리 없이 바람을 탔다. 짓밟혀 흙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꽃잎에 매혹되어 잠시 잊혔던 소비가 재개되자 복도 양편이 굴러가는 바퀴 소리로 다시 소란하였다. 쇼핑객들은 지나가는 다른 쇼핑객에겐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상대방의 카트에 실린 물건들만 잠시 확인하듯 관찰했다. 상품의 선택을 자신의 필요나 기호보다 다른 이의 카트에 담겼는지 여부에 맡기는 것 같은 시선들이었다. 상점처럼 꾸며진 매장들이 입구를 활짝 튼 채 손님을 끌기 바빴다. 카트와 카트가 부딪쳤고 드레스 자락이 엉켜들었다. 그는 구두코에서 꽃잎이 사라진 걸 알았다. 발을 들어 밑창을 살펴봤지만 짓이겨진 흔적은 없었다.

꿈이었을까.

그는 주위에서 옅은 봄 냄새를 맡았다. 치맛자락을 든 젊은 여자가 카트를 버려두고 홀로 포석을 가로질렀다. 카트 안은 청사과와 과자봉지, 옷더미로 수북했다. 옷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포개져 있었다. 처덕처덕 감겨있는가 하면 꼭대기의 옷감이 두개골 모양으로 봉긋 솟아 있었다. 별안간 옷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낫 같은 틈이 열리더니 까만 눈동자가 굴러와 초점을 맞추었다. 눈동자는 빤히 응시했다.

아인가 보군. 남자아이라면 나중에 우리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어.

마텔엔 아이들이 흔치 않았다. 특히 남자아이는 수년 전부터 태어나지조차 않고 있었다. 신규 입주민인 모양이었다. 무더위가 심해지며 처음엔 한나절 피서차 들른 사람들이 이곳의 믿기지 않는 혜택에 숙박을 신청하고, 한동안 장기투숙객 신분을 유지하다 그대로 입주 절차를 밟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자는 쇼핑촌 구역을 택한 모양이었다. 쇼핑객 노릇을 하기에 제격인 성품 같았다. 쇼핑의 의무를 다하느라 아이가 물건들에 생매장이 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의 눈알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그는 아이에게로 한 발짝 다가서려다 카트들에 가로막혔다. 아이가 옷더미에 파묻힌 유령으로 돌아갔다. 그는 아이에게 겁먹지 말라고 소리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눈이 다시 여자를 뒤밟았다. 여자는 총총히 마네킹 뒤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입을 벌렸다. 막 소리쳐 부르려는데 여자가 펄럭이는 옷자락에 휩쓸렸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활기가 없어.

그는 생각했다. 이 거리가 실제 바깥 거리와 다른 점은 하나였다. 활기 없이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은 사람들. 그는 고개 들어 천장과 벽이 만나는 지점을 유심히 살폈다. 촬영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만 보니 이 거리는 실제를 본떠 축소시킨 무대 세트장과 비슷했다. 인간에게서 인격을 빼버린 거나 다름없지. 그는 갑자기 답답해져 뚫린 곳을 찾았다. 네모진 하늘은 어느새 푸르러 바다가 쏟기는 것 같았다. 걸음이 느려졌다. 눈앞이 점점 흐려지더니 무릎에 힘이 타악, 풀렸다. 감각이 이상했다. 파란색이 정수리를 관통해 흐르는 것 같았다. 발이 바닥을 밀 때마다 스펀지처럼 부풀며 붕 떠오르는 느낌. 그는 쟁반을 보듬고 잠시 멈추었다. 이대로 가만히 눈동자에 파란 빛이 돌 때까지 가라앉아 있을까.

경추가 쑤셔왔다. 어깨와 척추 마디마디가 뻐근해졌다. 어서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눈동자에 초점을 맞췄다.

