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웃음의 타이밍이 다르고, 말이 많거나 너무 없거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거나. 누군가에겐 그저 다른 방식이지만, 사회는 그것을 ‘이상함’으로 명명했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음을 훼손했다. 잘못된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나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상냥하게, 혹은 무심하게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넌 왜 그래?"
처음엔 내가 잘못한 줄 알았다. 조금 더 맞춰야 하나, 더 밝게 웃어야 하나, 분위기를 잘 읽고 공감도 곧잘 해야 하나. 그렇게 조금씩 내 모서리를 깎아냈다.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튀지 않기 위해,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그런데 깎이고 나서 남은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어색한 말투와 억지스러운 취향, 불편한 관계와 허탈한 하루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정말 이상한 건 나였을까? 사람은 각자 다른데, 왜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느꼈을까? 왜 한 가지 성격, 한 가지 꿈, 한 가지 관계방식만이 옳다고 여겨졌을까? 그 모든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나는 나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그런 기준을 너무 당연하게 강요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고.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억눌렀다. 자기다움을 꾹 눌렀고, 불안한 감정을 감췄으며, 튀는 개성과 솔직한 말들을 삼켰다. 그 결과 남은 건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잃은 채 살아가는 무기력한 개인들이었다. 그 안에 나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다르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고, 나답게 산다는 건 고립이 아니라 존엄이라는 걸. 세상이 정한 눈금에 내 삶을 끼워 맞추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나다운 모습을 이상하게 여겨온 사회였다고. 그걸 안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