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불을 삼키러 온다

6장 청년과의 대화

by 수연


댁같이 입은 사람들을 봤어요.

그는 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세 발짝 앞으로 걸어가 커튼을 소리 나게 밀어젖혔다. 어스름 속에 돌아가는 작은 것이 있었다. 바람개비였다. 바람개비가 건넛방 창틀에 매달려 빙그르르 돌아가고 있었다. 유령 아이의 것일까. 다시 그 아이를 떠올리게 되니 기뻤다. 이 사람의 방에선 이런 것도 다 보이는구나 싶어 절로 감탄스러웠다. 바람에 돌아가는 작은 것이라면 자신의 방에서도 얼마든지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붉은 바람개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버섯 종균처럼 박히어 무작정 돌아가기만 하는 것. 무동력환풍기는 바람개비랑은 달라서 꿈을 꾸지 않는다. 그는 미간을 구겼다. 청년이 물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같이 입었다고요?

먼데서 온 느낌으로.

그가 재빨리 받아넘겼다.

어떻게 입었는데요?

청년이 다시 물었다. 그는 경량화 된 우주복 느낌의 단체복이었다고 간단히 답변했다.

어디서요? 틀림없이 본 거예요?

확답을 요구하는 청년의 목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일부러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까 지나다가 본 게 전분데요.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올려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기횐데요.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그들이 맞다면 말이죠. 그들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부류거든요. 빨리 찾으러 나가봐야겠어요. 여길 뜨기 전에요. 합류할래요?

그는 침묵했다. 기대감으로 번뜩일 청년의 눈빛이 은근히 거슬렸다. 그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서야 청년을 상대할 여유를 회복했다. 다시 뒤돌아 마주섰다. 청년은 어슴푸레했다. 오직 두 눈만이 이대로 꺼질 수 없다는 듯 집요하게 응시했다. 그는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 의지에 따르도록 끌어들이는 시선이었다. 그는 그 시선을 떨쳐내려 반격했다.

여길 빠져나가겠다고요? 마텔이 어디 막기나 한대요? 나가는 사람도 들어오는 사람도 마텔은 막지 않아요. 다만 들어온 곳으로 나가느니 출구를 찾는 것이 빠르다고 봅니다. 지체할수록 입구가 희미해지니까요. 애초에 뭘 사러 들어왔는지조차 잊고 말이죠. 그런데 왜 이리 서둘러 나가려고 하세요? 묵은 김에 며칠 더 지내보고 결정하시지. 전액 무료에 무기한 혜택이 유효한데 마다하는 이유가 뭐죠? 충분히 누리면서 쉬어도 좋잖아요. 거주민들은 대체로 이곳 생활에 만족해요. 출구를 찾던 사람들이 없진 않았지만 거의 빠짐없이 돌아들 왔고요. 어떻게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한 번 걸어보세요. 어느새 첫 마음은 달아나고 내가 왜 왔던고, 하지 않겠어요? 마텔은 변함없이 그들 몫의 방과 생활을 제공했습니다. 복귀한 그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나름의 출구를 발견했겠지요.

