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7
남편과 나는 올해로 결혼 3년 차를 맞았다. 이사를 하고 각자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지났기에 이제는 난임검사를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 비뇨기과에서 검사를 받았고 나도 주변에 난임 시술을 잘한다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둘 다 이상 없음. 병원에서는 바로 자연임신 확률을 높여 임신을 시도하는 방향을 진행했다. 사실 나는 검사 결과를 통해 상담을 받고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 조율하는 과정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워낙 이 분야로는 빠삭한 분들이라 그러신 건지 내 의사를 묻지는 않고 거침없이 다음다음으로 진도가 쭉쭉 나가고 있었다.
일단 첫 단계로 과배란 유도를 위해 배란촉진제를 복용했다. 매일 두 알씩 최대한 같은 시간에 먹으라고 했다. 그렇게 약을 먹고 지난주 월요일에 과배란 주사를 맞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난임검사 중 하나였던 나팔관조영술 때 느꼈던 통증은 정말이지 새발의 피 같은 것이었다.
생리할 때처럼 점점 배가 빵빵해지기 시작했다. 뭘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배는 내가 봐도 이건 좀 심한데, 수준으로 부풀었다. 그러면서 시작된 것이 장 운동과 배변활동의 둔화였다. 마침 그때쯤에 허리 통증이 심해졌고 그게 주원인이라고 생각해서 허리가 괜찮아지면 될 줄 알았다. 과배란 때문인지 알았더라면 고생을 덜했을 것 같지만 이건 지금의 생각이고.. 당시에는 그건 완전 내 생각 밖에 있었다.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라는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 이번 기간을 거치며 다시 읽어봤어야 했다는 걸 이제야 생각하게 됐다. 그랬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불편함은 점차 커져서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제대로 앉거나 누울 수도 없고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부풀어 오르는 배를 문지르고 좌욕을 해가며 어떻게든 화장실에서 해결을 해보려고 온갖 애를 써도 도무지 내 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괴로움이었다.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운 날도 있었고 그렇게 피곤한 상태가 되어 어찌어찌 겨우 잠에 들면 몇 시간 만에 불편함과 통증으로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할 줄을 몰라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나를 보며 남편도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괴로워하다가 지난주 토요일에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 날이어서 병원에 갔고 진찰 결과, 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과배란으로 커진 난소에 피가 고여 다른 장기들의 운동성을 약화시키며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건 어차피 시간이 지나 배란이 끝난 난소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야만 통증도 가라앉고 몸의 기능도 원래대로 회복될 수 있다고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그 고통을 견뎌내고 왔는데 결국은 모두 시간에 맡겨야 하는 운명이라니.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한 상태였고 그대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진통제를 맞다가 결국은 관장을 하고 나서야 일주일 동안의 고행이 끝났다.
고통의 일주일을 겪고 나는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나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 무엇보다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건강이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니 똑같은 일상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다. 토요일 저녁으로 죽을 먹을 때. 그걸 앞에 두고 식사 기도를 하는데 정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이제야 정말 '인간답게' 오늘 하루를 살 수 있게 됐다는 감사의 눈물이었다. 건강이 진정 나를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정말 내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건강인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난 건강이 내 인생에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고 살았다. 잔병치레도 많지 않았고 내가 평소 운동을 좋아하거나 과격한 활동을 하는 성향이 아니어서 꽤나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내 몸이 잘 기능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아픈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 저 깊은 한 구석에서는 그건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것, 정신력이 부족한 것, 조심성이 없는 것, 조금 더 심하게 가면 모자란 것이라고 까지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막상 직접 경험해 보니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 내 몸을 기능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온전히 내가 관장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 몸이지만 나는 내 몸을 모른다. 그 모든 내장 기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국민 삶의 질 지표>라는 게 있다. 이번에 삶의 질에 대해 고찰하면서 찾다가 알게 되었다. 그들이 설명하기로, 삶의 질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객관적인 생활조건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주관적 인지 및 평가"로 구성된다고 한다. 여기서는 개인의 '삶의 질'과 함께 전체 사회와 관련된 '사회의 질'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활용된다. 이것을 측정하는 이유는 국민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데이터에 기반한 지표를 통해 국가 정책에 반영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뭔가 실감은 잘 안 나긴 하는데 국민의 삶에 국가가 관심이 있긴 한 것 같다. 삶의 질 기여 내역은 물질 부분과 비물질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물질 부분에는 소득, 임금, 주거가 포함되며 비물질 부분에는 건강, 교육, 여가, 가족, 시민참여, 안전, 환경, 주관적 웰빙이 포함된다.
누군가 묻는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져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좋은 것을 누리는 환경이 더 나은 삶의 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삶의 질 지표만> 딱 봐도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 내역들이 물질보다는 비물질에 훨씬 많았다. 결국 인간답게 사는 삶은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번에 경험한 것처럼 비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나의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이 그저 주어진 것들이 대부분인 것처럼 삶의 질 역시 내가 아무리 윤색해보려 한다 해도 내 힘으로 얻을 수 없다.
시편 4편의 마지막 절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정말 그렇다. 오직 여호와가 나의 삶의 질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하루 무사히 맡겨진 일을 감당하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평안히 누워 자는 것. 이것이 사실은 삶의 질의 정수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이번 일은 우리 부부에게 결혼했으니 그냥 아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란 걸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그동안 이것을 그분의 은혜가 아닌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의 연속과 중첩으로만 우리의 인생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내가 그 실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날이 훨씬 더 많았고 앞으로도 많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날 만큼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욱 주의 얼굴을 구하며 그 어떤 것을 풍성히 소유할 때보다 더 크고 충만한 기쁨을 누리기(시 4:6-7)를 기도한다.