매장 하나 건너에서 중절모를 쓴 노인이 허리를 숙이고 느릿느릿 포석을 밟고 있었다. 무릎마디를 구부린 자세였다. 노인은 맞은편 벽을 향해 걸어나가 큰 한숨과 함께 벽에 도달해선,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남은 손으로 벽에 부착된 버튼을 눌렀다. 밑에서 공처럼 접혀 있던 허연 물체가 무릎을 잠근 팔을 풀고 별안간 일어섰다. 마디마디 철근으로 된 관절을 쭉 펴자 순식간에 사지를 뻗은 인간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안드로이드, 그것이 벽에 기대 선 노인 곁으로 다가와 도움닫기 하기 전 준비 자세를 취하듯 옴츠리고 양팔을 뻗었다. 한 손은 겨드랑이, 다른 손은 뒷무릎에 밀어 넣더니 신속 정확한 동작으로 번쩍 노인을 들쳐 안았다. 파란 불빛이 눈에 들어와 있었다. 불빛은 노인의 왼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화면을 쏘았다. 요양객 중에서도 노약자들만이 차고 있는 시계였다. 그 시계엔 비상호출시스템과 연결된 프로그램이 깔려 호출기 버튼을 누름과 동시 주인의 방 호수가 화면에 떴다.

이윽고 불빛이 천장으로 내쏘였다. 곧 천장 한편이 열리더니 안쪽에서 투명한, 공중전화박스를 닮은 부스 하나가 내려왔다. 문이 자동으로 여닫히고, 안드로이드와 노인을 실은 부스가 천장으로 올라갔다. 시커먼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쯤 천장이 도로 감쪽같이 닫혔다. 그는 빈 복도에 서서 뭐지, 혼잣말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낯설었다. 그는 쟁반을 고쳐들었다. 테두리의 감촉이 느껴지도록 힘껏 잡아 쥐었다. 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톡 쏘는 향기의 아릿한 촉끝이 맡아졌다. 복도에 분사하는 방향제 냄새였다. 짙은 난향이었다. 그는 그 냄새에 취해 현실감을 되찾았다. 일명 구조로봇이라는 건가. 터무니없는 이름이다. 안드로이드가 구조를 하다니. 구조한다는 사명감도 그 일의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안드로이드가. 구조되었단 고마움을 전달할 길도 없는 안드로이드가.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들 중 가장 인간과 닮은꼴이었으나 또한 가장 인간 같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인조인간이란 개념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렇다고 한층 부풀려 초인간이라거나 아니면 편의상 대체인간 혹은 보조인간, 하고 사무적으로 규정짓기도 떨떠름했다. 물론 그것이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하고 돕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누구든 꾹 눌러 깨워만 주면 저절로 막힘없이 설정된 경로대로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다. 눈앞의 인간을 상상할 수 없는 계산 속도로 정보화시켜나가며. 과연 그러한 과정이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일종의 인간으로 파악된 정보들을 처리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심리적인 관계이기보다 법칙에 가까운데 인간은 그것을 잊어버리고 병적으로 다정하게 호소하곤 한다. 아, 내가 좀 더 연명할 수 있게 도와줘, 제발.

그것은 신인가. 아니, 그것은 참으로 기계다. 절대 구하고 싶어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없을……. 정말로 무언가가 될 가능성은 없는…….

그럼에도 그는 인간의 지성과 기계의 정보처리과정이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만큼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각기 기반이 되는 언어를 통해 살아있는 현실을 극도로 추상화한다는 점. 둘 다 매순간 흘러 잡을 수 없는 것들을 정지시켜 놓는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오류에 대해 인간은 알고 기계는 모른다는 사실에 불가사의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것이 오류임을 아는데도 왜 번번이 그 오류를 붙잡고 마는 걸까.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스크린이 된다. 프로젝터처럼 안에서 돌아가는 감정들, 생각들을 밖으로 쏘아 보내어 덮어씌우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상은 곧바로 자기 자신을 투사한 스크린과 다름없어진다. 생명이 있든 없든, 그 대상은 표정을 짓고 말을 한다. 자신의 선입관에 꼭 들어맞는 모양새로. 그는 언젠가 냉장고가 고장 났을 때 냉장고에 연민을 느꼈던 적이 있다. 실내온도가 섭씨 30도를 웃도는 저녁나절이었고, 목이 말라 생수통을 꺼내 들이붓다시피 마셨었다. 물맛이 미적지근했다. 혹시나 싶어 냉장고 앞면의 액정화면을 확인했다. 온도표시숫자에 불이 나가 있었다. 그는 순간 이곳에서 오직 냉장고만이 날마다 24시간 풀가동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다른 기계들은 며칠에 한 번씩이라도 전원을 꺼두는 시간이 있는데 냉장고만은 매일매일 밤새도록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과열되지 않고 멀쩡한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멀쩡하던 사람도 연일 자지 않고 깨어만 있으면 미쳐버린다. 사람이건 기계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아무리 강인한 체질이고 내구성 강한 재질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소모품일 뿐이었다. 고장은 고로 일어날 일이 일어난 자연스런 현상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냉장고에 해를 입히기라도 한 양 마음이 쓰라렸다. 망가지기 전에 제대로 보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걸 두고두고 미안해했다.