듣고 있던 청년의 얼굴이 순간 싸늘하게 긴장했다. 그는 그러한 변화에 심술궂은 쾌감을 느끼며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그런데 요 마음이란 게 얼마나 사람을 가지고 노는지 아세요? 이런 경우가 다 있더라고요. 재입주자들 중 반기를 든 패거리가 있었어요. 마텔의 관대함에 더는 포섭당하고 싶지 않다며 무턱대고 주인장을 만나 담판을 지으려 한 거죠. 어떻게 됐게요? 그 치들은 정말로 사라졌어요. 싹둑, 잘려나간 듯이 말이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청년의 표정을 살폈다. 청년은 조금 전과 달리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얘기쯤 얼마든지 듣고 흘려버릴 기세였다. 그는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아, 그렇다고 폭력이 있었다는 건 아니고, 더러 이런 얘기들이 괴담처럼 나돌기도 한다는 거죠. 실제로 이곳만큼 평화로운 데도 없어요. 우리 얘기를 누가 듣고 있다 한들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걸요? 여기선 모든 불만이 단 2분이면 일소돼요. 자, 이 쿠키를 한 번 맛봐요. 금방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그는 자신이 지배인처럼 말하고 있는 것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말에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입을 열기까지가 그토록 어려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 번 풀려나온 말은 저 스스로의 생명과 의지를 가진 듯 어디까지고 뻗어나가려고만 해 제어하기 쉽지 않았다. 흡사 자신이 말에게 부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간신히 상대를 의식하고 말을 멈추었다. 청년은 답이 없었다. 눈앞의 쿠키를 그저 뚫어지게 보고만 있었다. 그는 한 번 더 쿠키를 권했다. 청년은 경직된 표정으로 아무것도 발리지 않은 거칠고 순수한 통밀쿠키를 집어 한 입에 넣더니만 몇 번 씹지 않아 땅콩캐러멜쿠키로 손가락을 옮겼다. 그는 아예 쟁반째 넘겨줬다. 청년이 쟁반을 껴안고 난폭하게 먹어치우는 동안, 그는 다시 기쁘게 말을 이어갔다.

이곳의 교육은 당신이 씹어 먹는 쿠키 하나에 모조리 집약돼 있어요. 이 맛이 목표죠. 그런데 생각해봐요. 이 맛은 추구될수록 잊히는 거 아닐까요? 뼈다귀를 물고서 뼈다귀를 쫓는 격이죠. 그런 식으로 순간에 이르는 걸 막고 계속 달리게 하는 거죠. 그러니 허기질 수밖에요. 손에 쥔 걸 당장 맛보는 대신 그 맛과 동떨어진 지식이나 개념들로 머리를 채우고 끊임없이 맛을 찾아 달리니 말이에요. 그게 더 안전하다는 거겠죠, 사회에. 하지만 개인은 엄청난 공황에 휩싸이고 말죠. 현실은 언제나 머릿속 세상과는 괴리가 있으니까요.

그는 갑자기 상처받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괴리’라는 단어가 뜻하지 않게 아팠다. 자신은 왜 더 커지지 못했을까. 왜 이토록 작아지고 말았을까. 회한에 찬 질문이 솟구쳐 올라왔다. 건포도 같다. 건포도처럼 원래의 부피를 잃고 이용하기 좋도록 가공되었다. 그래, 교육이란 바로 그런 거다. 개인이 가진 생명의 즙을 체계적으로 말리고 굳히는 작업. 사회가 다루기 쉽도록 말이다. 비슷한 생각을 예전에도 했었는데. 그는 불현듯 이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떠오르지가 않았다. 짜증이 났다. 교육은 자꾸만 머리를 굴리게 한다. 그런데 기억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령 자기도 모르게 딴 데 놓고 잊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찾으려고 머리를 굴려봐야 찾아지던가. 머리는 그만 놔두고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 그 방에 처음 들어온 내방자처럼 봐야 찾는다. 어디에 뒀었지, 하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면 있을 만한 곳만 더듬다 끝나게 된다.

교육이라는 건 쓸데없이 사람을 헛갈리게 해요. 원래 알고 있던 걸 도리어 까먹게 한다고요. 고작 이름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느라 정작 중요한 건 잊힌다니까요. 체험 말입니다. 체험이 있고 나서 이름을 새기는 게 올바른 수순 아니냐고요.

