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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Dec 22. 2023

행간을 읽어주는 사람

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6

12월이 되었다. 단 네 편의 글이 23년의 기록으로 남았다. 분기별로 한 편씩밖에 못 썼다니 할 말이 없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을 잘 전하기 위해서였다. 하고 싶은 말을 실제 말로 다 하기는 어려웠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글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올해의 기록이 적다는 것은 그다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았거나 또는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내 선에서 먼저 접어버렸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접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 답답할 때는 이제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공간인 트위터(지금은 X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트위터가 좋다)에 몇 마디씩 남기는 걸로 대신하곤 했다. 부족한 것을 채우는 욕구에 사람들은 관심이 많지만 그것보다 정말 충족시켜야 하는 건 사실 해소의 욕구가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올해에 나는 이 두 욕구 사이에서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편에는 말씀이나 예배를 통해 충분한 공급을 받아 영적 필요를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이런 나의 갈망과 갈등 속에 터져 나오는 생각과 깨달음들을 나누며 풀어내고 싶은 해소의 욕구가 있었다. 대전에 오면서 충족할 수 있길 바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영적으로 충분히 공급받는 예배나 공동체의 손길을 찾았지만 이곳은 불모지였다. 이런 물리적 환경 속에서 나는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영성을 단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유진 피터슨 님의 책들과 조정민 목사님의 설교 영상, 남편과 드리는 가정예배, 그리고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살롱드식객 모임이 나를 도와주었다. 특히 살롱드식객은 함께 읽고 나누며 배울 수 있는, 내가 여기 내려와서 그토록 찾았던 소중한 공동체였다.  


몇 년 전부터 읽은 책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들을 찾았다. IVP 북클럽, CRD 북클럽, 나니아의 옷장 북클럽, 그리고 그냥 일반 인문서적 북클럽(이름이 기억 안 나는) 등을 거치며 다양한 사람들과 책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은 그냥 재밌었다, 의 수준에서 머물렀다. 대전에서도 북클럽을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참여할 수 없었거나 실제로 가봤는데 실망스러웠던 모임도 있었다. 근데 살롱드식객은 달랐다. 이 북클럽의 호스트인 J쌤은 일상생활사역연구원이시고 아내이신 H쌤은 살롱드식객의 충실한 동행자이셨다. 이 두 분을 주축으로 책을 읽고 나누기를 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미 이 모임을 경험하신 분들도 계셨고 나처럼 처음인 사람들도 있었다. 연령대와 거주지, 신앙적 배경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책 한 권으로 모인, 비대면 모임. 그동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건 내가 대전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1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분의 돌보심은 이처럼 놀랍다.


3월에 첫 모임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헤아려 본 믿음>이라는 레이철 에반스의 에세이를 함께 읽었다. 진정한 자신의 믿음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을 읽으면서 서로의 여정은 어떠한지, 책을 통해 깨달은 것들은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었다. 나름 격동의 시기를 지나는 나로서는 큰 도움이 됐다. 게다가 중간에 커피(돈 주고도 못 사는) 나눔까지 받게 됐다! 급작스러운 임신 중단 사태가 있어서 잠깐 요동쳤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결국 그 커피 시음을 하지 못했을 테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그리고 다시 9월에 두 번째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이전 같으면 절대 손대지 않았을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교황 회칙이라는 걸 난 처음 들어봤는데 책이 될 만큼 그 양과 내용이 방대한 것에 무척 놀랐다. 어쩌면 책의 내용보다는 모임에 함께 하시는 분들의 깊은 통찰과 나눔이 더 와닿았던 시간들이었다. 두 번째 모임이 진행 중이던 10월에 J쌤 어머님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나중에 기도와 위로,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열린 사랑을 경험하시는 시간이 되었다고 장례를 치르시고 회고하셨는데 감동이 되었다. 그렇게 추석이 지난 후 23년 살롱드식객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두 번째 모임이 끝나고 H쌤이 나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그때부터 인스타 친구가 되어 연락을 주고받았다. 공유해 주시는 피드를 통해 그분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웃들의 자리에서 함께 하시며 베풀고 나누는 일상의 모습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 정말로 책의 내용을 삶으로 실천하며 사시는 분들이었다. 나와 남편도 그런 삶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는데 두 분의 모습은 마치 길잡이 같았다. 어쩜 저렇게 배운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실 수 있는지.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런 기록들로 나의 내적 친밀감은 갈수록 높아만 갔다.