이러니 기계의 계산결과를 놓고 ‘구조’라 이름 붙이고 고마워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반대로 기계의 결함이나 오작동에 대해 기계를 탓하고 증오하는 일 역시 가능하고. 그러나 그 생각도 안드로이드에 이르면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안드로이드에 대해서만은 거리를 두고 물었다.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자의식이 없기에 무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도 없고, 그저 영혼 없는 프로그램의 실행이 있었을 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의 구조 활동에 대해.

프로그램!

특정한 조건에서 특정한 방식대로 움직이도록 인간이 짜 넣은 일종의 계획이자 꿈 아닌가. 그러니 꿈의 실행이었다고 보아야 할까.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반면에 자기 같은 사람은 이대로 두면 억 광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아서 남을 구하기는커녕, 자신을 구하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장 눈앞의 결과만을 놓고 단정 짓는 건 부당하게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좋으면 의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인가. 그리고 대체 어떤 결과가 좋은 결과란 말인가. 그것은 수치가 결정짓는 것인가. 가령, 한 생명을 죽게 내버려 두는 대신 열 생명을 구하는 것이 좋은 결과란 건가. 그가 생각하기에 결과란 언제라도 핀셋으로 집어 들어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수집함 속의 고정된 나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어디로도 팔랑팔랑 옮겨 다니며 붙잡을 수 없이 미래로 이어지고 이어져나가는 잴 수 없고 측정 불가능한 가능성의 세계, 유동성을 띤 불가사의한 파동의 진폭에 붙여진 아주 초라한 이름에 불과했다. 그는 그 미지의 결과를 안고 사라진 안드로이드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측면에선 신과 닮은꼴이었다. 선과 악,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있는 존재는 망설인다. 흔들리는 물잔처럼 갈팡질팡하다 기어이 쏟는다. 실수로 엎질러졌을망정 그 기울어진 잔에는 남아 있는 물의 양과 무관한 푸른 하늘 같은 범주가 언제나 같이 바라다보였다. 하지만 기계엔 잴 수 없는 것이란 없다. 즉, 마음이 없다.

그는 안드로이드가 노인을 안고 사라진 불가사의한 천장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저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공간을 마텔은 숨기고 있는 걸까. 숨겨진 공간 속에서의 알 수 없는 연결이 공포로 다가왔다. 방도 안심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방의 구조가 바뀌었을까봐 두려웠다. 자고 있는 사이에 움직일 방바닥과 벽, 천장이 두려웠다. 갑자기 허리춤이 요동쳤다. 벨트에 찬 무전기에서 지배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만 돌아설 때였다. 어차피 골목은 끝이 없었다. 아니, 끝까지 걸어간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 일단 통로 하나를 파고들게 되면 끝이 나지 않는 길을 만났다. 어딘가에 끝이 있다면, 막다른 골목들이 십 미터를 남겨둔 지점에서 서로 벽을 트고 원형으로 만나는 장소에 이를 테지만 그곳까지 갈 수 있을까.

그는 발꿈치를 돌렸다. 돌아가기에도 먼 지점까지 와버리면 자신도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을 거였다. 오십 미터 간격마다 벽에는 비상호출장치가 탑재되어 있었다. 주변엔 항상 장치를 이용하거나 이용하게 될 사람들이 즐비했다.

공간포식자! 대체 그 많은 인원을 충당할 방들이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마텔의 건축구조가 애당초 있을 수 있는 구존가. 이 끝이 안 보이는 폭과 높이를 다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 걸까.

그는 마텔의 설계도를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이 행동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스스로를 북돋아 계속 생각했다. 결과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행동이라고 다 무의미한 것은 아니야. 조금이라도 무력감을 떨쳐내 준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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