하지만 기억이 우리를 일깨우기도 하잖아요. 청년이 문득 말하였다. 기억은 별빛처럼 더디게 오는 가르침입니다. 당시엔 모르고 넘어갔던 것들도 아, 그랬구나, 하면서 알게 되는 때가 오죠. 저는 기억을 통해 배웠어요. 생전에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어요. 할머니와 남쪽 섬에 같이 여행 갔을 땐데, 어렴풋이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졌구나, 예감이 들었었죠. 할머니를 모시고 조각공원이란 데를 찾아갔었어요. 관광코스의 마지막 장소였는데, 출구 바로 전 모퉁이에 소원을 비는 망치가 매달려 있었어요. 벽에 붙은 납작한 돌판 위를 세 번 두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쓰여 있기에 우리는 재미삼아 두드려봤죠. 나는 좀 욕심이 과했나 봐요. 세 번째로 두드릴 때 손에 자루만 남고 대가리가 튕겨나갔지 뭡니까. 찜찜한 와중에 웃어버렸어요. 할머니가 나중에 그러셨죠. 형은 똑똑하고 너는 힘이 세다. 그 말씀이 이상하게 골에 꽂혔죠. 저는 어렸어요. 당시엔 그 말을 듣고 낙심했어요. 머릿속에 떠오른 상투적인 이미지와 결부시켜 제멋대로 상상하고 열등감을 느꼈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 말이 떠오르면 못내 서운했어요. 그런데 최근 다시 그 기억이 떠올랐을 땐 그렇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그 말이 다른 의미로 와 닿았어요. 창발적으로요. 형은 똑똑 문을 두드리고, 나는 그 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뭐 이렇게요.

청년은 말을 멈추고 갑자기 쿠키를 하나 집었다. 그러더니 그것을 잠깐 그에게로 내보이고 나서 곧바로 말을 이었다.

맞아요. 당신 말대로 모든 것이 이 쿠키 하나에 집약돼 있어요.

그는 청년에게서 비스듬히 눈을 내리깔았다. 손톱에 낀 부스러기들이 눈에 띄었다. 청년은 대뜸 당시 자신의 인식이 손톱에 낀 쿠키 부스러기들에나 신경 쓰는 수준이었다고 말해왔다. 그는 뜨끔했지만, 청년의 말이 그의 시선을 의식하고 뱉어진 것은 아니었다. 청년의 표정과 태도는 시종 쾌활하고 진지했다. 그럼에도 방금 쿠키에 빗대어 강조한 점은 불쾌했다. 자신은 그런 의도로 한입쿠키를 언급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좀 언성을 높였다.

마텔의 교육은 그런 식으로 인용할 게 못 돼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 같은 교육방식 때문에 손에 쥔 쿠키 맛을 경험하는 시간이 한없이 지연되죠. 우리는 허덕이다 지친 나머지 더 갈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손에 쥔 그거라도, 하는 심정으로 쿠키를 보게 되죠. 허옇게 곰팡이 펴 이미 쿠키라고 부를 수도 없는 쿠키를요. 맛볼 시기를 영 놓친 겁니다. 돌이킬 수 없이 썩은 쿠키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나서야 한 가지 배웁니다. 끝내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소모와 소진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시간의 먹잇감이다, 결국에는 앙상히 뼈만 남으니까. 그게 전략입니다. 지금까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돼온 마텔의 전략이요. 마텔은 빈손으로 돌아온 우리를 친절하게 진열대로 이끕니다. 바로 그 진열대 위에서 최종적인, 그리고 본격적인 마텔의 교육이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들, 또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 말입니다. 마텔은 톡톡히 눈앞에서 보여주죠. 그 밖의 것은 없다. 손닿는 곳에 놓인 이것이 전부다. 우리는 대체로 수긍합니다. 그때그때 때울 수 있는 소비의 삶에 적응하고 진열된 것들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뻗죠. 하지만 이내 따분해지죠. 왜냐고요? 당신도 차차 알게 되겠지만, 여긴 모든 게 흔해빠졌어요. 귀한 것이 남아 있질 않아요. 다이아몬드조차 주변에 널렸죠. 덕분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총천연색으로 강렬해요. 마치 뇌가 백 프로 활성화된 것처럼 말이에요. 여긴 특별히 천재적인 감각이 필요 없어요. 둔할지라도 감각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스스로를 천재로 착각할 수 있답니다. 그게 바로 보편화된 다이아몬드의 효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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