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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정원 Aug 05. 2023

엄마! 비빔밥 먹고 싶어요

나물반찬은 따로도 맛있고 비벼도 맛있다!


나의 둘째는 어릴 때부터 밥 먹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조금만 질겨도 뱉어내는 아이였다. 그래서 항상 밥상 위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류(소, 돼지, 닭으로 만든 가공류까지 포함)나 햄, 소시지 이마저도 없으면 계란, 만두라도 꼭 올려 밥상을 꾸몄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 먹게 두진 않았다. 그날 만드는 나물반찬과 김치, 샐러드도 꼭 함께 내줘서 아이가 맛을 보게 했다. 당연히 대부분 기꺼이 먹어주지 않고, 남겼지만 이 과정을 지속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너무나 기특한 것은 이제는 향이 강한 부추나 파프리카 도라지 등 몇 가지 특정 채소를 제외하곤 엄마가 해주는 나물들과 샐러드를 맛있게 먹어준다. 하지만 여전히 질긴 식감은 좋아하지 않아 콩나물과 시금치는 가위로 더 작게 잘라 먹이곤 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먹는 행위로 애를 쓰게 했던 둘째가 며칠 전부터 비빔밥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나물반찬 역시 냉장고에 들어가면 시들한 우리 아이들이라서 한 끼 먹을 만큼만 하는 편이고, 그래서 한 번에 다양한 나물을 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냉장고를 거친 반찬을 처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작용한다.



그러나 최근 더위 탓인지 평소보다 식사량이 줄어든 둘째를 위해 비빔밥을 준비했다. 우리가 아는 다양한 나물들의 향연은 아니다. 


나는 1주일치 장을 한 번에 보는 편이기에 집에 있는 식재료 중 비빔밥으로 넣을 만한 것을 찾았다. 콩나물과 가지가 있었고, 500원이라는 싼 가격에 혹해서 집어왔던 둥근 호박과 냉동실에 남아있던 새우도 내 시야에 들어왔다.



3가지 정도면 계란프라이까지 해서 맛있게 비벼먹을 수 있지 않은가?!



무더운 날씨였지만 불 앞에 서서 조리한 것은 호박새우볶음 하나였다. 콩나물은 끓는 물에 데치기만 하면 끝나니까 가스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가지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찌기에 가능하다. 


가지는 가격이 싸고 식감도 부드러워서 둘째뿐 아니라 첫째도 맛있게 먹는 채소라 식탁에 자주 오르는 채소이다. 예전에 찜기에 찌는 것이 번거로워 나물보다 볶음으로(돼지고기 간 것과 함께 굴소스 첨가해서 볶으면 이것 역시 별미이다!) 많이 해 먹었는데 몇 년 전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안 뒤부터는 나물로 자주 해 먹게 되었다. 역시 삶의 지혜가 쌓일수록 사람은 편해진다는 진리는 요리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후다닥 만든 빨간 콩나물무침, 가지무침, 호박새우볶음까지 준비하니 둘째가 학원을 다녀와 주방을 쓱 보며 기대한 얼굴로 묻는다.



''오늘 저녁은 비빔밥이에요? 내가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럼! 우리 아들의 주문을 접수했지!''


''그런데 숙주랑 고사리가 없네요.''


''집에 있던 재료로만 만들어서 그래. 오늘은 이렇게 넣어서 또 먹어보자. 이 호박새우볶음 덕분에 더 맛있을지도 모르잖아!''


''네! 그럼 다음에는 숙주랑 고사리 해주세요!''



호불호가 강하지만 엄마 말에 잘 설득당하는 아직은 꼬꼬마 같은 둘째의 심사를 무사히 넘겼지만 이내 또 마음이 쓰인 나는 아이가 좋아할 햄을 계란물 입혀 구워내고(가스불을 또 사용하는 큰 결심이 필요했던 일!), 마지막으로 더운 날 자주 해 먹는 오이냉국을 휘리릭 만들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분명 비빔밥을 먹겠다던 아이는 다시 한번 메뉴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단다.



''저녁은 이대로 각자 맛보면서 먹고, 내일 아침에 비빔밥으로 먹을래요!''



하나씩 맛보는 즐거움까지 이제는 아는 둘째를 보면서 아이의 성장을 느낀 순간이다. 어릴 때 골고루 먹이고 싶은데 입도 짧고, 채소맛을 싫어하던 아이에게 자주 해준 것이 비빔밥과 주먹밥, 볶음밥이었는데 이젠 각각의 맛을 즐기게 된 모습에 행복을 말할 수 있다.



노력해서 안 되는 일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둘째 음식정복기'는 지난 10년 간의 나의 노력이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젠 뱃골도 제법 커져서 가끔 엄마와 누나보다 더 많이 먹고, 좋아하는 것만 먹는 게 아닌 엄마가 차려준 다양한 식재료도 맛보고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에 지금까지 들였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아이가 맛있게 잘 먹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나는 뼛속까지 엄마사람으로 거듭났나 보다. 



엄마라서, 엄마이기에 느낄 수 있는 말이 있다.



''자식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보는 것만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지만 그 배부름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게 된 나도 부모가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도 나는 자식입에 들어가는 배부름을 보기 위해 더위를 요령껏 피해 가며 밥상 위에 예술을 그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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