그러던 중, 이 글의 제목을 떠올리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12월 둘째 주에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여기에서의 사역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청년들과 시간을 보내려는 생각에서 시작된 계획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12월 말로 일정을 계획했다가 사정상 둘째 주로 바뀐 것이긴 했는데 그전 주에 이미 공지는 된 상태였다. 일정이 확정되고 나는 며칠 동안 밀린 집안 청소와 정리를 했다. 전날 미리 장을 보고 밑손질까지 마치고서 다음 날 청년회에 참석했는데 당일에 못 오겠다는 사람이 절반을 훌쩍 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일정을 취소해야만 했다. 속상했다는 한 마디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정말 너무너무 속상했다. 아.. 이건 합의되지 않은, 우리만의 약속이었나. 그동안 나름 노력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무용하구나. 복음서에 나오는 천국 잔치에 초대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지금도 말과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에 가득 찼다.


같은 날,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J쌤께 연락을 드렸다. J쌤 아버님의 소천식이 하루이틀 정도 지난날이어서 작은 선물과 위로의 인사를 드렸다. 두 분은 몇 달 새 양친상을 치르셨다. 지난번에는 조의를 표하는데 그쳐 죄송한 마음이었기에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당연히 바쁘셨을 거라고 생각해서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서 저 사건이 일어나고 실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집에 툴툴거리며 돌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J쌤으로부터 이런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쩌면 힘든 시기를 보내실 수도 있을 텐데, 보내주시는 위로와 마음이 저를 살게 합니다. 두 분을 위해서 마음과 손 모읍니다. 혹 나누실 이야기, 기도의 방향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그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은 당신들이신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힘든 시기를 헤아리실 수 있는 걸까. 위로를 받기에 마땅하신 분들에게 도리어 위로를 받으니 말할 수 없는 감정에 북받쳐서 엉엉 울었다. 내 마음에 가득했던 먹구름이 한순간에 물러나는 놀라운 순간. 도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힘들다고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도 아닌데 뭘 보고 이런 인사를 전하실 수 있으신 걸까. 이 분들은 글만 읽으시는 게 아니라 행간을 읽으시는 분들이구나. 다 말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요리조리 숨겨두어도 그 숨은 의미를 읽어내어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사람. '행간을 읽어주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이 나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그날 바로 깨닫게 해 주신 그분께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문학에서도 표면적 의미를 통해 심층적 의미까지 읽어내야 완전하게 작품을 해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행간을 읽는다는 건 진의를 헤아리기 위해 깊은 관심을 갖고 기민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체휼하심은 행간을 읽는 것의 가장 고차원적 발현이지 않을까. 그동안 어쩌면 나는 그저 책이건 사람이건 주어진 텍스트만을 읽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대할 때 표면적 의미를 지나 심층적 의미를 알아보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면 더 나쁘게는, 다른 사람의 행간을 읽으려 하기보다는 나의 메시지를 전할 방법만 궁리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해소의 욕구에 충실한 기록에 가깝지 않나 싶다. 23년을 마무리하는 나의 마지막 글에는 행간이라는 게 그다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년부터 쓰는 글들은 달라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의 행간을 읽어낸 기록, 나의 행간을 다른 이들이 잘 읽을 수 있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기록, 더 나아가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읽을 수 있도록 남기신 행간을 따라 적는 기록들로 브런치 서랍들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 이곳에 저의 행간을 읽으려 와주신 분들의 터치와 클릭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잘 읽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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