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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적응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은 없을까요

by 일상온도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한다. 여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이 공간, 이 사람들, 이 말투와 분위기, 요구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나를 틀에 끼워 넣으려 하고, 내가 되기를 멈추라고 말하는 것 같을 때. 그럴 땐 묻고 싶어진다. 정말 어디에도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없는 걸까. 적응하지 않아도 미움받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은 없을까.


우리는 늘 ‘적응’을 당연하게 배워왔다. 유치원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학교에 가면 질서를 익힌다. 가정에서는 어른 말에 순응하는 태도를, 사회에서는 조직에 융화되는 태도를 요구받는다. 그런데 그 모든 ‘적응’이라는 말이 사실은 ‘맞춰라’, ‘맞지 않으면 문제다’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나는 언제부터 내 마음과 다르게 움직이고, 내 생각을 접고, 내 감정을 미뤄두며 살게 되었을까.


적응이라는 단어는 한편으론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의 일부로 기능하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자신을 조정했다. 그러나 그 조정이 계속될수록, 나는 더 이상 나로 존재하는 법을 잊어갔다. 그렇게 길들여진 나는, 나다운 삶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맞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공간은 정말 없을까. 적응하지 않아도 거절당하지 않는 공동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려는 눈빛이 있는 사람들, 침묵에도 의미를 부여해 주는 관계. 그런 세계는 가능할까. 이상적 일지 모르지만, 그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없이 맞추기만 하다가 결국 자신을 잃고 만다.


어쩌면 그 공간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서부터 만들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 옆 사람을 바꾸기보다, 나부터 나를 수용하는 것. 나의 느린 속도, 불안한 감정, 남들과는 다른 리듬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순간, 나처럼 적응에 지친 또 다른 이들과의 연결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적응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그건 아주 멀리 있는 낙원이 아니라, 우리 안의 언어와 시선에서부터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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